정유년이 밝았고 10여일이 지났다. 며칠 있으면 작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입성해 대통령 업무를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자폐인 자조 네트워크 회장이자 2010~2015년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장애 위원회 위원이었던 아리 니이먼(Ari Ne'eman) 씨는 작년 11월, 미국 인터넷 뉴스매체 Vox에 “트럼프 정책은 나 같은 장애인들에게 재앙(I'm a disabled American. Trump's policies will be a disaster for people like me)"이라는 제목의 기고로 트럼프 시대의 자폐인 관련 정책 전망에 대해 우려하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여기서는 그의 기고 중 일부를 인용·정리하고, 이것과 관련한 필자의 생각과 장애인, 장애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시사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선 아리 니이먼 씨의 기고는 다음과 같다.

트럼프는 “자폐증은 전염병이 되었다. 25년, 35년 전 통계를 보면 전염병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전염병처럼 번졌다.”는 식의 발언을 하며, 예방접종으로 자폐증이 발생한다는 자폐증-백신 연관설 지지에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폐성 장애인이 인구에서 일정비율로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며, 그의 발언은 정치적 연관성이 상당하다고 니이먼 씨는 밝힌다.

지난 10년 동안 미 연방정부의 자폐성 장애인 정책은 자폐인 당사자들의 역할이 전보다 더 커졌으며 장애치료보다는 서비스, 교육방법 및 보조기술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정책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많은 정책입안자들은 자폐성 장애 공동체에서 자폐증을 ‘고치는’ 시도를 반대하는 것에 주목했다며, 자폐인이 성공적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기회증진에 집중하자는 자폐인의 바램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의회는 장애관련 법령을 자폐진단과 관련한 “자폐증과의 전투”에서 “자폐증 케어즈 액트(Autism CARES Act)”로 바꾸는 식으로 자폐인의 바램을 반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폐인들의 바램으로 인한 이런 변화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자폐성 장애 공동체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세력들은 바랬고, 트럼프는 이를 지지했다고 한다.

이런 변화들을 반대하는 반-백신접종 활동가들로부터 초기에 트럼프는 지지를 받았으며, 심지어 지난 4월 반-백신접종 성향의 인물인 Autism Speak 자선단체의 창립자 밥 라이트는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했다고 한다.

이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기에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자폐증 및 장애와 관련한 정책의 주요 역할을 맡길 가능성이 높으며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니이먼 씨는 깊은 우려를 남겼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과거 장애옹호단체와 의회의 장애친화적인 의원들과 같이 연대하며, 레이건 행정부 때 사회보장 장애보험 예산의 축소기도를 무력화했던 것처럼 트럼프 시대 때 예상되는 장애프로그램 축소를 무력화시킬 기회가 장애인에게 있다는 점을 니이먼 씨는 상기시킨다.

아울러 그는 미국 장애인들이 트럼프 정책으로 인해 어떻게 고통 받을지를 극명하게 잘 보여줌으로 장애 운동가들은 장애인들과 다음 민주당 정부의 핵심을 형성할 정책입안자들로 하여금 장애인의 필요와 가치에 익숙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말을 기고에서 남긴다.

지난 11월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모습 ⓒKBS America News 동영상 캡처

그의 기고를 읽으며 필자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자폐성 장애인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염병이란 기피 대상이며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폐성 장애를 전염병처럼 묘사하는 트럼프의 말을 접하며, 그에게 자폐성 장애인이란 인간 이하의 기피 대상이자 혐오 대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이끄는 미국 사회에서 장애인 혐오가 늘어날까 두렵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혐오하는 게 만연하다.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의 극히 일부에게 있는 폭력성을 가지고 정신적 장애인 전체를 싸잡아 시설이나 정신병원에 가두어야 한다는 논리가 아직도 만연하고 있다. 정신적 장애인 혐오가 상당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신적 장애인들은 조롱과 비하, 기피의 대상으로 전락되며, 시혜와 동정을 받고, 심지어 시설과 정신병원에서 인권유린을 당한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특히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고 하여 아스퍼거 장애인을 혐오·기피하며 인터넷 상에서 비하하며 놀리는 행위들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에 인터넷 언어폭력 관련 조항이 없고 장애인식개선에 관련된 정부 계획과 실제 정책도 형식적이라 이런 행위들을 막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이런 정신적 장애인 혐오 현실들을 많이 듣고 경험하다 보니 필자로선 트럼프의 말을 접하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장애친화적인 우리 사회로 바뀔 수 있도록 헌재의 박근혜 탄핵 인용은 물론 차기 정부에서 장애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장애 친화적 인사들로 채워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것이 현실로 되어가는 올해이었으면 한다.

새해 장애친화적인 정부가 들어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했던 1월 7일 촛불집회 장면 ⓒ이원무

또한 필자의 경우엔 장애의 원인이 백신 때문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오히려 예방접종 때문에 면역력이 더 좋아졌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 아니라는 연구논문들도 속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자폐성 장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인 것처럼 얘기하는 신빙성 없는 것을 믿음으로 백신접종을 하지 않는다면 면역력이 약한 아동들의 경우 건강에 피해를 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생각한다. 편견으로 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본다.

우리나라에도 자폐증-백신 연관설을 믿게끔 정부나 언론에서 조장하는 행위가 혹시라도 있다면, 아니 사회 내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필자를 비롯, 장애인과 장애계, 시민사회 등은 그런 행위나 움직임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편견이자 발달장애인 차별임은 물론 아동건강에 위협을 주는 등의 이유들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자폐인 관련 정책에서 자폐성 장애인의 역할이 늘어나고, 자폐인의 바램인 성공적 삶을 위한 기회증진을 정책입안자들이 상당히 신경 썼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필자로선 미국의 상황이 상당히 부러웠다.

발달장애인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일이 거의 없다. 또한 아직도 발달장애인의 성공적 삶을 위한 기회증진에 신경을 잘 안 쓰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고 사회에서 성공적 삶을 위한 기회가 증진되길 원한다. 그러기에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개진하는 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이용자 중심의 자기옹호 사례를 민간에서 공유해 이것을 정책에 반영하는 기회를 갖는 등 체계적이고 실효적인 자기옹호·권리옹호 시스템 수립이 필요하다. 이런 시스템 수립의 계기를 올해 자주 가졌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장애인들이 장애옹호단체들과 의회의 장애친화적 의원들과 함께 정부의 장애인권리 축소기도를 무력화시켰다고 니이먼 씨가 말한 것에서, 필자는 정신적 장애인과 시민단체, 장애계 단체 등과의 강력한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낀다.

실제로 발달장애인/정신장애인 단체와의 강력한 연대가 현실적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 정신적 장애인의 입장을 찬성하는 시민사회 단체라면 연대하는 것을 발달장애인/정신장애인 단체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시민단체, 장애계 단체 등과의 강력한 연대가 이루어지려면 강력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는 필수라고 본다.

사실 미국의 경우에는 강력하며 성숙한 시민사회가 형성되어 장애인 문제를 이슈화하고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기에 비해 우리나라 시민사회는 미국에 비해선 아직 성숙하지 않다. 강력하면서도 성숙한 시민사회의 형성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강력하면서도 성숙한 시민사회 형성이 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기 시작해 효과적인 장애인 문제의 이슈화 및 해결의 시초·계기가 되는 한 해가 되도록 올해 장애인당사자, 장애계,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합심해 노력하길 바래본다.

올해 발달장애인 등의 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갖추어져 가는 한 해이길 빌며 마지막 말은 이 말로 대신하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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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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