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과 동갑인 스물 한 살의 자폐증 청년이 정신과 병동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가정형편 상의 이유로 기숙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행동 문제의 어려움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지 몇 개월 만에 몸무게가 급격하게 줄어들며 결국 사망하였다.

청년은 기숙학교를 다니던 때부터 약물치료를 시작하였고, 해가 지날수록 약물의 용량은 점점 늘어났다. 무시로 건물 밖으로 이탈하였고, 길 가다가 낯선 사람을 불쑥 건드리는 돌발 행동이 있었다. 그가 바깥의 무엇을 보려 했는지, 낯선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는지 개별적으로 헤아려줄 수 없는 환경에서는 그 모든 행위를 충동성, 공격성, 강박증, 망상증으로 이름 붙여 약물로 통제하게 된다.

자폐증 자체의 치료제는 아직 없다. 감기처럼 원인을 치료하지는 못하나 해열제, 진통제, 항생제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키듯이, 자폐증도 드러나는 행동들에 대하여 대증요법으로 처방할 뿐이다. 현대의학에서 수만 가지 유전인자 중에 원인을 밝혀낸 질환이 수십 개, 그중에 치료제가 개발된 것은 수 개에 불과하며, 자폐증은 돌이변이 유전과 신경생물학적 원인으로 추정하는 정도의 연구단계로서 증상이 개개인마다 스펙트럼처럼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치료 시 반드시 정확한 관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환자를 누가 관찰하는가? 의사, 간호사, 특수교사, 치료사 중 누구일까? 아니다. 주보호자의 관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는 장애진단 시부터 심각한 오진을 초래할 수 있는데, 혈액검사나 MRI검사 등으로 판별할 수 없고, 장애 당사자의 검사반응도 부정확하기에 주로 보호자와의 문진을 통해서 발달정도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즉, 보호자가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 따라 문항의 해석이나 빈도를 치우쳐 체크할 오차범위가 커지는 것이다.

의료 선진국에서는 2~3개월에 걸쳐 하루에 몇 시간씩 병원 측 관찰자가 환자의 생활전반을 기록한 후에 최종진단을 내리게 되는데, 그조차도 아직 자폐인의 특성을 고려한 지능검사나 사회성 검사도구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기에 오차범위를 둘 수 밖에 없는 의학적 한계가 있다.

하물며, 진단에서부터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질환을 단지 보호자의 치우친 견해에 의존해서 쉽게 약물 처방하고 최소 몇 년에서 평생 동안 장기복용시키는 국내 의료체계는 얼마나 허술하고 위험한가.

여러가지 알약들. ⓒ김석주

스물 한 살 청년의 사망 원인은 무엇일까? 정신병동에 입원한 지 몇 달 만에 몸무게가 80kg에서 60kg대까지 빠지고 급기야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그는 왜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식욕이 떨어졌으며, 심장이 멈출 정도로 신체에 이상이 생겼을까? 왜 병원에서는 환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도 약물의 부작용과 장기복용으로 인한 대사기능의 이상을 체크하지 않았을까? 입원환자 뿐 아니라 10년, 20년 약물치료 받는 외래환자들 중 장기복용으로 인한 면역성 저하나 사소한 혈압검사라도 체크를 권유받은 적이 있을까? 아니, 새로운 약을 처방받을 때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관찰 기준들에 대해 자세한 안내라도 받은 적이 있을까?

자폐증에 사용하는 흔한 항정신병 약물 중 하나인 아리피졸정을 예로 들면 그 부작용으로 자살성향 증가, 고초열, 근강직, 자율신경 불안정, 급성 신부전증, 고혈당증, 당뇨, 정맥혈전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출처: 약학정보원). 그런데, 정신과 약물을 처방하면서 보호자나 환자에게 알레르기 반응이나 소변의 색깔, 자세와 동작의 변화 등에 대해 체크해보라고 안내해준 의사가 있을까? 내 주변의 보호자들 중에는 아무도 안내받은 적이 없다. 환자의 도전적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 “좀 얌전해졌습니까?”, “잠은 좀 잘 잡니까?” 약의 효과를 강조할 뿐이었다.

정신과 의사도 약물은 보조적 역할일 뿐 인지행동수정 등 교육적 생활환경 개선이 근본적인 치료임을 연구자료들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환자와 생활해 본 적도 교육해 본 적도 없다. 관찰조차도 하루에 몇 시간 이상 한 환자에게 할애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오직 약물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유럽 선진국 의료체계에서는 의사가 보호자와 환자에게 약물의 효과 및 부작용을 상세히 안내하고 관찰 기록 양식을 공유하며 동등한 관계로 소통한다. 즉 의사가 어떠한 약물을 권하더라도 보호자 입장에서 부작용을 감안하여 다른 약물을 선택하거나 용량을 조절하고 인지행동요법을 우선하는 쪽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지속적인 합의 체계 위에서 환자의 증상은 현저히 개선된다는 통계가 나온다.

약물 복용 전 초기상담 시 관찰기록 양식에는 이런 내용이 기재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 장소, 상황, 대상에 따라서 문제가 되는 행동은 무엇이며 강도와 횟수는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전후 상황에서 파악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등의 항목별 제시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저녁에는 안정적인데 아침에만 울화를 보인다면 약보다는 수면습관을 살펴봐야 한다. 학교에서는 안정적인데 길에서만 공격성을 보인다면 인지행동수정이 먼저 필요하다. 다른 상황에서는 편안한데 수업시간에만 산만함을 보인다면 수업내용이나 환경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는 잘 지내는데 아빠에게만 분노한다면 양육자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원인을 개선해보았는데도 무시로, 어디서나, 상황과 상관없이 불특정한 대상을 향하여 통제할 수 없는 행동과 정서가 나타난다면 그 때는 약물을 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약을 복용한 후에는 식욕과 수면의 변화 정도 뿐 아니라, 다양한 부작용 보고를 안내하고 보호자 외에 환자와 가장 많은 시간 같이 생활하는 특수교사나 재활교사 등과 양식을 공유하여 항목별로 상태를 기록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혈압과 소변, 혈액 검사를 통해 신진대사 기능의 변화를 체크해야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의료체계가 환자 중심으로 의사와 보호자 그리고 교사와 주변 환경까지 소통하도록 개선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이별의 슬픔만으로 묻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치료의 중심에서 환자를 소외시키고 의사도 보호자도 교사와 주변인들 그 누구도 책임을 외면한 채 치료의 생색만 낸 것이라면 밝혀야 하리라. 의료 정책을 바꾸어서라도 내 아들 같은 청년의 원통함을 밝혀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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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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