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 있는 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이용자들의 종합건강검진이 있었다.

이용자들의 건강검진을 위하여 간호사들에 의해 채혈을 하였고, 그 자리에 생활교사인 사회복지사들이 이 일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장애인 한 사람의 피를 뽑았던 주사기에 부주의하여 실수로 사회복지사는 피부에 긁히는 일이 생겼다. 상당히 많이 베인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별 일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가족이 이 상처를 보고 어쩌다가 상처가 생겼느냐고 물었다. 그 가족은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분으로 생물학을 전공한 교수라고 알려져 있다. 사회복지사는 상처가 난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발달장애인의 원인 중 유전이 되는 것이 있으니 채혈을 한 이용자가 혹 그런 유전성 장애가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조언하였다.

유전성 질환이란 다운증후군, 프레드 윌리 등이 있다고 하였다. 의료계에서 일하는 가족이 그런 말을 하니 사회복지사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발달장애 원인 중 유전성이 있는 이용자의 피가 주사기에 묻은 것이면 그 유전자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쳐 자신의 2세에게나 자신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유전성 원인이 있는지 부모에게 물어보기에는 무척 조심스럽고 부모가 기분이 매우 상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그 장애인의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를 매우 정중하게 보냈다. 이용자가 태아로 있을 때에 양수 검사 등 혹 유전자 검사를 한 것이 있으면 결과를 알려 주거나 검사 결과서를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시설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에 장애 원인은 있지만, 완전하지 않아 정확히 알려면 추가로 유전자검사 결과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혹 누락되어 시설의 기록에 없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원인 중 혹 빠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내용은 매우 정중하고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썼지만, 어머니는 이 메일을 받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남자의 피에 여자의 피가 묻으면 여자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피에 동물의 피가 묻는다고 동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장애 원인이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닌 이상 전염되거나 유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이런 메일을 보낸다니 상식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무시의 의미가 담긴 것인지 판단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정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의학 전문가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채혈한 주사기를 통해 감염될 수 있는 것은 C형 간염과 성병, 에이즈밖에 없다고 하면서 어떤 의료인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유전인자는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서 다른 유전자가 자신의 몸에 들어온다고 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성관계가 아닌 접촉이라면 말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지카바이러스의 감염을 알아보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한다. 이는 인간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유전자가 변하여 그 변한 유전자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다. 지카바이러스가 맞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지카바이러스의 유전자를 검사하는 것이다.

수온병과 같이 중독성에 의해 질병이 유전되어 기형아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유전자가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중독에 의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피가 묻어 유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다니 발달장애는 방사선을 내는 원폭이라도 되는가?

다음으로 매독이나 고양이변이나 발톱에 있는 톡스 플라스마 기생충에 의해 기형아를 낳을 수도 있다. 매독이나 플라스마는 세균이나 기생충이 발육에 악영향을 미쳐 기형아가 발생하는 것이지 이 또한 유전인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고양이의 기생충이 기형아를 낳는다고 말하면, 반려동물인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모두 공포에 떨거나, 임산부가 있으면 고양이를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충을 없애면 그만인 것이다.

한센병 환자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도 한센병에 걸린다고 하여 한때 한센병 환자들에게 임신중절이나 정관수술 등 불임수술을 강제로 시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로 유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밝혀졌고, 인류는 유전을 이유로 강제불임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의료권력이 잘못된 지식으로 인하여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장애인거주시설 생활지도교사가 발달장애인의 유전인자가 자기 몸에 들어가면 자신도 장애아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장애인 인식이 더 낮을 수 있는 시민들은 장애인을 보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어느 수녀원에서 시각장애 여아를 길렀는데, 이 여아는 남자라고는 구경도 못하였고, 눈이 보이지 않으니 살아가면서 사회생활이라는 경험도 없어 남자와 손을 잡으면 임신이 되는 줄로 알고 성인이 되어 어떤 남자가 수녀원을 방문하였다가 악수를 청하였더니 도망을 쳤다는 웃지 못 할 일이 실제로 있었다.

그런데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가진 복지사가 이 정도로 장애인을 인식하고 떨고 있으니 그 부모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 시각장애인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보다 발달장애인의 유전자가 상처에 묻어 유전한다고 고민하는 것이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확히 알지 못하였고, 누군가 그런 말을 해서 혹시나 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장애인의 개인 의료기록은 개인정보에 속하는 것으로 이를 요구할 권리도 물론 없거니와,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어 장애인의 인식에 문제를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 아닌가 우려도 된다.

어떤 언덕에서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서 넘어진 한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가 다 죽어가는 것을 보고 한 번 넘어지면 3년을 사는 것이니 여러 번 넘어지면 넘어진 횟수 곱하기 3년을 살 것인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듣고 언덕에 다시 가서 여러 번 넘어진 다음 생기를 되찾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어리석음에 의해 잘못된 지식이나 고정관념을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남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 만다. 장애 유형 15가지 중 전염에 의해 이동되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