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가명)이는 집에서 유치원까지 다녔고,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월평빌라에 이사 왔습니다. 그때 나이가 열한 살(2012년). 어떤 사정이 있으면 열한 살까지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모양입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면 시설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한 때라도 더 품으려고 입학을 미뤘던 겁니다.

“우영이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요. 밥 먹을 때 물을 많이 마시고, 국에 말아서 먹는 걸 좋아해요. 약은 밥이랑 같이 먹으면 돼요. 딱딱한 물건을 좋아하고, 추운 건 싫어해요. … 변을 보려는가 싶어서 보면 이미 기저귀에 묻어 있어요.”

열 달 뱃속에 품었던 수고와 십 년 함께했던 추억을 나누는 건 사치였습니다. 누구도 감히 꺼내지 못했습니다. 살아갈 날들 앞에 묻어야 할 말들, 잔인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월평빌라를 찾는 부모형제 앞에 늘 고개 숙이는 건 이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눈물로 이별하는 게 이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중학생 누나는 동생 손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놓지 못하는 거죠. 헤어질 때가지 훌쩍였습니다. 동생과 떨어져 사는 게 슬프겠죠. 그곳이 시설이라서 아무 말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거죠. 남들 부러워할 만한 어떤 곳이라면 동생을 위로라도 했을 텐데. 이제 겨우 열한 살짜리 동생이 시설이라는 곳에서 부모형제와 떨어져 사는데, 뭐라고 위로할까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건 우영이도 누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월평빌라에 이사 오면 한 달쯤 지나서 회의를 합니다. 당사자, 부모형제, 직원, 회의에 필요한 분…. ‘월평빌라에서, 거창에서, 어떻게 살기 바라는가’ 의논합니다. 월평빌라에서 잘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각자 의견을 냅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지냈으면 좋겠어요. 밥을 잘 안 먹어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간식은 딱딱한 과일을 챙겨주면 좋아해요. 물 말고 다른 건 잘 안 마셔요. 남자아이인데 종일 기저귀 하고 있는 게 걱정되네요. 물리치료는 꾸준히 받았으면 좋겠어요. … 이래저래 이야기가 많았죠? 미안해요.” 어머니가 말을 하다, 다했는지 줄였는지, 맺었습니다.

시설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이 자주 전화하고 찾아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부모님 댁에 자주 데려가시라고 부탁했습니다. 학교행사에 부모로서 참석하시기를 부탁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의견 내고 부탁하고 참견하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연락해도 되나 생각했어요. 연락하면 피해가 되는 줄 알고…. 시설에 가면 시설에 맡기고 더 이상은 엄마라고 이래저래 간섭하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우영이를 지원하는 직원은, 회의 시작 때만 해도 우영이가 어머니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도록 도와야지 하는 마음이었답니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 들으면서, 우영이가 어머니 품속 그리워하고 어머니도 우영이 품으며 지내게 해야지 하고 바뀌었답니다. 어머니 빈자리 어머니가 채우시기를.

우영이가 월평빌라에서 어떻게 살기 바라는가? 결론은, 어머니 품에서 클 때처럼 가족 품에 있을 때처럼 지내기 바랐습니다.

이사 오자 곧장 입학식이었습니다. 월평빌라에서 가까운 남상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버지가 참석했습니다. ‘1학년 1반 권우영’, 왼쪽 가슴에 노란 이름표 달고, 동급생 네 명과 나란히 했습니다. 마흔 명 남짓한 선배와 선생님이 환영했습니다.

봄날, 첫 소풍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마침 우영이 집에 들른 어머니에게 안내문 전하고, 우영이 소풍 도시락 부탁했습니다. “그래요. 제가 김밥 싸서 새벽에 갖다 줄게요.” 그건 당신 몫이라는 듯 바로 답했습니다. 품속에 있을 때처럼 품어 달라는, 당신 자리 당신이 채워 달라는 뜻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바빠서 씻지도 못하고 왔어요. 우영아, 잘 갔다 와.” 아들에게 인사하고 도시락을 건넸습니다. 두 칸은 김밥, 한 칸은 과일. “김밥 넉넉히 챙겼어요. 우영이 물 챙기면서 커피도 챙겼는데, 선생님께 전해주세요.” 어머니라서, 어머니이니까 이럴 수 있겠죠.

학교에 갔습니다. 우영이는 뇌병변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탑니다. 그래서 등하교는 시설 직원 자가용으로 합니다. 먼저 온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었습니다. 보물이라도 들었는지 가방 멘 채로 말이죠. 어머니 싸 주신 김밥이 들었겠죠. 음료수와 간식도 있을 거고. 우영이 어머니처럼 선생님 드릴 커피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휠체어에 옮겨 앉고 가방 메고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우영이 가방 속에도, 여느 아이들처럼, 어머니 싸 주신 도시락이 있습니다.

우영이 이야기 전해 듣고 동화 같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싸 준 도시락, 그 대목에서 짠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잘 돕는다고, 선한 마음으로, 어머니 대신하여 김밥 쌌다면, 그 수고와 정성에 고맙다 할지 모르겠지만, 옳을까, 잘한 것일까 싶습니다.

소풍 도시락 부탁한 동료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잘했다고 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할 일은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설에 사는 아들과 시설 바깥에 사는 어머니는 이래야 한다고 했습니다.

월평빌라 온 후, 가족과 자주 연락하고 함께합니다. 부모님 댁에 자주 가고요. 명절은 물론 집안 행사에 함께합니다. 동생 손잡고 놓지 못하던 누나는 시간 날 때 월평빌라 303호 동생 집에 놀러옵니다. 방학에는 사촌들도 데려 오고요. 시내 가서 돈가스 먹고 쇼핑하고.

작년 아버지 생신은 누나와 공모하여 근사하게 보냈습니다.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우영 재연 올림.’ 펜 잡은 우영이 손을 누나가 잡고, 오누이가 함께 편지 써서 드렸습니다.

우영이 생일날은 항상 부모님 댁에서 보냅니다. 그날은 아무리 바빠도 온 가족 함께 아침을 먹습니다. 우영이 좋아하는 소고기 넣고 어머니가 끓인 미역국 먹으며 축하하겠죠. 그날은 어머니 차 타고 학교 갑니다.

재작년 여름에 아버지 친구 가족과 함께 제주도 다녀왔습니다. 비행기 처음 타는데 잘 탔고, 더웠는데도 내내 웃으며 다녔다 합니다.

가정통신문 받아 오면 갖다드리거나 전화로 읽어드리거나 사진 찍어서 보냅니다. 학부모 설문 조사는 부모님이 답하고 시설 직원이 할 만한 것 일부만 알려드립니다.

“시설에 가면 시설에 맡기고 더 이상 엄마라고 이래저래 간섭하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아니요. 부모-­자식으로 지내기 바랍니다. 그렇게 돕고 싶습니다. 어머니 품안에 있을 때처럼 가족 품에 있을 때처럼.

* 우영이를 지원하는 월평빌라 박현진 선생의 글과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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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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