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나는 제주도 출장을 갔다. 제주도에서 최초로 교회를 설립한 성내교회에서 장애인들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장애인콘도나 수련원이 없다는 말을 듣고 조천읍에 있는 교회 소유의 땅을 장애인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와서 목사님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목사님께서는 누가복음 14장 12절에 의하면, 식사에 초대를 할 때에는 친척이나 친구를 초대하기보다 장애인과 같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들을 초대하라고 되어 있다며, 친구를 초대하면 그도 다시 식사에 초대해 줄 것이므로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 되므로 하늘에서 은혜를 받을 것이 없다고 하셨다.

내가 베풀면 다시 그 고마움을 돌려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며 기꺼이 장애인을 위해 교회 재산을 내어놓겠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교회 역사상 교회에서 직접 장애인을 위한 전도 사업이나 시설운영을 한 적은 있어도 장애인단체에 재산을 내어놓은 것은 최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가 장애인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명이라며, 이를 실천하고 싶다는 말씀과 실천은 실로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출장 업무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밤늦은 시간에 그날의 마지막 비행 스케줄이어서 서울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실어 나르기 위해 대형비행기를 투입하여 비행기는 국제선에서 볼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비행기 좌석 뒤편 등받이마다 모니터가 있어 승객들은 각자 자리에서 편하게 비행에 관한 정보를 얻도록 되어 있었고, 모니터 아래에 리모컨이 부착되어 있었다.

나는 시각장애로 인하여 비행기를 타면 천정에 붙어 있는 모니터를 볼 수 없어 소리로만 듣고 말았는데, 어떤 정보가 나오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리모컨도 한 번 조작해 보고 싶었다.

확대경을 꺼내어 리모컨의 버튼들을 확인하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께서 “눈이 많이 나쁘신가봐요?”라며 말을 걸어 왔다.

나는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분은 자신의 남편도 시각장애인이라고 했다. 그분은 남양주시에 살고 있는데, 꽃나무를 키워서 아파트 단지를 돌며 판매하고 있다고 하였다. 남편은 베체트병(자가면역질환)으로 포도막염으로 인하여 세상이 뿌옇게 흐려 보여서 중도 시각장애인이 되었다고 했다.

슬하에 3남 3녀를 둔 다둥이 엄마로 친정에서 남편과 살고 있는데, 친정 할머니께서 제주도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6명의 아이들을 보여주겠다며 핸드폰 사진을 확대하여 나에게 보여주었다. 4살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한 줄로 서서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남편은 시각장애 1급으로 장애인 등록을 하였으나 아무런 복지 서비스 혜택도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상당히 지식과 교양을 갖춘 학자 스타일이었으나 장애가 발생하자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내가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장애를 부정하고 있으며, 과거 눈을 볼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무를 심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알지만 어느 정도인지 부인이 체험할 수 없어 답답하며, 어떤 날은 컨디션이 좋아 조금 보다가도 어떤 날은 전혀 보이지 않아 종잡을 수 없고, 본인이 답답함을 모두 부인에게 분풀이를 한다고 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지 누구에게 화를 내겠느냐며 서로 위하고 위로하는 대화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상냥하지만 부인에게는 자주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아무런 취미나 즐거운 사회생활이나 교재를 할 수 없어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중도에 장애인이 되면 충격(쇼크)을 느끼고 화남이나 우울, 죄책감 등의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고, 베체트병은 눈에만 이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무릅관절에 이상이 오거나 장기에 이상이 오는 등 비정기적으로 온몸으로 돌아가면서 이상이 생겨 고생하게 될 것이라고 하자, 지금 무릎이 아파 고생 중이라고 했다.

남편은 혼자 식사준비도 할 수 없고, 길을 걸을 수도 없어서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나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신청해서 부인의 일 중 일부는 활동보조인이 맡도록 한다면 부인도 그만큼 남편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남편도 부인이 아닌 전문 도우미로 인하여 자유로와져 정신적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은 그런 서비스가 있는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시각장애 1급인 남편이 그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하고, 왜 그런 제도를 우리는 모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컴퓨터나 모바일에서도 음성이 지원되는 등 다양한 보조기구를 남편이 활용한다면 장애에 적응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상담해 주었다. 시각장애인 복지관 등을 찾아 전문 서비스도 받고 동료상담을 통해 교재폭도 넓혔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여서 그런지 친정부모들이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음에도 늘 불만스러워하고 짜증을 낸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성이 시집살이를 하면 스트레스가 생기고 남과 맞추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듯, 남자가 처가에 들어가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집안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 살아간다면 자아존중감에 손상을 받아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 주었더니 남편의 마음은 알겠지만 힘이 든다고 했다.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의 감정 수준에서 입장을 생각하고 남편을 지지하고 연에를 할 당시처럼 편이 되어준다면, 그리고 아빠에 대해 아이들이 존경하도록 부인이 역할을 해 준다면 남편은 훨씬 삶의 에너지가 커질 것이라고 나는 말해 주었다.

부인의 사촌 집안에 발달장애 아이가 있는데, 학교 등하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아이도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도 물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일단 서비스 신청을 하면 국민연금에서 나와서 활동보조 서비스의 필요한 시간을 평가해 줄 것이므로 신청을 해 보라고 했다.

몇 년 전 어떤 장애인이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서비스가 있는지 몰랐다고 하자, 공무원이 ‘모르는 사람에게는 권리가 없는 것’이라고 하여 그렇지 않아도 억울한데, 그 말을 듣고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장애인은 동사무소에 가서 서비스를 요구했으나,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부양가족이 있어 혜택을 줄 수 없다고 말하자, 그분은 그럼 내가 죽으면 아들이 혜택을 보겠다며 여의도 공원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 일도 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장애인단체가 스스로 필요한 서비스를 위해 법이나 시책을 요구하고, 결국 그러한 서비스가 만들어져도 홍보부족으로 시골에 살고 있거나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지 않아 그러한 서비스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장애인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정부는 법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찾아오는 장애인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등록된 자 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법과 시책을 홍보하여 누구나 누락되지 않고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법이나 시책을 몰라 삶의 질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음을 나중에 안다면 그것은 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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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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