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삐까뻔쩍한 명품들이 즐비한 쇼핑타운에, 누구는 그 지역 전통시장에, 또 누구는 사람들의 입소문에 오르내리는 유명 관광명소에….

이렇듯 흔히 여행이나 장거리 일정 등 자신의 거주지를 벗어나 타지로의 외출을 하게 될 때면 꼭 들러보게 되는 자신만의 장소들이 있다고 한다.

“얘들아 우리 이번에 여기 들러보는 건 어때? 나 여기 꼭 한 번 가보고 싶더라.”

“와! 나도 이런 거 되게 좋아하는데. 좋아. 여기는 꼭 집어넣자. 소나야, 너는 특별히 가고 싶은데 없어?”

“음... 글쎄? 난 특별히 없는데. 다 좋아. 그냥 너희들이 정하면 난 잘 따라갈게.”

“역시 오늘도 예스맨 여전하시구만.”

동일한 일정을 소화해도 몇 배의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물론, 자칫 조금만 무리해 기존의 페이스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느 틈에 몸 전체의 균형이 깨져 이리저리 픽픽 넘어져버리기 일쑤인 등 신체적인 한계에서 오는 여러 가지 제약의 특성상, 비장애인들은 벗 따라 계절 따라 1년이면 서너번씩 가곤 한다는 이 여행이 내게는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연유로 여행에 대한 지식이나 로망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그저 함께 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존재가 된 탓에 언제부터인가 가끔 이렇게 오랜 동창들과, 동료들과 함께 하는 기회가 주어질 때면 늘 일행들의 의견에 "오케이, 오케이"를 외치는 예스맨이 되어버린 나.

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조금 특이한 버릇이 하나있다. 아, 물론 이는 타지에 나갈 때 뿐 아니라 하다못해 집 근처 상점가에 간단한 볼일을 보러 갈 때도 어김없이 발발하곤 하는데, 굳이 명명(命名)하자면 '숨은 불량감자 찾기' 정도라고 할까?

눈 깜짝할 새 20대 중반의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창시절, 도보 15분 거리의 통학 길엔 유난히 나의 행보를 방해하는 걸림돌들이 많았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 걸음을 더 긴장하며 걷게 만든 가파른 비탈길, 자신 있게 발걸음을 딛기 전에 꼭 가로수나 전봇대 등 의지할 수 있는 기둥들을 먼저 찾게 만든 높은 턱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덕에 또래 친구들은 단숨에 지나던 '빨라 가는 길'이 아닌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몇 바퀴씩 빙 돌아 걸어야했던 그 때 그 시절.

"에이 씨 여기도네."

이 한 문장이 자연스러울 만큼 입에 붙을수록, 이마에 점점 더 굵디굵은 땀방울이 맺힐수록 자연스레 장애인들에게는 어느 부분이 불편의 요소인지 더 생각해 보고, 또 어느 곳에 이러한 불편 요소들이 있을지 더 찾아보며 자연스레 자라게 된 버릇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새 버릇이란 이름이 습관으로 길들여질 만큼 많은 시간 온 몸의 촉각을 곤두세우며 거리를 활보하고, 반경을 넓혀가다 보니 알게 되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량감자,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이동이 장애인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동이 되게 하는 요소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불과 며칠 전만해도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찾은 한 건물 입구에서 경사로 인 듯 경사로가 아닌, 휠체어가 오르내리기에 턱없이 좁은 폭과 가파른 경사로를 봤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혼자는 물론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더해진다 할지라도 쉽게 이용하기 어려운, 그저 하나의 모형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밖에 볼 수 없도록 설치된 경사로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를 하나 주장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의 보여주기식 편의시설 일명 '전시적 행정의 끝판왕'은 저상버스가 아닌가 싶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지난 2003년, 경기도와 서울시를 잇는 주요 도로에 버스 전용차로를 설치하며 시범 운영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 경기 등 제법 많은 지역에서 저상버스를 운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차량숫자는 물론 시외버스, 고속버스 등 여전히 저상버스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채 철저히 제외되어지고 있는 교통이 존재하는 탓에 매년 장애인의 날, 혹은 명절 무렵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안타까운 목소리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체 1급의 뇌병변장애인인 나는 저상버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행여 꼭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할 일정이 있다 해도 시간적 여유가 넉넉한 때는 타야할 버스가 저상버스인 경우 공연히 한 대를 떠나보낸 후 뒤이어 오는 일반 버스에 냉큼 오르는 일이 빈번하니 말이다.

물론 이러한 선택권(?)역시 별도의 보장구 없이도 어느 정도 독립적인 보행이 가능한 덕에 타 장애인들에 비해 비교적 이동권과 접근성이 자유롭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만 계단 대신 설치된 경사판이 숨겨진 덕에 일반 버스보다 족히 2배가 되는 높이에 무릎으로 기어야 했던 경험 뿐 아니라 몇 번의 낙차 경험을 보유한 내게 저상버스는 또 다른 아찔함으로 다가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비록 지금 현재는 시내버스에 한정되어 있다지만 앞서 기술한 바처럼 2003년 첫 도입을 시작으로 12년 후 2015년인 지금, 서울 시내에 상당수의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저상버스'라는 단어를 검색해 얻은 사전적 풀이처럼 휠체어 장애인에게 저상버스는 '휠체어를 탄 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오를 수 있는 대중교통일까?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다른 승객이 불편해하며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승차 시 차체 경사로를 내리고 승객이 안전하게 탑승할 때까지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정류장에 서 있는 승객을 발견하고도 외면한 채 보란 듯이 승차거부를 일삼는다는 일부 기사들의 불량한 태도, 더 나아가 저상버스를 이용하며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사고들이 장애계의 화두에 오르내리는 것이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편의시설이란 말인가? 더 명확한 이동권 확보와 편리성 도모를 목적으로 도입되었음에도 한 번의 이용을 위해 몇 대의 버스를 허무맹랑하게 놓치고서야 가까스로 이용할 수 있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교통수단인가?

아니면 턱이 높아 불편하니 경사로 한 번만 내려 주시면 안되겠냐는 부탁에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온갖 신경질을 다 받아낸 후에야 탈 수 있었던 타 장애인을 위한 교통수단인가?

그도 아니면 자전거, 유모차 등을 손쉽게 올리고 내리며 뚜벅이 시민들의 더 나은 발이 되어줄 교통수단인가?

어느 경로로든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지금 이 시간에도 저상버스 운전기사의 한 명으로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을 버스 기사님들께 강력하게, 아니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혹 당신이 탄 버스가 한 명의 승객을 위하여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그래서 당신의 귀중한 시간이 허공에 묵살당하고 있을지라도 조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하고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들 역시 지금 당신들의 모습처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싶고, 출근을 하고 싶고, 친구를 만나고 싶고 그렇게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 해 나가고 싶은 지극히 평범한 행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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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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