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삶 가운데 가장 크게 느끼는 불편함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동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 조금 서툴고 불안한 걸음일지언정 별도의 보장구가 없어도 독립적인 보행이 가능한지라 다행히 이동권과 접근성면에서는 그리 큰 제약을 받지 않는 편이다. 이는 상당히 큰 행운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몸 전체의 중심이 균일하게 실리지 못하는 탓에 거리의 작은 턱 하나, 난간 없는 계단 몇 칸, 작은 틈새 하나도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크나 큰 산이 되곤 하지만 말이다.

모처럼의 이른 퇴근으로 한가로운 저녁나절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뭐하냐? 바쁘지 않으면 저녁이나 같이 할래?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어찌 그리 딱 알았는지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단박에 오케이를 하고 집을 나선 길이었다.

뭐가 그리 바쁘고 힘들었는지 얼굴 한 번 보자는 말에 몇 번이나 공수표를 날리고서야 갖게 된 반가운 만남이었던 터라 지체할 것 없이 한달음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친구놈의 모습이 보였다.

“오래 기다렸어?”

“아냐, 나도 방금 왔어. 아, 진짜 춥다. 들어가자.”

그런데 웬걸. 채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인 이야기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뜻하지 않은 복병 하나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바로 식당 입구의 난간 없는 계단 세 칸.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은 물론 얕은 턱 하나 없던 널찍한 실내 공간까지 어느 하나 흠 잡을 곳 없이 삼박자를 두루 갖춘 곳이었던지라 학생 때부터 근 몇 년을 줄곧 이용해 오던 단골 식당이었는데, 갑작스레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며 굳게 닫혀 있던 지난 몇 달의 결과인 모양이었다.

‘흠... 어떡하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상황에 흠칫 당황한 기색을 감출 길이 없었지만 한 번씩 같은 상황을 직면할 때마다 다년간의 노하우를 발휘해 늘 나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곧 나의 일상과도 다름없는 일이었기에 찰나의 순간을 이용한 빠른 두뇌회전으로 또 하나의 대처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고고씽!”

어느 틈에 옆에 와 섰는지 한껏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씩 웃어 보이던 친구놈은 덥석 나의 손을 맞잡고는 성큼성큼 나의 속도에 맞추어 계단을 올라서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나의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유어 웰컴!(You're welcome)”이라며 낼름 먼저 선수를 치곤 제 자리로 돌아가 앉는 친구놈의 모습이 영 얼떨떨했지만, 어쨌거나 잠시 잠깐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 준 도움의 손길은 나로서는 제법 고마운 일이었다.

겁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이 피 끓는 20대 청춘, 그러나 분명 보이지 않는 미래의 두려움 또한 켜켜이 쌓아내고 있는 우리는 하나 둘 살아온 이야기 속에 하나 둘, 살아갈 이야기들을 얹어내며 지난 시간들의 회포를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을 무렵, 어느덧 거나하게 취기 오른 얼굴로 한동안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친구놈은 갑작스런 질문 하나를 해 왔다.

“야,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도와달라는 말을 원래 못하는 거냐 아니면 안 하는 거냐?”

“뭐라고? 너 취했냐?”

전혀 뜻밖의 질문에 뜨끔, 정곡을 찔린 기분을 애써 웃음으로 무마시키며 얼렁뚱땅 넘기려했던 나와 달리 단순한 취기로 인한 헛소리는 아니었는지 앞에 앉은 친구놈은 다시 한 번 재차 같은 질문으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아니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래. 생각해보니 너랑 나랑 지금껏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네가 먼저 도움을 청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안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못 하는 건지 내가 널 좀 더 알고 싶어서.”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진지한 모습으로 집요하게 질문 공세를 펼치는 친구놈의 모습에 결국은 나 역시 힘겹게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그간의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한 차례 칼럼을 통해 이미 밝힌 바처럼 어린 시절, 나의 장애를 유난히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던 아버지는 그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일은 백퍼센트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도록 가르치셨다.

시시때때로 ‘남의 어려움 앞에 주저하지 말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과 달리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타인의 도움을 받은 것을 아시는 날이면 매우 호되게 꾸짖으시며 언행불일치를 몸소 실천하셨던 아버지. 그 덕에 어느 덧 내 무의식 속에 굳게 자리한 ‘도움은 곧 민폐’라는 공식은 아무리 좋은 취지로 베풀어주는 누군가의 호의에도 “괜찮다”는 말이 먼저인 고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어렵사리 꺼내 놓은 말이라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내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비어 있던 술잔을 채워 들이켜기를 연거푸 세 번이나 반복한 친구놈. 그러나 곧 그의 입에서 나온 나지막한 한 마디에 한참을 소리 없이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야, 이 바보야. 그게 왜 민폐야. 물론 뭐든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친 도움을 요청하는 건 귀찮음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거꾸로 너의 지나친 사절이 누군가에게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 된다는 사실은 생각 안 해봤어?

그리고 네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데 네가 나한테 도움을 청했다고 해서 너만 도움을 받은 게 아니야. 나도 너한테 배우고 있는 거야.

솔직히 내가 너 아니면 어디 가서 ‘아, 이런 높은 턱이 장애인들에겐 또 하나의 불편이 되는구나. 아, 이럴 땐 이렇게 도와줘야 하는 거구나’하는 걸 배울 수 있겠냐? 난 네 덕에 다른 장애인들을 만났을 때 베풀 수 있는 배려를 하나씩 배워가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적어도 너랑 나는 친구잖아. 나한테 너는 장애인이 아닌 그냥 친구일뿐인데 친구끼리 서로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너도 가끔 내가 도와달라고 할 때 너무 당연하게 도와주잖아. 그러니까 이런저런 생각 말고 지금처럼 그냥 상부상조하면서 살자. 어떻게 사람이 백퍼센트 완벽하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장애인은 약한 존재, 무조건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심어지곤 한다.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 것이 향후 철저히 개선되어져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고,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계셨던 나의 아버지 역시 ‘내 자식만큼은 아니었으면’하는 부정(父情)이 앞서 어린 내게 그토록 호된 자립(自立)을 강조하셨으리라.

그러나 알게 되었다. 우리의 장애로 인해 필요한 타인의 도움을 완강히 거절하는 것이 완전한 자립은 아니라는 것을. 삶 가운데 장애인이기에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장애인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 또한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조금은 모자란 듯 보이는 나의 부족이 나 스스로가 아닌 서로에 의해 채워질 때, 그렇게 이 험난한 사회에서 서슴없이 섞여 한 명의 구성원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전한 자립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잠깐만 도와주실래요?”

벌써 몇 바퀴째 머릿속을 빙빙빙 돌고 있는 이 한 마디를 당당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나 자신의 완전한 자립을 위해, 나의 부족이, 나의 도움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 이 사회의 진정한 자립을 위해 오늘도 힘차게 세상을 향한 또 한 걸음을 내딛어 보아야겠다.

"으라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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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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