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지원 받은 보조공학기기를 사용, 일하고 있는 모습. ⓒ유석영

대한민국 장애인고용을 위해 노력하시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님께 글을 올립니다.

저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1999년 1월 1일부터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시설장으로 일해 온 사람입니다. 지금은 경기도장애인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저는 귀 기관에서 대여해 주신 보조공학기기로 인해 매우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일반 문서를 음성으로 변환하여 읽을 수 있어 각종 공문 및 계획서 등을 스스로 처리하며,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하여 문서작성, 일정관리, 성경 읽기 등을 손쉽게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몇몇의 기기가 사무실 책상 위에서 제가 시력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을 아주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 동안에는 시설장 즉, 서류상 대표자라는 이유로 이와 같은 혜택을 전혀 누릴 기회를 갖지 못하고 대부분의 업무를 직원들의 눈을 빌려서 해 왔습니다.

오늘 저는 법 조항이나 제도를 따로 들추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사장님께서도 4인 이상의 종업원을 두고 있는 사업주와 대표자에게는 사무보조기기를 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리라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가 근로 장애인의 안정된 직업 생활을 돕기 위해 마련된 장치이므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더 많은 보조공학기기를 개발하여 중증장애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넓히는 데에도 힘을 써야 한다고 본인은 주장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제도가 의욕적으로 일하는 장애인 리더 지망생들에게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비록 대표자라 할지라도 공개채용 절차에 의해 임용된 사람이나 업무 성적이 좋아서 운영자로 승진한 경우에는 이 제도가 개인적인 발전이나 장기근속의 기회를 가로 막는다는 사실을 살펴 주셔야 합니다.

또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무원으로 임용된 사람에게 사무보조기기의 대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고급 인력의 업무 영역이 매우 편협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헤아리셔야 합니다.

물론 예산이 부족하여 공급이 수요와 반비례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제도는 장애인고용 확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오히려 전문성이 더 요구되므로 지도력 배양을 위해서라도 보조공학기기가 확실하게 지원되어야 할 것입니다.

혹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부여받은 업무가 장애인고용에 국한되어 있어서 경력관리에 대한 부분은 취급제외 업무인지 궁금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노동 현장의 근로 장애인들이 생산직과 하위직에서만 근무하기를 원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의 복지 제도는 빈부의 격차와 관계없이 무상복지, 무상보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교육 분야에서도 평생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제도와 적용의 범위가 크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규제완화'라는 차원에서 건설, 상공, 법조 분야에까지 법률과 정책 등에서 신축성이 배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장애인고용 분야에는 아직도 돌처럼 딱딱한 규제가 많아 비전을 품에 안은 장애인 리더 지망생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사장님!

노동 현장에 장애인 CEO가 많이 필요합니다. 복지 분야에 장애인 시설장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공직 사회에서 정책이나 제도를 다루는 장애인 공무원의 활약을 보고 싶습니다.

멋지게 발탁되어 보조공학기기를 활용하면서 대표자의 반열에서 국가에 기여하는 장애인 리더들이 두각을 나타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디 보조공학기기의 대여 규정의 제한을 풀어 보편적인 혜택을 근로 장애인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신속히 개선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저의 책상 위에 놓인 보조공학기기가 무척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걱정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다시 기관장으로 일하게 되면 이 모든 기기들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돈이 많으면 스스로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고가의 기기들이라 선뜻 엄두를 내기도 어렵습니다.

옛날처럼 직원들의 눈을 빌려서 업무를 처리한다면 제가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회귀하여 후진국형 인간으로 전락될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그리고 역경을 헤치며 열심히 경력을 축적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이 제도가 지닌 모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합니다. 그냥 CEO나 기관장이 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제 봄이 새롭게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큰 소망과 더불어 장애인고용에 활기가 넘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와 더불어 근로 장애인들의 장기근속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대책도 보완되고 지휘봉을 잡고 있는 장애인 사업주나 리더 지망생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안정된 고용 유지에 관한 내용들이 선물처럼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래봅니다.

우리나라 장애인고용의 백년 로드맵이 큰 틀에서 다루어지기를 염원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언제나 장애인의 편에 서서 일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글을 맺습니다. 감사사합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유석영 칼럼니스트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향상, 선한 가치의 창출과 나눔을 이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손작업 능력을 바탕으로 질좋은 맞춤형 수제 구두를 생산하며,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