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되었어?”

“떨어졌어요!”

“할 수 없죠. 집에서 데리고 있어야죠.”

이름 있는 대학도 아니고 대단한 회사도 아니고 갈 곳 없는 성인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요즘 대화내용이다. 특히 이맘때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과 맞물려 기존에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던 장애인 부모들은 여기저기 다른 주간보호센터를 찾게 된다.

인근 특수학교에서 매년 30여명의 발달장애인들이 졸업을 한다. 그 중에서 한 두 명만 보호 작업장으로 빠지고 대부분이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한다.

지역 내 주간보호센터는 이미 몇십명씩 대기자가 줄을 서있고, 부모들은 집에서 좀 떨어진 타 지역에라도 보내기 위해 정보력을 총 동원한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보낼 곳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결국 부모가 24시간 집에서 돌보게 된다.

보통 이용하던 주간보호센터에서 5년의 서비스기간이 종료된 장애인들과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몰리는 요즘엔 부모들의 한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2월이면 5년 동안 이용하던 주간보호서비스가 종료된다는 한 어머니는 “다른 주간보호센터로 면접을 갔는데 도대체가 주간보호이용자를 뽑는데 보호작업장 수준의 면접을 받고 온 느낌이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주간보호센터 평가에서 탈락이 되는 이유도 다양하다. ‘아이가 너무 산만하고 많이 뛰어서, 주간보호센터 사회복지사 팔을 자꾸 붙들어서, 공격적이라서, 소리를 질러서’ 등 어떻게 보면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을 문제로 보는 시각이 문제인 것 같다.

이미 대기자가 몇 십 명씩 줄서 있는 주간보호센터는 이용자중심이 아닌 실무자 편리위주로 이용자를 선택하는 유리한 조건에 있다. 그러다보니 주간보호센터는 한 달간의 평가기간을 두고 이용자를 선별한다. 한 달 동안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고 통과되면 계속 다닐 수 있지만 문제행동이 있다고 여기면 적응하지 못한다고 탈락시킨다.

중증발달장애인들의 프로그램인 주간보호센터에서조차 면접이나 평가를 통해 이용의 제한을 두는 장애 속에서의 차별이 부모들을 더 분노케 한다.

주단기보호센터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홍보는 해놓고 막상 가서 신청을 하면 여러 조건이나 단서가 붙는다. 그건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기관이나 시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장애인당사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라면 장애의 정도에 중점을 두지 말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당사자의 의견에 따라 선택권을 주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장애당사자주의에 입각해 발달장애인들은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고, 소외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다보니 부모들이 당사자가 되어 목소리를 내지만 발달장애인법에 따르면 부모도 때에 따라서는 제3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중증발달장애인들은 그들이 처해있는 환경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오히려 그동안의 차별보다 더 심각한 차별 속으로 내몰릴 우려만 커졌다.

발달장애인이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내 몰리는 일은 어제 오늘의 얘기만은 아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시행된다고 했을 때 많은 어머니들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인권이란 미명아래 피해자, 가해자로 나뉘면서 문제행동이 심하다고 여기는 발달장애인들은 또 다른 코너로 몰리게 되었다.

다른 유형의 장애 속에서 배제되고, 같은 발달장애인끼리도 장애정도에 따라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 속에서의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중증장애인들의 유일한 프로그램인 주단기보호센터가 확충되어야 한다.

수급이 열악하다보니 주단기보호센터는 찾아오는 장애인들을 평가하고 실무자들이 힘들다고 여기는 장애인은 누락시킨다. 그건 장애인당사자와 가족한테 대못을 박는 일이다.

그런 폐단은 없어져야 한다.

주단기보호센터의 열악한 환경을 예산 탓으로 돌리지 말고, 발달장애인들의 유일한 휴식처인 주단기보호센터의 개체수를 늘리고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모든 프로그램의 선택권을 발달장애인당사자한테 줘야한다. 한 달간 이용료 30여만원을 들고 찾아간 주간보호센터에서 외면당하고 돌아가는 부모들의 참담한 심정을 헤아린다면 하루빨리 주단기보호센터의 시스템을 뜯어 고치는 수정작업을 해야 한다.

차별이 절망적인 건 절대로 행복한 사회를 꿈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별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삭막하게하고 갈등을 야기 시킨다. 일반적으로 우열을 가리고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외면하는 차별은 사회를 아프게 한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장애 정도가 심하고, 힘든 사람이 우선시 되고 배려되는 그런 차별이 꼭 필요하다.

누워있는 사람이 편하게 살아 갈수 있는 공간에서 앉아 있는 사람은 더 편리함을 느낄 것이다. 가장 힘든 곳부터 돌아보는 사회만이 누구나 행복해지는 보편적 행복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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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명 칼럼리스트
발달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인식개선 사업 차원으로 시내 고등학생, 거주시설장애인, 종사자들한테 인권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당사자의 삶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해 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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