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벽에 오르다’에서 시각장애인이 암벽등반을 하는 모습. ⓒ서인환

2009년부터 5년 계약으로 삼성화재는 장애인의날을 맞아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에 장애이해 드라마 제작을 지원하고 있으며, KBS2는 이 드라마를 방영해 오고 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4년에도 장애이해 드라마 제작은 지원되었다.

2013년에는 ‘우리는 외계인이다’가, 2014년에는 ‘하늘벽에 오르다’가 각각 제작되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은 모두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학생이 사고를 친 후 그 처벌로서 장애인에게 사회봉사를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장애인을 무시하다가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장애인을 이해하고 선도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장애인이 주체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개자로 나온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것보다 먼저 생각해 볼 문제는 장애인에게 봉사한다는 컨셉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스스로 반성하라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내용상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라는 대사가 있어 장애인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장애인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해서 인간이 변화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상황인 장애인도 열심히 사는데’라는 의미로 장애인을 대상화함으로써 장애 이해가 아닌 또 다른 편견을 심어주기도 한다.

왜 장애인은 사회봉사의 대상이어야 하는지, 왜 장애인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는지 등의 상황에 장애인식에 부정적 영향은 없는지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작가들은 아직도 장애인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기는 부담스럽고 문제아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생각들에는 '장애인은 착하다'는 사회적 관념이 들어 있으니 그 또한 편견인 것이다.

출연진들이 매년 재능기부로 무료로 출연하고 있는데,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배우 정선경(극중 박영선생)이다. 정선경은 문제학생의 지도교사로 자상하고 따뜻한 교사상에도 잘 맞고, 무엇보다 그녀가 장애인식개선에 참여하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편의 드라마 중 먼저 ‘하늘벽에 오르다’를 살펴보자. 주인공 강태호(배우 김동준)와 유진(시각장애역, 김보라)은 17세 고등학생이다.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유진이 암벽등반(클라이밍)을 하겠다고 하자, 코치는 “장애인이 어떻게 암벽을 타, 도전과 열정 다 좋은데 무조건 한다고 다 돼요? 장담하는데 앞을 못 보면 한 발짝도 못 움직입니다. 어쩌다 저렇게 된 거에요?”라고 장애인은 할 수 없다는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다.

그런데 유진의 해보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하여 시켜보니 생각 외로 잘한다. 코치가 언어로 등반을 지도하는데, 삼지점을 잡고, T자 자세로, 시계방향으로 몇 시, 두 개째 위의 홀더를 잡고 등등 언어적 지시를 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위치를 말해 줄 때는 방향과 거리를 말해주지만 암벽등반의 정보를 말로 지시하는 데는 조금은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어쨌든 도와주는 방법은 잘 제시하고 있다.

열심히 훈련하여 손에 굳은살이 박히자, 유진은 정선경에게 “굳은살 보기 흉하지는 않나요? 일부러 지독한 선생님으로 골라 소개해 준 것 아니예요”라고 질문을 한다.

이 장면은 시각장애인이 자신은 볼 수 없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미에 대해 신경을 쓰는 청소년의 심리, 그리고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와 친근감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정선경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잘 생긴 선생님이 저 분 뿐이라”라고 답한다.

유진이 아빠와의 대화에서 “유진아, 쥬스 여기”, “아빠 여기”(사과를 깎아서)라고 서로 물건이 있음을 알리고 주고받으면서 언어적 단서를 제공함을 보여주는 것 역시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진 엄마가 “사과 참 예쁘게 잘 깎았다”라고 칭찬하여 시각장애인이 훈련을 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음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태호는 학교 이사장 아들과 싸움을 하여 장애인인 유진이 멘토 역할을 하는 맨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조치를 받게 된다.

태호의 아버지(강준수)는 유명한 산악인으로 등산 도중 일행을 희생시키고 혼자 장애인이 되어 돌아와 술에 찌들고 울분을 가족에게 폭발하는 괴물로 변해 있다. 유진 아빠가 정보 검색을 통해 유진에게 읽어주는데, 알피니스트로 히말리아 마나슬롯 등반 도중 사고 등등 정보를 시청자에게도 들려준다.

시각장애인이기에 눈을 맞추지 않고 말하는 유진은 태호와의 첫 만남에서 상대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태호가 암벽등반에 관심이 없음을 눈치 채고 “내 얘기 듣고 있니?”라고 묻는다.

태호는 “아이들이나 패고 다니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는 유진을 아버지와 비교하면서 ”그래도 암벽등반이라도 하니 네가 더 낫지 않을까? 집에만 있지는 않지 않느냐?“고 말한다.

“아버지도 등반을 하지 않았느냐? 왜 아버지가 그렇게 등반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며 멘토 프로그램을 권하는 정선경에게 태호는 “앞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멘토가 되요? 아빠이야기는 꺼내지 마세요.”라며 아빠가 상처임을 드러낸다.

정선경의 입을 빌어 “아빠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 입장이 되어야 해, 왜 위험한 산에 갔는지 궁금하지 않니?”라며 장애인 인식에도 상대의 입장이 되어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함을 지적한다.

태호는 “선생님도 저 입장 모르시잖아요?”라며 상대의 입장만 요구하지 말고 내 입장을 이해하라고 말한다.

정선경이 멘토 프로그램인 클라이밍을 안하면 더 이상 처벌을 막아줄 수 없다며 프로그램 참여를 설득한다. 태호는 결국 유진에게 문자메시지로 낮에 멘토를 거부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게 되는데, “문자 보내면 볼 수나 있나?”라고 혼잣말을 하며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의 어려움을 지적한다.

정선경이 유진과 만나 “오른쪽에 단팥죽, 가운데 팥빙수, 왼쪽에 수저”라고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정선경은 유진에게 팥빙수를 사주며 태호를 다시 부탁하는데, “아버지 충격이 너무 커서 그렇지 나쁜 애는 아니다. 네가 힘들었을 때 생각해 봐, 아빠가 갑자기 다리를 못 쓰게 되어 충격이 커서, 가족들도 얼마나 힘든지 잘 알잖아? 아빠가 힘들어 하는 걸 옆에서 보는 것이 힘들겠지?”라며 태호를 변호한다.

유진이 실명하였을 당시 생을 포기할까도 생각하였고 옥상에 올라가 죽음을 생각하는 장면도 있는데, 정선경은 유진은 죽을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고 설득하며 유진과 인연을 맺는다.

“이젠 옆에 누군가 없으면 밥을 먹을 수도,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다.”고 유진이 말하자 연습하면 불편하지만 가능하다는 말로 장애수용의 태도를 가지도록 변화시킨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어서 고통을 상상만 할 수 있지만 얼마나 불편한지 더 살아본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부모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정선경은 말한다.

등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태호에게 유진이 도와주겠다며 다시 프로그램 참여를 권고한다. “아빠가 유명한 등반가던데, 앞도 보이지 않는데 왜 내가 기를 쓰고 올라가는지 궁금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카라비너(로프를 거는 장치)를 선물로 준다.

코치가 정선경에게 암벽등반을 해 보라고 권한다. “얼굴에 근심이 있는데 등반을 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라고 말하는 코치에게 “높은 데 올라가면 무서워서 다음에 하겠다.”며 자리를 떠난다. 코치가 정선경에 대한 관심을 살짝 흥미로 삽입한 것이다.

유진과 태호가 암벽등반을 하며 어느 정도 서로 가까워지고 마음을 여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태호가 등반에서 동료를 잃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를 생각하다가 유진에게 등반의 리더(확보자)로서 설명해주는 것을 잠시 태만하게 되어 유진이 바닥에 떨어지는데, 이 때 유진이 태호 어깨에서 손을 얼굴로 올려 확인한 후 뺨을 때린다. 시각장애인의 행동을 묘사한 장면에서 어떻게 촉각으로 사물의 위치를 판단하는지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루트 파인딩(머릿속으로 홀더를 집고 올라가는 계획)은 시각장애인 보행에서 오리엔테이션과 모빌리티 원리와 마인더 맵그리기를 보여주며, 오버행(수직 이상의 경사면)을 넘는 것을 목표로 훈련을 하다가 루프를 풀어주고 잡아주는 리더자, 시각장애인이므로 확보자가 필요하여 태호가 그 역할을 하면서 어느 정도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되며 친숙해진다.

휴식시간에 컵라면을 주며 유진에게 “혼자 먹을 수 있지?”라고 하며 도움은 필요한 만큼만 한다는 과잉보호가 안내법이 아님을 시사한다.

유진은 태호에게 마크 웰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꿈은 오직 실천할 때만 이루어진다. 15센티미터씩 올라가면 못 할 일이 없다.”라고 말한 마크 웰먼은 하지마비 장애인으로 팔힘만으로 기어서 1천미터 절벽을 9일간 올라가 성공한 사람이다.

마크 웰먼도 친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유진은 말한다. 마크 웰먼은 캘리포니아 엘카피딩봉을 등정했으며,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성화대에 올라가서 점화를 한 인물이다.

유진을 처음 만났을 때 “어쩌라고? 너는 집에 처박혀 있지는 않잖아?”라고 했던 태호가 변화한 모습, 유진 아빠가 집에 들어오자 점자책을 보다가 “불켜줄게, 켜졌어?”라고 확인하는 말에서 심리적 변화와 시각장애인은 불이 필요하지 않지만 아빠를 위해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매달려 있는 심정을 상상이나 해?”라고 말한 유진을 생각하다가 태호는 장비를 두고 간 것을 핑계로 유진의 집을 찾아간다.

마크 웰먼의 등반 장면. ⓒ서인환

유진이 집에서 태호와 대화를 하던 중 코치에게서 태호에게 전화가 걸려오자, 전화를 달라며 손을 내미는 모습에서도 시각장애인의 행동특성을 보여주려 하였고, 잘못했다고 빌고 있다고 코치에게 잘 말해 주겠다며 참여를 권하는 모습에서 두 사람이 마음을 열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진이 태호에게 갈 데가 있다며 안내를 부탁하는데, 사진교실에 데려가 태호를오늘은 내 눈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안내를 하다가 “도망가면 죽는다”고 농을 하며 친숙감을 보여준다.

선유도공원에서 눈 앞에 뭐가 보이는지 설명해 달라고 주문하자 태호는 “들판은 갈대로 꽉 차 있고 바람이 불면 물결이 치는 것 같다. 멀리 산이 보이고 하늘이 높다.”라고 설명한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어떠냐고 묻자 각도가 기울어졌다고 설명해 준다. 사진 모델로 서라고 주문하고는 유진은 안 웃는 것 다 보인다고 보이는 것처럼 언어유희를 한다.

유진은 “희한하지, 볼 수도 없는데 사진은 찍어서 무엇할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진 속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이 들어 있어. 단순히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만지고 느낀 기억들이다.”라고 말해준다.

태호가 “마크 웰먼은 올라가면서 무슨 생각했을까? 말도 안 된다.”고 하자, “우리 사진 찍는 것처럼?”라고 유진은 묻고, “나도 할 수 있을까?” 태호가 걱정하자 “우리도 15센티미터씩만 나가자.”고 유진은 답한다. 일종의 동료상담이다.

유진은 “누가 지나가느냐?”고 묻고 “그렇다.”고 태호가 대답하자, 행인에게 자신들을 사진찍어 달라고 유진이 직접 부탁한다. 이는 시각장애인의 도움 요청하기 방법과 같다.

유진이 방지턱에 걸려 넘어지게 되고,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하다.”며 태호는 유진을 업어준다. 10분은 걸어야 한다며 업는데, 업히면서 “딴 짓하면 죽는다.” 등의 대화에서 두 사람의 라포형성을 보여준다.

유진이 태호에게 등반대회에 참가하여 확보자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자, 내가 해도 되겠는지를 되묻지만 이는 기쁘게 승낙하는 말이다.

대회에서 유진은 태호에게 사람들 많이 왔느냐고 분위기를 묻는다. 서로 하나로 호흡하게 되어 위기가 있었으나 등반대회에서 오버행에 성공하게 되고, 오버행에 태호도 도전하게 된다. 정선경이 태호 아버지에게 대회에 와 달라고 전화로 부탁한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대회장에 와서 멀리서 태호의 성공을 보고 돌아가는데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가 치유됨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음성으로 처리된 장면에서 “태호야, 네가 산에 왜 가느냐고 물었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정신 차리고 나면 산에 가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 살아오고 나서 왜 죽어 오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 많은데 네가 그 이유를 찾아 주었구나.”라는 말을 들려줌으로써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만이 아니라 심리적 치유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를 이용하여 장애이해 교육을 한다면 드라마를 본 후 다음과 같은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시각장애인은 어떤 불편이 있는가?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에티켓과 안내법은 무엇인가?

-장애인이 되었을 때의 심리적 갈등은?

-시각장애인이 이해하도록 상황을 설명해주는 방법은?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무엇인가?

-태호가 장애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어떻게 변하게 되었으며, 그 계기가 무엇인가?

-장애인에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장애인에게 도전의 의미와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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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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