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통역사가 직면하는 문제는 청인이 말하는 내용을 농인에게 가장 적합한 수어로 전달하는 것과 반대로 농인의 수어를 청인에게 가장 적합한 음성언어로 전달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이다.

보통의 상황에서는 큰 문제 없이 수화통역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아무리 유능한 통역사라도 한국어와 한국수어의 차이에 따른 간극을 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엄연히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수어가 한국어의 영향을 일부 받는 것은 사실이나 음성언어인 한국어와 시각언어인 수어가 가지는 특성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한국영화에 자막이 전혀 제공되지 않았을 때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한국영화를 보기 싫다는 남편(농인)을 억지로 끌고 가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수화통역을 하며 영화를 관람한 경험이 있다.

당시 북한군 병사 역할을 하던 송강호씨의 북한 말투와 북한국 병사들이 한국어 유행가를 따라 부르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분단의 아픔을 느끼기도 하고 실재 저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속에 상당히 재미있게 영화를 관람하였지만 남편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며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수화통역을 한다고 해도 북한군 병사의 말투를 수어로 전달할 수 있을까? 내용은 전달할 수 있지만 특유의 어투는 전달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북한군 병사들이 금기시된 한국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그 순간 많은 관람객들이 느꼈을 같은 민족으로서 느끼는 묘한 동질감을 농인인 남편이 같이 느낄 수 있을까? 농인에게 한국의 유행가는 어떤 정서나 감정과 연결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반면 짐 캐리가 주연을 하는 마스크라는 영화를 관람하러 갔을 때는 정 반대의 현상이 생겼다.

짐 캐리의 현란한 얼굴 표정과 변화에 남편은 배꼽이 빠져나갈 듯이 재미있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나는 그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은데 무엇이 그렇게 재미를 주는 것인지 의아한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관람하였다.

이것은 바로 농인은 시각을 기초로 인식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눈으로 보여지는 정보를 통해 상황을 유추하고 해석하는 것이 농인들의 일반적인 습성으로 청인보다 훨씬 시각적인 정보를 흡수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농인과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된다.

따라서 농인들이 수용할 수 없는 청각적인 정보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농인의 특성에 맞는 시각적 정보를 통해서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제공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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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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