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는 장애관련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장애가 있음을 판정받아야한다. 장애의 유무는 장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장애 유무를 판정하는지는 각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으로 장애인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15가지 장애 유형 중 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장애등급을 결정하기 위한 의료적인 검사를 추가적으로 하고 있다.

장애인이 장애 등록을 할 때는 대체로 병원을 방문하여 의사로부터 진단 결과서를 받아 장애 유무와 등급을 판정받는다. 필자의 경우도 서울에 있는 대학종합병원 안과에서 여러 종류의 시력검사를 한 후 등급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장애인이 병원을 방문해 장애 등록과 등급 판정을 위해 소비하는 병원비가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필자도 3년 전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장애 재심사를 받는데 약 35만 원 정도 지불했다. 당시에 답답했던 점은 필자는 빛 정도만 겨우 보며 거의 전맹이어서 그냥 간단한 시력 검사 기기로 눈의 내부만 보아도 중증임을 알 수 있을 터인데 망막검사, 시신경검사 등과 같은 추가적인 고가의 여러 시력 검사를 받아야 했었다.

주위 장애인들도 등급 검사를 위해 30-40만 원 정도의 검사 비용을 지불한 경우가 많았다.

생각을 해보면 필자의 경우처럼 고가의 추가적인 의료검사가 아니더라도 장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터인데 굳이 고가의 의료검사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구체적으로 장애등급을 결정하기 위한 의학적인 자료가 필요해서 여러 종류의 추가 검사를 실시하는 것 같다.

하지만 더욱 더 황당한 점은 장애인이 고가의 비용을 들여 장애등록과 등급을 신청하더라도 오히려 등급이 하향조정되거나 심하면 등급판정을 유예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면 가장 기본적인 장애 판정은 어떻게 시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논쟁이 될 것이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면 현재와 같은 복잡하고 번거로운 의료 검사가 계속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장애등급제가 사라진다는 것은 기존의 공식화된 장애등급 기준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애의 유무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판정을 해야 할 것이다. 본 칼럼에서는 미국의 장애 판정을 위한 기본적인 검사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미국의 장애에 대한 정의를 통해 장애의 의미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서 장애란 일상생활과 관련된 활동 중 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활동을 하는데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손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동법에서 일상생활과 관련된 활동의 예로는 자기관리하기, 근육노동을 요하는 작업을 수행하기, 보기, 듣기, 음식 먹기, 잠자기, 걷기, 서있기, 들어올리기, 몸 구부리기, 말하기, 숨쉬기, 학습하기, 읽기, 집중하기, 생각하기, 의사소통하기, 일하기 등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나열된 일상 활동을 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경우라면 장애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미국은 장애등급제가 없으니 손상의 정도를 등급화할 필요는 없으며, 손상이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만 판별하여 장애 유무를 판정한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굳이 복잡하고 고가의 의료검사를 실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실례로 필자의 경우 미국에서는 시각장애 유무 즉, 시력의 정도가 보는 것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망막검사나 시신경정밀검사와 같은 추가적인 검사 없이 시력의 정도를 의사가 확인하였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의사와 같은 의료전문가의 소견서를 토대로 최종적인 장애 유무를 확인한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의사의 소견서에 장애등급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리능력이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 대학 이상의 고등수학을 이해하거나 분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거나 혹은 손가락 움직임만을 감지할 수 있어 일상적인 보기활동과 이동이 현저하게 어렵다 등과 같은 형식으로 장애인의 신체적 손상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하는 것이 보통이며,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를 토대로 장애 유무를 확인한다.

이 처럼 손상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 장애 판정의 주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고가의 추가적인 의료검사를 실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미국에서는 장애 유무를 판정받은 후 장애인이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서비스 특성에 따라 적용되는 적격성 심사 기준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서비스 수여 여부가 결정된다.

예컨대,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장애가 직업을 구하고 유지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자립생활서비스의 경우에는 장애가 일상생활을 하는데 중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자립생활센터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 때 고려되는 것이 장애인의 장애 특성, 재활욕구 및 목표, 장애인의 능력, 환경 등이다.

즉 1-6 등급과 같이 정해진 공식에 맞추어 서비스를 기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장애를 포함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객관적이고 세밀히 고려하여 재활상담사와 같은 장애관련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종사자가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단순히 장애의 경중만으로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파악·제공 하지 않고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서비스의 종류와 양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신장장애인은 신장투석 후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하지만 장애등급과 활동지원 평가 기준에 따라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맡은 재활상담사가 신장장애인이 신장투석 후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한만큼을 객관적으로 확인하여 장애인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결론적으로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면 굳이 고가의 복잡하고 추가적인 의료검사는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의료검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등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손상 정도가 일상생활이나 직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오히려 장애등급제 폐지의 궁극적인 목적 중에 하나인 장애인의 장애 특성, 재활 목적, 환경 등을 객관적으로 고려하여 서비스 수여 여부를 결정하는 공정하고 올바른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만일 새로운 장애 판정을 위해 신체 손상율·장애율 몇 퍼센트를 정하고 장애인을 그러한 퍼센트에 또다시 맞추려고 한다면 현 장애등급제와 별반 차이가 없는 새로운 등급제가 될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가장 핵심적인 목적은 등급에 장애인이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개별적인 특성과 환경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혁신적이며 새로운 서비스 전달 패러다임을 구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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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선 칼럼리스트
재활복지전문인력양성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복지 분야의 제도 및 정책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미국의 장애인 재활서비스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현재 장애계의 주요 이슈인 장애 등급제 폐지, 재활서비스 대상자 판정, 개별서비스 제공 방식과 서비스의 종류, 원스톱 서비스 체계의 구축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얻은 실무경력을 토대로 정책적인 의견을 내비칠 예정이다. 미국 주정부 재활기관에서의 재활상담사로서 실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얻은 지식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선진 장애인 재활서비스 제공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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