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감상하고 있던 손님이 장애인 작가를 보고 난 후 인상이 확 달라지는 모습. ⓒ안태성

1편에서 계속>

그렇다면 장애인을 포함한 한국인들은 식당의 밥값과 그림 값에 대하여 어떤 분류를 하고 있기에 공짜가 아니면 받지 않는 ‘진귀한 풍토’ 가 생겼을까?

"그림을 그리면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라는 한탄과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인식 근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선진 강국 대열에 들어서도 이 한탄은 소비자가 되는 국민들에게 역으로 작용한다. 그림을 사봐야 이익이 없고 밥도, 쌀도 안 나오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 배도 부르고 똥도 나온다. 옷을 사면 폼도 나고 추위도 막는다. 그러나 그림을 사면 아무 쓸데가 없다. 차라리 벽이 썰렁하면 옷이나 사진틀, 그림이 좀 있는 달력을 거는 게 훨씬 낫다는 인식이 우선이다.

이런 인식선상에서 예술 무용론(無用論)이 대두된다. 즉 아무 짝에 쓸모없는 무익한 것이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그림은 시나 소설처럼 감성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예술품’은 문학보다 천대받는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무얼 먹으면서 살까? 아니 어떻게 살아갈까?

화가들이 가장 많이 가입해 있는 한국미술협회의 회원은 3만여 명이지만 그 외 각 지역과 자잘한 미술단체와 개인작가들 까지 합치면 미술 인구는 5만여 명이 넘는다.

이 속에는 장애인 작가들도 있다. 거기다 해마다 전국에 산재한 미술대학에서 신입생을 받는다. 졸업한다 해도 뚜렷한 희망조차 없는데 작가는 ‘용가리 통뼈’처럼 계속 늘고 있다.

팔리는 작가가 되려면 유명대학 교수 정도의 직함이 있어야 되고, 표현이 거칠고 난해하더라도 소위 ‘격조’라는 게 있다고 하면 팔린다.

인맥은 두말할 필요 없이 들어가 있어야 하고 사바사바(?)를 잘 해야 하며, 교수직함이 있더라도 인물화는 전혀 팔리지 않으니 팔릴만한 그림을 고민해야 한다.

이따금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하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몽땅 팔렸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처럼, 그림도 그리는 당사자의 직업이나 요란뻑적지근한 유명세가 있어야 팔린다.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수만 명의 화가들은 우울과 비관, 고독감이란 스트레스가 쌓인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한 뒤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교사나 교수가 되려는 것은 필사적이고, 이것조차 안 되면 학원을 하거나 보따리 장사라는 강사를 하고, 아니면 삽화가나 이런저런 직장 등을 잡아야 한다. 그래도 간혹 굶거나 근근이 먹고 살 지경이다.

전시회는 어떤가? 화가 활동의 필수인 전시회는 적어도 6~7년에 한번은 꼭 열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전시회를 열기 위해 그동안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여기에 모두 ‘꼴아 박는다’.

단체전을 해도 마찬가지다. 지원금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다. 여성은 화가입네 해서 시집이라도 좀 가지만 남성은 대부분 고독을 씹으며 홀로 살아간다.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국가와 사회 대신 문화사업을 하며 거지처럼 살아간다. 필자도 한동안 산꼭대기 움집과 무허가 판자집을 돌며 간신히 연명한 적도 있다.

한국의 사회 구조와 인식체계가 만들어내는 처참한 문화상황이다. 이런 구조 하에서 장애인이 작가로 나선다 해도 그림을 팔아먹고 살기는 힘들다는 것은 명료해진다.

정부가 장애인 작가들의 호소에 부응하여 이들에게 매달 월급처럼 지원금을 준다하더라도 다행히 먹고 살 수는 있겠지만, 소비자가 그림을 사지 않는다면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장애인을 기피하고 꺼리는 오랜 전통을 가진 한국적 풍토에서 장애인 작가가 자력으로 성장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보다 어렵다.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작가의 정체가 장애인이라고 ‘탄로 나면’ 그림을 파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어쨌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종합적으로 따지자면, 장애 유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국만의 문화적 풍토가 아닐 수 없다.

시원하고 예쁜 그림을 봐야 장수하고 잘 산다는 기복 심리는 사회적 단순함을 부르고 더럽고 거친 것을 배격하는 인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심리선상에서 당연히 장애인이 희생되지만, 장애인도 똑같은 인간이기에 비장애인과 함께 동일한 가치인식을 소유한다. 전혀 발전도 없고, 진화도 없고, 단순한 흑백논리만 자리 잡는 것은 명약관화한 이치다.

장애인 운동이나 어떤 인권운동이라도 문화가 근간이 되지 않으면 얄팍해지고 오래가지 못한다. 문화는 제쳐놓고 오로지 구호만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아니면 차라리 돈 안 되는 문화 예술은 이참에 모두 없애버리고 오로지 밥만 먹고 똥만 잘 싸는 것에 필요한 것만 남겨놓으면 어떨까?

그럼 작가된답시고 꼴값 떠는 일이나, 화가입네 하며 모가지에 힘주는 꼬락서니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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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성 칼럼리스트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왕따와 차별로 해직됐다. 현재 “圖와知” 라는 조직원 한명 뿐인 곳의 명목상 대표다. 백수 실업자로 2014년부터 담배 값이 좀 나온다니 할 일없는 형편에 아주, 조금 반갑다. 미술칼럼과 만화, 만평을 통해 현재 장애인에겐 약간 생소한 예술 문화의 저변과 미래, 장애인의 현실 등등을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면서 ‘슬프게’ 전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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