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치는 정당정치다. 같은 정치적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당을 구성하고 당에서 정책을 개발하여 국민들에게 표방하고 지지를 받는 비율에 따라 여당이나 야당이 되어 정부를 리드하거나 감시하는 기능을 나누어 맡는다.

정당정치에도 폐단은 있다. 의원 개인의 의견보다는 당의 거수기로 작동한다거나, 당의 지도력이 개인에게 집중될 경우 사당화된다거나, 국민들의 투표과정은 하나의 통과절차에 불과하고 국민보다는 당을 우선적으로 섬겨야 한다거나, 당의 선택 없이는 새로운 인물의 탄생이 불가능하다.

뿐만아니라 여당과 야당체제는 마치 조선시대 당파와 같아서 당리당락에 따라 파벌싸움이 연속된다는 점, 선거에서 철새를 낳고 당의 전통성보다는 지지율을 위해 정치이벤트가 작동되어 공약 이행율이 떨어진다는 점, 당과의 연대를 따라 정치가 당의 사업화된다는 점 등도 정당정치의 폐단이라 하겠다.

이러한 폐단에도 불구하고 당을 없애겠다는 공약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그토록 모순이 많다면 당읕 없애자는 말도 할 법한데 말이다.

그런데, 기초자치단체 지방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는 각 당의 대선공약이었으며, 정당공천제가 많은 문제점이 있어 없애는 것이 개혁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먼저 정당공천제의 정의를 알아보자. 정당공천제란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를 정당의 공조직을 통해서 뽑는 제도를 의미한다. 즉,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 등의 선거 후보자가 정당을 통해서 출마하는 형식이다.

이런 정당공천제도는 의회정치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정당공천제의 장점으로는 정당정치 활성화, 전국의 조화로운 정책조정기능 작동, 인재영입과 추천을 통한 신인발굴과 입문 창구 역할, 여성과 장애인 등 약자나 소수자의 정치참여 보장, 대통령의 정치실천과 국가 운영의 안정적인 네트워크 형성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자 노력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이며, 기초 지방선거에서의 입후보자 정당공천제를 실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방자치법 제정은 1949년이고, 지방자치제는 1952년에 최초로 시행되었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시행하기 바로 직전에 5·16이 일어나 오랜 기간 동안 지방자치제도 중단되었고, 1998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였으나 기초 정당공천제가 완전하게 시행된 것은 2006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지자체 선거에서 오랜 염원처럼 추진해 왔던 정당공천제를 불과 두 번 실시해 보고 바로 폐지를 공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지자체의 정당공천제 폐지법안의 발의는 2008년 이명수, 김종률, 정장선, 이시종 의원 등에 의해 발의되었으며, 공천제를 한 번 실시한 후 바로 폐지논의가 대두된 셈이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당에서 추천을 하지 않으면 그 힘이 오히려 커질 수도 있다. 정당표방을 금지하더라도 경력에서 정당활동을 표시하거나 지역 의원과 함께 한 사진 등을 통하여 사실상 정당표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출판기념회가 출정식이 되는 모습들을 보면 중앙공천권만 폐지될 뿐 사실상 정당표방은 유효한 것이다. 이 경우 지역구 의원은 지역 토호가 될 것이고, 이것이 다시 정치기반이 될 수도 있다.

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다고 특권을 내려놓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명분이 폐지 주장의 발단인데, 지자체의 자율성보다 외려 중앙의 2대대 역할로 전락해버린다는 비판도 있다.

정당 공천제가 없어지면 지역 토호의 영향력이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거나 정책선거보다는 경제력 선거가 될 수 있다거나, 후보 난립 등으로 인한 선거비용이 지나치게 크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위헌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지자체 입후보자의 정당표방이 선거법 위반(공직선거법 제84조)이라는 판결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위헌결정을 한 바 있으며, 중앙은 공천제(공직선거법 제47조)를 하면서 지자체는 못하도록 금하는 것은 형평상 위헌이라는 시비가 붙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얼굴을 알린 기존 정치인들에게는 유리하지만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하는 정치 신인에게는 매우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면, 정당표방이 없어지면 치열한 경선을 거치지 않으므로 지역 여당은 여러 명이 출마하여 서로 표를 나누게 되어 야당이나 신인에게 오히려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고 해도 완전한 폐지는 아니다. 비례대표는 공천제를 통하여 계층별, 직능별 대표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데, 여성은 50%, 장애인은 10%를 할당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비례대표를 선출함으로써 다양한 인사들의 참여를 당에서 배정할 수 있는데, 공천제를 완전 폐지할 경우에는 이러한 기능이 사라지므로 여성에게 매우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정당공천제를 통하여 여성의 당선률이 3%대에서 13%대로 올랐다는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비례대표만 공천제를 유지할 경우 정당공천제는 부분적 폐지로 지역구 의원만 공천제가 폐지된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무소속은 아니다. 이력에 정당활동이 기재되는 이상 정당을 업고 나와야 유리하므로 결국 정당표방제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출마자가 많아 가, 나, 다로 표기되면서 5번 이후의 출마자는 당선권에서 멀어지고 유권자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천해 준 중앙당의 영향력이 커서 여러 가지 이권 청탁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하여 기초의원의 비리가 매우 극심해졌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공천제가 없어진다고 하여 비리가 줄고,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일할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비례대표의 폐지가 여성과 장애인에게 불리하다 말은 공천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고, 다른 목적으로 공천제 폐지를 반대하면서 소수자를 공천제 폐지 반대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여성은 명부제를 통하여 정치 참여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장애인 등의 소수자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은 비례대표제를 살려 할당을 한다고 하여도 다른 다양한 소수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방안은 거론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지금도 비례대표로 당선된 사람은 지역구를 가진 사람에 비해 차별을 받는 것이 사실인데, 그러한 차별이나 역량의 격차는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공천제의 폐단이 있다면 이를 극복하고 보완해 나가려 하지 않고 폐지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역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공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상향식 경선을 확실하게 실시한다거나, 자율성 담보로 당을 개혁하기 위하여 그토록 원해왔던 공천제를 단번에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당 스스로가 자정력을 포기한 처사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 비례대표 기능을 살리는 방안을 강구하여 공천제를 폐지한다고 하여도 지금처럼 장애인 등 소수자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확신은 없다. 당장 우리가 나눠 먹을 자리부터 찾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대충 넘어가 버릴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정말 자치성과 다양한 인사의 참여를 원한다면 비례대표의 수를 10%에서 30%로 늘리고 다양한 직능과 소수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지자체의 중앙 예속화를 막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장치마련이 연구되지 않고 단순히 공천제 폐지만으로 해결된다고 보는 단순성은 피해야 할 것이다.

지역의 지지세력 쏠림 현상으로 지역갈등이 심하고, 특정 지역은 정당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저절로 되니,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여 모두 정당소속 없이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역 유지나 지역 토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한다고 지역성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제4회 지방선거에서 공천헌금으로 49건의 사건이 있었고, 단체장 230명 중 절반이 인허가관련 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은 공천제의 피폐가 아니라 정당의 부패와 인물의 자격성 문제일 것이다.

아메바 같은 정치 조직은 제도가 변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편법의 적응력은 실로 대단하다. 정치발전과 개혁은 의식의 변화와 내부적 장치, 그리고 국민의 심판으로 달성되어야 한다.

정치발전은 많은 시행착오와 국민의 의식변화로 이루어져야 하며, 올바른 투표권 행사와 다양한 정치참여 보장을 전제로 발전해야 한다.

지문은 그 사람의 독창성과 권리를 상징한다. 역행으로 인하여 장애인을 지문 없는 인간으로 퇴화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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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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