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즈음, 우리 집 거실 풍경은 마치 지하철 공사장처럼 어수선하다.

무질서하게 놓인 그릇들, 이 사람 저 사람이 통로를 따로 두지 않고 앉아서 음식을 장만하기 때문에 시각장애를 가진 나는 이동권을 상실한 채 제한된 구역에 머물러야 한다.

용무가 있어 움직이려 하면, "지금 바쁘니까 그 자리에 그냥 계세요"라 말하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통로가 없어져 실종된 이동권. ⓒ유석영

일반적으로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장애인이 지닌 특성과 고충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회적 모순이나 편견이 불편과 차별을 유발할 때 가장 먼저 인식하고 시정이나 차별을 요구하기도 한다.

정책 입안자들보다, 공부 많이 한 학자들보다, 현장 실무자들보다 예리하고 정확하게 문제와 대안을 적절하게 생산해내는 장애인 가족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동권과 선택권을 가로 막기도 하며, 은연중에 소외감을 적지 않게 주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이 상시 사용하는 물건이나 도구의 위치를 예고 없이 바꿔 놓는 일은 다반사고, 어정쩡하게 문을 반쯤 열어놓는 다거나 통로에 생소한 물품들을 늘어놓아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또한, 지체장애로 인해 앉아서 이동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바닥에 먼지를 청소하지 않거나, 생각 없이 높은 곳에 중요한 물건을 올려놓는 일이 의외로 많다.

특히 장애를 가진 며느리에 대한 배려는 시월드에서 매우 허약하게 나타난다. 일할 기회나 참여할 수 있는 여건들에서 배제되고 있지만, 그 가족들이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명절은 다함께 즐거워야 한다. 일도 같이 하면서 놀기도 같이 놀아야 한다. 아무리 바쁘고 복잡하더라도 장애를 가진 식구가 이동과 마음의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한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충분히 설명하고 당사자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중증장애인 며느리가 밝고 명랑하게 명절에 참여하도록 가족들이 나서서 준비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다.

'수신 재가 치국 평천하'가 여기에 딱 필요한 말이라 여겨진다. 집안에서부터 불편과 차별을 없애야 사회와 국가에서 장애인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다.

특히 명절이나 각종 행사 때 장애를 가진 구성원이 힘겨워하거나 고독해 하지 않도록 따뜻하게 배려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이십 수 년을 함께한 내 아내가 이 글을 보면 무척 성을 낼지도 모른다. 아니, 더 극심한 벌칙으로 나를 압박하며 그나마 주어졌던 권한들을 짓누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코 내 아내를 흉보고자 하는 뜻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해 잘 안다고 하면서도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가정 내에서의 불편과 고충이 사회적으로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이 칼럼으로 인해 나의 신상에 이상이 발생한다면 독자 여러분들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를 바란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할 말은 해야 굴절과 그늘을 없앨 수 있다는 나의 소신에서 비롯된 말들이니만큼 여러분들께서 충분히 방어해주기를 믿고 거침없이 이 글을 쓴다.

'가화만사성'이라는 성어로 갑오년 정초의 덕담을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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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영 칼럼니스트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향상, 선한 가치의 창출과 나눔을 이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손작업 능력을 바탕으로 질좋은 맞춤형 수제 구두를 생산하며,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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