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를 하는 정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치에 복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과거 왕권시대에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안정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민심을 달래려면 복지를 했어야 했다.

현대의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백성들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이므로 복지를 등한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심에서 백성과 함께 하느냐, 아픔을 나누려고 하느냐, 치유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느냐, 정치의 존재이유가 백성의 행복이냐 등의 기준에서 정치하느냐, 아니면 권력의 유지수단이나 권력자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나 권력장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백성의 힘을 등에 업기 위해 복지를 하느냐의 차이들은 있었을 것이다.

사회예방 차원에서 복지를 한다고 하면서 사회가 아닌 정치권력의 문제예방 차원에서 복지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더 많았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경우 백성들은 우매하고 순진하며 단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민란을 일으킨 것도 지도자가 있었으며, 백성은 꿈과 희망을 주는 자에게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고, 배신과 이탈 역시 꿈을 버릴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함께 했느냐 이용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무식한 백성이라도 그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에 정치는 소외계층을 버릴 수도 없다.

복지 정치의 또 하나는 복지를 추구하는 정치이다. 백성들이 안심하고 따뜻하게 살도록 하는 것을 이념이나 목표로 하고, 정치가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전자와 목적과 수단은 서로 위치를 달리한다.

그런데 복지를 이용하는 정치들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처음에는 기대를 하다가 점점 실망을 하게 되고, 여기에서 실망을 하면 다시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고, 거기에서 실망을 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과거를 잊고 다시 기대를 하게 된다. 마치 언 땅에 조금이라도 온기가 남아 있는 곳을 찾아 머물고 싶은 본능이 그토록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위한 복지와 복지를 위한 정치를 어떻게 구분하여 알아볼 수 있을까?

첫째 정치를 위한 복지는 거만과 과시가 강조된다. 자기우상화도 있고, 실적을 홍보하는 데에 더 열을 올린다. 자신의 방식과 복지의 양이 적당하다고 카리스마를 가지고 해게모니를 행사한다. 현재 이렇게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이만큼 복지를 신경 쓰고 있으며, 법과 제도는 우리니까 만들어 준 것이고, 예산의 증액도 전년 대비 이만큼이나 늘었다고 자랑한다.

겉과 속이 달라 장애인에게는 어떤 혜택이 있다고 하는 홍보와는 다르게 실제로 서비스를 받으려고 하면, 중증이라야 하고, 수급자라야 하며, 부양가족이 있으면 안 되고 감면은 한도가 얼마이고, 자동차가 있어서 곤란하고 등등 많은 조건을 제시하며 신청하는 사람이 마치 부정이라도 해서 더 가지려는 자처럼 치욕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는 것보다 부정한 사람을 찾아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더욱 열중한다.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받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받아가서는 안 되는 사람을 찾는 데에 힘을 기울인다.

고기를 잡는 법이든,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든 경제적 효과를 따진다. 투입과 산출식을 가지고 낭비이며, 사회적 부담인데도 다른 것을 희생하며 노력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복지를 위한 정치는 복지 그 자체가 가치이고, 정의라 믿는다.

정치를 위한 복지는 전술가에서 제도가 만들어지고, 복지를 위한 정치는 현장의 당사자에게서 제도가 만들어진다. 복지를 위한 정치는 권력을 나누어주며, 참여를 최고의 가치로 치지만 정치를 위한 복지는 선심을 베풀면 고마워해야 하는데 말이 많다고 한다.

복지를 위한 정치는 지속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것을 추가해가지만 정치를 위한 복지는 총액은 고정된 상태에서 제도를 자주 바꾼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자동차까지 있는 사람에게 왜 이런 지원을 하느냐며 일몰제가 적용된다.

복지를 위한 정치는 자존심을 건들며 웃음을 가시게 한다. 정치가가 제시하는 이론에 반박을 하지 않고 묵묵히 따르면서 적응을 하지만 말이 없다. 아무리 주어도 인상을 쓰고 괴로워한다. 그런 경우 정치인들은 소수자의 건성이라고 칭한다.

복지를 위한 정치이든, 정치를 위한 복지이든 모두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따뜻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복지를 위한 정치는 그것이 삶의 에너지가 되지만 정치를 위한 복지는 멍에가 된다. 복지를 위한 정치는 가르치려 하고, 숙지했는지 확인을 재차 하지만 복지를 위한 정치는 늘 반성하고 경청하며 실천을 한다.

복지를 위한 정치는 의무감에서 하고, 정치를 위한 복지는 책임감에서 한다.

정치를 위한 복지는 감수성이 없고 건조하여 느낌이 없지만, 복지를 위한 정치는 구분하는 방법을 몰라도 몸이 느낌으로 느낀다.

미국에서 백혈병 아이의 꿈을 위하여 1만 2천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그 아이가 베트맨 역할을 하도록 하여 진짜 베트맨이 되도록 하였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이득이 없으며, 허영 같은 꿈으로 치부될 수도 있고, 아이의 개인적 소망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베트맨 영화를 보여줄 수도 있고, 베트맨 연기자와의 만남으로 만족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도록 하기 위해 온 시민들은 힘을 모았으며, 그 꿈의 가치가 자신들이 살아가는 가치임을 알고 있었다.

펠리스 아파트의 피해자에게는 즉시 호텔로 피신을 가게 하고, 가난한 사람의 홍수 피해자들은 언론에서 그토록 정부의 대책을 비난한 것에 못이겨 마지 못해 천막을 쳐 주는 사회가 이러한 가치를 언제쯤 알게 될까? 감동을 만들면서 살 것인가, 감동에 스스로 젖어서 자기만족으로 살 것인가 두 갈래 길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앞으로 복지가 나아가야 할 길에 우리는 아직도 제삼자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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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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