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어도 장애인차별이 완전히 금지되지는 않는다. 완전하게 차별을 없애는 방법이 무엇일까?

법보다는 인식이 우선이다. 국가인권위원회나 복지부 등도 차별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차별행위를 한 사람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장애인 인식교육을 받도록 권고하고, 복지부에서도 장애인 인식 또는 인권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 장애인 인식교육을 실시하면 장애인 차별이 해결될까?

장애인은 분명 소수자 즉 마이너리티이다. 그리고 서벌턴(subaltern) 즉, 하위주체이다. 경계인이고, 주변인이다. 군대에서 하위계급처럼 발언권이 없다. 제3세계인 즉, 트리 콘티넨탈(Tricontinental)이다.

장애가 사회에서 장점이고 자랑이라면 차별은 당연히 사라질 것이고, 오히려 우대를 하겠지만, 서벌턴인 이상 차별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그 뿌리 위의 줄기나 잎사귀를 잘라내는 것에 불과하다.

장애인들은 법적으로 차별받지 않으면 인권이 모두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별금지법상 결혼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고 해도 해결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모성권, 부성권 등은 일단 가족이 된 후의 문제다. 가족이 되기 위한 과정인 결혼 문제에서 차별은 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조차도 가족의 결혼에서는 차별을 서슴지 않는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의 가족의 간섭 즉, 결혼에 대한 반대는 당사자들이야 괴롭겠으나, 그 반대에 대한 권리없음을 선언하기에는 그 동안 살아온 정이 있고, 키워준 은혜가 있어 배신으로 취급된다.

장애인이 이성의 마음을 얻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인연이 되어 상대를 알게 되고, 상대의 장점을 발견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며,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상대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행복을 가지고자 한다.

장애인 중에는 평생 상대의 집안과 결별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배우자를 데려왔으니 차별을 한 어른에 대하여 얼굴을 보지 않고 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른들이 보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를 극복하기 위하여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면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 기다리기도 하고, 더 잘 모시면 수용이 되지 않을까 감탄을 자아낼 방안을 연구하지만, 결국은 차별의 재발을 없애는 것을 우리는 용서라고 말한다.

이성간에 서로 결혼을 약속하면 집안을 설득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들을 짤 것이다. 혼인신고를 하고 성인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버티는 방법, 사고(?)를 먼저 치는 방법, 받아들여 주기까지 어떠한 모욕을 당하더라도 비는 방법, 사랑의 도피행각을 통하여 숨어지내는 방법 등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서로 축복을 받으며 결혼에 성공하는 경우를 보면, 서로의 사랑이 집안의 반대로 막을 수 없음을 증명하여 보이는 경우 즉, 부모에게 눈물로 호소하거나 단식을 하거나 목숨을 버리거나 건강을 해치는 등 사랑하는 사람이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보이는 방법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장애인의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돈을 잘 번다거나,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을 부모에게 보여서 그 능력이 장애를 덮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흔치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부모나 가족들이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감사하고 환영하며 귀하게 여기기도 한다. 효도를 잘 한다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다거나 친분관계가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동물들도 힘이 세다거나 몸집이 크다거나 하는 등 배우자 선택에는 경쟁이 있고 결혼은 능력주의이며, 배우자의 선택에서 차별은 존재한다. 그러나 동물들과 인간의 차이는 가족의 개입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과정에서 가족의 차별이 있다고 하여도 법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재판으로 소송을 할 수도 없고, 그것에 대하여 반감이나 이의를 가지면 오히려 차별은 심해지고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 된다.

사랑하는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결혼해주는 상대를 더욱 사랑하면서 갚아야 하고, 기다리고 인내하고 용서를 바라야 한다. 진정 인간사회에서 완전히 차별이 사라지는 마지막 꼭지점이 바로 결혼일 것이다.

결혼에서 장애를 이유로 반대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먼 미래에는 가능한 것일까? 결혼에서의 장애인차별은 정당한 이유가 될까? 사랑과 기대, 혹은 키워준 은혜가 차별을 누르는 억압된 문화가 극복될까?

그래서 우리는 차별은 상대가 있는 것이고, 억압은 상대가 없는 모두라고 말한다.

결혼의 문제를 가지고 고용과 교육, 재화와 용역의 문제를 풀어보자.

기업에서 고용주가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절차상의 서류상 차별을 하지 않고, 면접에서나 행동에서 차별을 하지 않는 이상 마음 깊은 곳에서의 차별을 문제삼아 법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

제한이나, 배제, 분리, 거부라는 것은 행동이다. 심정을 차별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니 면접에서 점수를 주지 않는다고 차별이라고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서류상 장애를 표기하지 않고, 면접없이 채용을 결정하지 않는 이상 어떠한 차별이라도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의무고용제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장애인이 일할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결혼에서 특별한 능력처럼 장애를 극복할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은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좀 다르다. 교사는 가르칠 의무가 있으며, 고용은 의무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육기관이나 교사의 교육에서의 차별은 방임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교육에서의 차별금지는 장애인 의무고용이 있음으로써 해결된다. 법적으로 장치가 만들어지면 상당히 해결되지만 그렇다고 심정적 차별이나 동급생들 사이에서의 차별까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재화와 용역에서는 장애인도 고객이고 소비자이며, 자신들에게 이득을 주는 상대임에도 차별을 받는다. 이는 손해를 끼쳐서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마음 속의 차별이 우연히 발현된 경우도 있고, 비장애인과의 이득의 격차로 인한 푸대접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은 결혼에서와 같이 이해와 차별을 금지하는 강제성과 거부할 수 없는 제도의 마련, 특별한 장점으로 극복하기가 해답이다. 결혼에서의 강제적 장치의 마련은 법이 아닌 사적으로 개개인이 만드는 것일 뿐 결혼문제와 고용이나 교육 등에서 차별의 해결방법의 차이는 같은 것이다.

결혼을 하여 진정한 사랑을 유지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미담, 장애에 대한 오해의 제거와 상대에 대한 감정이입, 결혼을 이미 결정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존중, 차별의 결과가 오히려 더 큰 비극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인식, 장애를 고려하지 않을 만큼의 장점의 드러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친분쌓기 등 차별의 문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온갖 연구를 하고 실천하고 인내하면서 차별을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나 결혼에서의 차별은 그래도 사랑하는 상대가 함께 해 준다는 공동체(라포)가 있어 견딜만하다.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차별과 싸워나가는 방법은 법이 아니라, 인권교육이 아니라 노력과 투쟁을 통한 서발턴으로부터의 탈피일 것이다.

장애인이 억울하다고 비장애인이 될 수는 없고, 하급군인이 계급을 무시하고 장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권력을 갑자기 가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수한 하급군인의 말은 장교도 들어주지 않을까?

장애에 대한 수용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은 비장애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의 귀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도 극복하지 못하는 차별은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인간은 사랑보다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고 그 것을 사랑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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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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