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나 빌게이츠가 순수하게 자신들만의 창의성으로 스마트 세상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터치스크린은 1980년대에 이미 마우스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여 포인터를 정확히 맞추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하여 만들어진 기술이고, 화면에 키보드가 나타나게 하여 입력하는 기술 역시 키보드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지 지체장애인을 위하여 만들어진 기술이다.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문자코드 2진수는 200년 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코드에서 이미 구현되었으며, 현재 키보드로 발전한 타자기의 발명은 시각장애인들의 문자생활을 위하여 발명한 것이고, 유선전화기 역시 청각장애인들의 보청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파생적으로 발명된 것이다. 아니 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청기 기술은 발명이었고, 전화기는 발견이었던 것이다.

인류는 좀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발명과 발견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것이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문명은 인간이 불편한 것을 해결하고자 하며,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집단적 행위이다. 그런데 문명은 가장 불편한 장애인에게 그 불편의 격차를 더 가져다주기도 하고, 불편의 해소라는 문명의 방식이 가장 불편한 장애를 해소시켜 주기도 한다.

문명의 성공의 비결은 문명의 수용성과 포용성이다. 다른 문명이 흘러들어왔을 경우 서로 충돌하는 것이 있으면 문명은 성장하지 못하고, 특수 계층만이 누리는 것이면 오래 가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불편한 계층에게 편리함을 주는 문명이면 덜 불편한 사람에게는 더욱 편리한 것이므로 그 문명은 기술과 지식으로 축적된다.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기술이 보편화되는 것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기술이면 그 기술은 편리함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다.

시대가 장애를 만들거나 악화 또는 심화시킨다. 그러므로 시대는 장애의 차이를 크게 하고 격차로 인하여 장애인에게 참여를 거부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문명을 배타적 문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문명이 장애를 만든다. 대가족 중심의 농경사회에서는 지능지수 80은 농사를 짓고 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식구들이 씨를 뿌리면 같이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 시기가 되면 함께 하면 된다.

그러나 유기농 농사기술을 적용해야 하고, 기계화된 농사를 해야 하며,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 개척을 해야 하는 현대에서는 지능지수 80은 장애를 느낄 것이다.

시대가 장애를 해소시킨다. 시각장애인들이 책(묵자=인쇄글자) 문화에서는 독서를 스스로 할 수가 없고, 누군가가 대신 읽어주어야 한다. 녹음기가 발명되자 책 내용을 녹음하여 주는 것을 듣는 방식으로 일부 독서가 가능해졌으나, 녹음의 양의 한계와 즉시 읽을 수 없다는 한계는 있으나 그래도 격차는 줄어들게 되었다.

컴퓨터 시대가 되자 거의 모든 정보와 서적들이 문서화되었고,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 접근이 어려워 격차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었으나, 다행히도 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화면낭독) 프로그램이 개발되자 장애의 격차가 줄어들게 되었고, 시각장애인도 문자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자 장애인의 접근성이 어려워 조작부터가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고 기술이 장애를 해소하는 데에 기여한다면 시각장애인은 한 손 안에 정보를 쥐게 되고, 세상과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격차의 심화로 인하여 장애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정치인이나 행정가나 장애인 리더들이 해야 할 임무가 바로 새로운 세상의 장애 없는 개발에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국가의 경쟁력은 식민지 개척으로 인한 부의 축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가의 경쟁력은 가장 불편한 것을 보편화하여 누구나 편리한 기술을 먼저 선점하는 것이다.

미국이 값비싼 노동력에도 불구하고 부강한 국가로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가장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국가가 강력하게 지원하여 개발하였고, 그 기술을 모든 사람이 편한 기술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의 미국재활법의 제정으로 3년간 장애인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모든 기술을 개발하도록 하였고, 그 기술이 현재의 스마트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시대는 컴퓨터가 있는 특정 장소에서만 사이버 세상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니 인간들은 사이버 세상에 있거나 기존의 사회에 있거나 하는 시공간의 비초월적 존재로서 사이버 세상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세상은 언제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하여 사이버 세상으로 드나들게 되었다. 자동차가 발명되고, 마이카 시대가 열린 것처럼 이제 정보화 사회로 가는 교통수단이 마이카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 시대가 가상공간으로 들어가는 길이 단순한 도로 하나였다면 이제는 다양한 통로로 언제든지 들어가도록 개방된 것이고, 과거에는 사이버 세상에서 특정 업무만 보고 다시 돌아와야 했지만, 이제는 사이버 세상은 항시 머무는 생활공간이며, 종합적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달나라에 가는 세상이 아니라 달나라에 살고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장애인정책발전5개년을 수립하고 있는데, 스마트 세상에서의 장애인의 통합을 위한 계획은 전무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바로 장애인의 통합과 장애해소 방안이 여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술의 개발과 무장애 스마트 세상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현재 편의시설이 없고, 장애인 인식이 부족하여 장애인의 사회참여의 문제와 소득보전의 어려움으로 사회가 부담하는 비용처럼 스마트세상에서의 장애격차로 인한 비용 부담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고, 이는 결국 사이버 세상에서의 국가적 경쟁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한 장애인들의 부적응 피해가 심각해지고, 가장 불편한 사람에게 편한 기술의 보편화로 인한 모두가 편하고 안심하고 살만한 세상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경제활동에서 부담이라고 하여 세금을 피할 수는 없듯이 접근성의 사회적 책임을 피할 수 없으며 이것이 바로 경쟁력이 된다.

현재 정부나 민간이 만들고 있는 모바일 접근로는 장애인이 거의 이용하기 힘들다. 장애인의 접근성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한 사이버 공간은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마트가 아니다. 스마트는 신속함과 편리함,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제 새로이 건설되는 세상이 불편투성이가 되어 그래서 새로이 건설할 이유를 없게 만들어 버린다면 안 된다. 그리고 장애인의 불편 해소를 새로운 기술개발과 적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 관련 기관이나 단체, 시설에서 아직 스마트 세상에 대하여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복지 서비스의 스마트화 역시 제자리걸음 정도이다.

이는 심각한 인식부족이고 게으름의 극치이다. 숟가락으로 밥을 먹으면 편리한 것을 손으로 먹으면서 불편하다고 말만 하는 격이다. 기술은 바로 불편 해소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문화는 인간의 양식이며, 풍요롭게 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문명은 불편함과 부족함이 모티브이다. 즐거움이 부족하거나 만족도가 부족하거나 욕구의 충족이 부족함에서 문화는 자란다.

장애인의 문화향유는 더욱 부족한 장애인에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면 문화 역시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시범사업 정도로 맛보기로 문화 복지를 선전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스마트 세상에서 문화를 누리도록 제대로 스마트를 설계해야 하고, 기회균등과 비차별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문화가 그들만의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을 부정축제라고 한다.

장애인에게 기능과 능력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이 보완과 대체이다. 시력이 남아 있으면 돋보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보완을 하는 것이고, 시력이 전혀 없다면 점자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대체를 하는 것이다.

바로 인류의 기술이 인간의 기능성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대체와 보완인 것이며, 문화는 느끼고 생활하는 즐김 그 자체인 것이다.

앞으로 여러 차례의 기고를 통하여 과연 스마트 시대는 장애인에게 격차를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통합을 이룰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현재 장애인을 위한 앱들은 어떤 것들이 있고, 또 어느 정도 실현이 가능해지고 있는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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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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