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농성 돌입을 결정하고 있는 언어재활사협회 긴급 대의원 총회 회의장. ⓒ서인환

언어재활사(SPL) 제도는 그 동안 민간자격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장애인의 재활훈련의 전문성을 국가가 관리하고 유사자격의 난발을 방지하며 장애인의 전문적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하여 2012년 8월 5일 장애인복지법 제80조를 개정하여 국가고시로 전환하였다.

언어재활사를 양성하는 대학과 대학원이 있음에도 무분별한 민간자격의 난발로 인하여 언어재활사의 신뢰가 깨어져 국가자격으로의 승격은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민간자격으로 언어재활 서비스 바우처 사업에 종사하던 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3년간의 경과조치를 두어 현재 민간자격 보유자들은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하여 한국언어재활사협회는 정부와 갈등을 빚어 왔다.

정규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짧은 기간의 민간연수를 인정할 경우 언어재활사 자격자의 질 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언어재활사협회는 약 1년 동안의 조율을 통하여 정부의 정책의 수정을 요구하였으나, 경과적 사정을 백분 수용하여 회원인 언어재활사들에게 국가고시에 응하도록 독려하였다.

이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시험을 위탁받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에서는 5월 25일 최초로 국가자격 언어재활사 시험을 치르기로 하고, 시험응시 접수를 시행하였다.

이렇게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언어재활사 국가자격 시험 자문위원회(위원장 김승국)를 통하여 상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며, 합의 내용은 각종 시험관련 위원회(시험위원회, 문항준비위원회, 검토위원회 등)에 의사(MD)들을 배제한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어치료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언어재활사’라고 명명한 것은 의사들의 고유업무라는 주장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환자를 다루는 의사와 장애인의 재활과정에 개입하는 재활사의 업무는 전혀 다르며, 언어재활사의 전문 교수들이 있음에도 의사들에 의하여 시험이 주도되는 것은 분명 언어재활기법에 대하여 경험과 지식이 없는 의사들의 ‘의료권력 내에 두기’라는 권위적 행위는 분명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국시원에서 시험출제위원을 구성하면서 위원장 이하 상당수의 위원들을 의사로 구성하면서 언어재활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배제되어 다시 충돌과 갈등을 빚게 된 것이다.

한국언어재활사협회는 지난 20일 소재 협회 사무실에서 긴급 이사회와 대의원총회 및 전체 전국언어치료교수협의회 연합총회를 열고 국시원의 언어재활사 시험을 전면 거부하기로 결의하였으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한국언어재활사협회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에게 발송한 공문을 통하여 출제위원에 언어재활 전문가와 언어재활 교수들의 참여를 전면 거부하며, 회원들도 시험응시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에 2400여명의 응시자 중 대부분이 시험응시를 취소하며 응시원서비 14만원 반환을 요구할 전망이다. 시험 1개월 전임에도 국시원은 응시를 취소하더라도 60%만 돌려준다고 한다.

한국언어재활사협회는 전국 대학 언어재활학과 교수와 전공자들의 모임으로 회원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공개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시원은 언어재활사 국가시험 응시 기간 하루 전 우리 협회에 (1) 시험위원회에 의사를 배제하고 (2) 시험위원회의 위원장을 언어치료전공자로 위촉하고, 출제위원을 전원 동일분야의 전문가로 위촉한다고 합의한 후 이제 와서 “그 내용은 금시초문이며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합의내용을 전면 부인하여 협회에서는 이를 제지하기 위해 막다른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국시원이 응시자를 확보하기 위해 미리 계획한 기만행위임이 분명합니다. 이에 우리는 분노하여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밖에 수 없습니다. 구두합의만을 믿고 응시를 권유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응시철회를 요청하게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협회 이사장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2013년 4월 20일 정오를 기하여 안국동 협회사무실에서 김영무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일사분란하게 행동을 통일하여 단합된 힘을 보여줍시다! 협회에서는 모든 언어치료(언어재활)학과 교수들에게 국시원의 각종 위원회 참여를 거부하는 서약을 받습니다. 우리는 염원하던 국가자격의 법제화를 어렵게 이루었으나 구체적인 시행방식을 두고 국시원과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국시원은 국가시험을 시행하는 단체로서 시험을 잘 관리 운용하면 될 것인데 우리 분야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그들 멋대로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현재 5월 25일로 예정되어 있는 정시 국가자격시험(2급)은 협상의 진전 여부에 따라 연기될 수도 있으니 앞으로 협회의 [긴급공지]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험응시 거부 이유로는 ▲언어재활사는 의사의 치료행위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 ▲의학도들은 언어재활을 수학하지 않았다는 점 ▲의사와 언어재활사의 업무 영역이 엄연히 구분된다는 점 ▲언어장애인은 환자가 아니라 장애인으로 환자의 의료서비스가 아닌 장애인 서비스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 ▲언어재활학과 교수들로도 시험출제가 충분하며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의사들에 의해 시험이 주도되면 언어재활사가 언어치료사에서 명칭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는 점 ▲의사들에 의해 출제되면 앞으로 독립된 학문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이제 장애인의 서비스가 의사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장애인판정에서조차 의사들의 권력 하에서의 판정은 서비스 대상자 선별에 문제가 있으며, 특히 재활과정에서 의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문하는 것으로 하지 않으면 장애인의 서비스는 대상화에 불과해짐을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번 언어재활사협회의 투쟁은 장애인의 서비스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행동일 것이다.

의학이 장애인복지를 보장하지 못하며, 장애로 고착되지 않도록 하거나 장애를 경감하는 데에는 의료적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장애인의 재활과정은 별도의 전문가가 필요하며, 의사의 지나친 간섭과 자기영역에 두기로는 장애인은 극복의 대상이자, 정상화의 객체에 불과한 것이다.

국시원은 의료집단의 집합체로서 의사들의 자리확보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복지부와 국시원의 약속대로 언어재활사 위주로 출제위원을 구성하고, 위원장은 필히 언어재활학과 교수로 교체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정부가 국시원에 시험을 위탁하기로 하면서부터 예견된 일로서, 복지부의 자기식구 챙기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애초에 한국언어재활사협회에 위탁함이 마땅하며 법정단체인 한국언어재활사협회에 위탁하였어야 했다.

언어재활사는 의사의 지시에 따르는 부하직원이나 언어재활 서비스가 의료적 파생적 서비스가 아니라 상호 협력이 필요한 독립된 영역임을 인정해야 한다. 의사들은 장애인의 삶에서 어떤 복지도 충족해 주지 못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의료권력 대상으로 두려는 헤게모니에 대하여 그 동안 많은 분노를 경험한 장애인들의 입장을 이제는 서비스 전문가들이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재활학과 교수 몇몇이 출제 위원으로 선정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언어재활사의 고유업무를 지킬 수 있는가의 문제로, 첫 단추에서 제대로 맞추어지지 않으면 언어재활학은 영원히 아류적·종속적 학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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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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