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집보다 도서관이 편해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만큼 어려운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설 명절을 자진반납한 채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제자가 안부전화를 걸어왔다.

“자넨, 반드시 성공할거야, 힘내라구!”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용기잃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의례적인 겪려성 한마디뿐이었다.

“교수님, 막걸리 한 잔 사주시죠?”

“그래, 언제든 연락해”

며칠 후 제자와 막창집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제자의 아픈 속사정을 들어봤다.

“설 연휴 기간 내내 도서관을 찾았어요.”

담배를 깊이 들이쉬던 그는 자신의 '취업수난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어요. 영어가 약해 1년 동안 노력 끝에 토익을 910점까지 끌어올려 대기업 서류전형 기준을 갖췄어요.”

“....”

“하지만 40번이 넘는 입사도전에 모두 낙방했어요. 이 중 열두 번은 최종면접이어서 아쉬움은 더해요.”

“....”

“계속된 낙방으로 '연령제한'에 걸려 업종을 바꿔 지난해부터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있지만 낙방의 고배는 이어졌어요”

“으음....”

“집에서는 '취업', '결혼'이라는 말이 '금지어'가 된지 오래에요. 3~4년 전만해도 명절에 친척과 친구들의 덕담을 들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간마저 잃어버렸어요.”

“그래도 부모님께 안부는 드려야지...”

"취업한 친구나 친척들의 위로가 쓸데없는 걱정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나도 겉으로만 그들을 축하해 주듯이 그들도 나를 겉으로만 위로해준다고 생각해요.”

“아냐. 진심어린 말일텐데...”

“"모두 다 내가 취업을 못해서 생긴 일"이라서요.”

“왜 자네 책임인가. 모두 우리사회가 책임져야할 문제야”

나는 버드나무가지마냥 축 늘어진 제자의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등을 토닥여주며 ‘자넨 반드시 성공할 수 있어,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며칠 후 또 다른 제자가 찾아왔다.

“교수님, 밥좀 사주세요?”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한의대 시험에 도전하는 32세의 제자도 넉두리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 놓는다.

“교수님, 저는 징크스가 있어요. 행정고시에서 네 번의 고배를 마신 뒤 도전한 한의대 시험에서도 네 번 낙방했어요.”

서울 명문대를 졸업한 그의 주변에는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공무원 친구, 사법고시를 통과한 검사 친구, 대기업서 고액 연봉을 받는 친구 등등. 그는 열등감 때문에 이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했어도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해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고 있어요.”

“부모님께 안부는 자주드리지?”

"부모님께 면목이 없어 연락도 잘 안드려요”

“자네 심정이해해 그러나 연락은 자주 드리게”

아버지 친구들은 모두 손자·손녀를 봤다"며 고개를 떨군다.

명절도 사치라는 취업준비생들...언제나 쨍하고 해틀날이 올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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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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