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비스 살인사건’을 재구성하여 소설로 만든 책,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의 표지 이미지 ⓒ교보문고

1964년 어느 새벽, 미국 뉴욕의 주택가에서 캐서린 제노비스(Catherine Genovese)라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강도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흉기에 상해를 당하며 큰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지만 소리를 듣고 현장을 내다봤던 인근 아파트 주민 38명 중 범행 이 지속되는 35분 동안 직접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968년, 심리학자인 존 달리(John Darley)와 빕 라텐(Bibb Latane)은 뉴욕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시생활 적응도 연구를 가장하여 실험을 실시했다.

학생들을 밀폐된 방에 각각 1명씩 들여보내고, 오직 마이크와 스피커만을 이용하여 서로 대화하게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간질 발작으로 도움을 청하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이는 실험자가 실험을 위해 미리 준비한 음성이었지만 피실험자들은 다른 방에 있는 어느 참가자의 실제상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자신 외에는 발작이 일어난 학생 1명, 이렇게 단 두 명만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학생들의 경우에는 85%가 밀실에서 뛰쳐나와 도움을 요청했던 반면에 여러 명이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학생의 경우에는 겨우 31%의 학생만이 도움을 주기 위한 행동을 취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제노비스 살인사건’ 당시 목격자들이 가졌던 심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심리학 용어가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다. 또 다른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한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 이뤄지기 때문에 각각의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줄어들게 되면서, 결국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UN 장애인권리협약 통과를 축하하기 위한, 한국 NGO 축하사절단의 UN본부 앞 기념 사진(좌측에서 세 번째가 필자) ⓒ이광원

한편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은 1965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1966년에 UN 총회를 통과한 바 있었다.

이처럼 대다수 사람들의 인권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한지 40년이나 지나고 나서인, 2006년 12월 13일, 드디어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RPD: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이 UN 총회를 통과했다.

장애인권리협약 UN 채택 NGO 축하사절단의 일원으로, UN 총회 통과의 역사적 현장을 참관하기 위해 UN본부를 찾았던 필자는 통과 당일 새벽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맨해튼 하늘색이 까만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도록 한 잠도 이루지 못하고 감동 속으로 빠져들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너무나 늦었지만 너무나 기쁜 일이 었었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이 만들어지기까지 한국의 장애인 당사자 NGO가 기여했던 바가 지대하다는 것은 단지 우리들만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 GO와 NGO 관계자들이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바이다.

2003년경부터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를 결성하여 필자도 같이 참여한 바 있었던 초안위원회에서는 주 1·2회 회의에 밤을 새는 강행군 속에 협약 초안을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었다. 또한 세계 각처에서 제출한 초안들을 취합하고, 하나의 안을 도출하기 위해 진행됐던 워킹그룹 회의 때 한국 NGO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 멤버로 참여했던 고(故) 이익섭 교수와 함께,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기도 했었다.

그 결과로, 한국 NGO의 주장들이 최종 협약 조문의 곳곳에 남게 되는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UN 장애인권리협약 제정의 필요성을 표현한 홍보용 이미지(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퍼즐에, 장애인 인권만이 빠져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 ⓒ한국DPI

하지만, 그렇게나 뜨거웠던 한국 장애인당사자 NGO들의 열정이 이제는 많이 식어서 장애인권리협약의 모니터링이나 활용 등에 매우 소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자기 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모든 나라의 장애인 인권과 관계된 협약을 만들 때는 그토록 열정적이던 한국 장애인당사자 NGO가 정작 자기 나라 안에서 협약이 이행되고 점검되는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1년 6월 한국 정부는 최초의 UN 장애인권리협약 한국 국가보고서를 UN에 제출했었고, 이 보고서는 UN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2014년경에 심사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한국의 NGO가 UN에 제출할 ‘UN 장애인권리협약 한국 NGO 리포트’를 준비해야할 매우 중요한 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장애인 당사자 NGO들이 NGO 리포트 작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양상을 보면서 ‘누군가 하겠지...’하는 생각으로 정작 자신들은 나서지 않고 있는 그래서 결국은 아무도 나서지 않게 되는 ‘제노비스 신드롬’, 혹은 ‘책임감의 분산’에 따른 ‘방관자 효과’의 심리적 현상들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가 너무 앞서나간 탓일까?

비록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과거 그토록 뜨거웠던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장애계의 관심이 다시 되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되는 UN 장애인권리협약 한국 NGO 리포트의 작성 과정에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더 깊이 있는 토론과 연구가 이뤄짐과 동시에 협약에 대한 장애계의 관심도 또한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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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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