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아이들 같으면 돌 지나면 시작하는 배변훈련. 척수신경에 전반적으로 손상을 입은 주언이의 경우 그동안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였다.

태어난 후 한번도 기저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아이가 이제 조금씩 기저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여섯 살이 된 남자아이가 여자 친구들이 같이 생활하고 있는 유치원에서 기저귀를 갈 때마다 훌렁훌렁 고추를 드러내기는 좀 창피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소변 가리기와 관련해서 병원에서 저명하다는 의사들께 들은 얘기라고는, 소변은 가리기 쉽지 않을 거라는 회의적인 얘기와 초등학생 정도 되면 원활한 배변활동을 위해 튜브 같은 물건을 대장과 직접 연결하는 시술을 한 후, 배 밖에 나와있는 작은 튜브에 어떤 액을 주입해야 한다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소견이었다. 결국 평생 스스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얘기.

물론 모든 분들이 그토록 회의적인 얘기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2년 동안 주언이의 곁에서 지켜 봐왔던 물리치료사 선생님만큼은 소변은 훈련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며 부모가 옆에서 지속적으로 도와줄 것을 주문했다. 쉽지 않겠지만 어차피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일이겠기에 같이 노력해보자고 하였다.

변기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언이. ⓒ이은희

그런데 요즘, 끔찍한 의사들의 얘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주언이가 변의가 느껴질 때마다 응가 마렵다는 얘기를 하면서 기저귀가 아닌 변기에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대변뿐만 아니라 소변 감각 또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일단 집에 오면 기저귀를 제 스스로 빼겠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서 답답하고 찝찝한 기분을 본인 스스로도 느끼는 듯.

그러다 소변이나 대변이 마려우면 본인이 실수하기 전에 도움을 달라는 의미에서 엄청 큰 소리로 엄마나 아빠를 불러 일을 해결하곤 한다. 물론 아직 실수도 많고, 괄약근에 직접 힘주는 것 또한 잘 못하니까 그저 기합소리 비슷한 소리와 함께 윗배에 힘을 주는데 신기하게도 제법 잘 해낸다.

소변일 때에는 상황이 좀 다른데, 아주 소량의 소변이 나올 때도 있고, 그러지 않을 때도 있어서 아이 또한 아직 확신이 없고 자신도 없다. 뿐만 아니라 방광의 용적이 갓난아기처럼 여전히 무척 작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계속 지켜봐야 할 것같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가장 큰 부분이 하나씩 해결되고 있는 것같아 정말 다행스럽다. 아이가 자라면서 남들과 다른 부분을 조금씩 극복하고자 하는 아이의 자의식이 우선 큰 역할을 했을 것이고, 기능적으로 불가능할 거라고 했던 의사들의 판단에 반해, "울 대장은 똑똑하니까 응가도 쉬아도 잘 할거야~"라고 늘 얘기해준 아빠의 한결같은 믿음이 아이를 정말로 변화시켰을 지도 모르겠다.

이 작은 변화도 우리 가족에게는 기적과 다름없다. ‘기적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던 송경태님의 칼럼 한 구절이 떠오른다. 긴 호흡으로 꾸준히 한발한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주언이가 스스로 일어서고 걷는 기적 또한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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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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