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Miele 사의 touch interface로 작동되는 오븐. ⓒ서인환

청각장애인이 텔레비전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방송통신위원회는 자막기를 청각장애인에게 별도로 보급하였다.

그런데 외국의 텔레비전은 별도의 자막기가 필요 없다. 자막은 청각장애인만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며, 소리가 식구들의 잠을 방해할 수도 있어 비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장애인만이 이용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갖춘 텔레비전의 기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여 모든 텔레비전은 필수적으로 자막기가 내장돼 있어야만 판매가 가능하다.

한국의 가전회사들이 텔레비전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막기능이 포함되어야 하며, 모든 제품에 모두 이 기능이 들어감으로써 자막기의 생산비용이 저렴하게 보급가능하여 전혀 추가비용이 필요 없는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경우, 그 경비도 기업의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에서는 그 부품을 제외하고 판매하며, 별도로 자막기를 판매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텔레비전보다 수출하는 텔레비전 수가 더 많은 한국의 가전기업 입장에서는 수출품에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품에서 제거한다는 말이 맞다.

가전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는 국내에는 전혀 없다. 이는 제품의 개발이나 전자제품 수출을 경쟁력으로 하고 있는 한국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기업 홍보면에서도 불리하게 작용된다.

FTA협정에서는 복지를 위한 조치가 포함된 경우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공정거래의 위반이 아니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데에 장애인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인력 서비스에서도 장애인의 고용 창출을 고려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의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하는 전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세탁기, 밥솥 등의 버튼은 터치형으로 촉감이 밋밋하여 시각장애인은 버턴이 눌러졌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제품이 슬림화되면서 지체장애인도 조작하기가 쉽지 않다. 세탁기나 전자레인지의 경우도 이용은 불편하다. 특히 레인지의 경우 뜨거운 음식물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성균관대학교 이성일 교수는 대한산업공학회의 연구 용역 '미래생활 가전제품 접근성 제고를 위한 정책개발 수립 연구보고서'에서 정보통신산업진흥법을 개정하여 전자제품의 접근성을 보장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개정하여 제품의 생산에도 정당한 편의제공을 고려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장애인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서는 Standards for Accessible Design 본문 611조, Washing Machines and Clothes Dryers에서 유일하게 가전제품의 접근성 규격을 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기술표준원이 표준 업무를 맡고 있으나, 장애인 가전제품 접근성 규정은 전혀 없는 상태이며,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는 부산 경성대학교를 지정, 유니버설디자인연구센터 가 설립되었으나 사업은 종료되었고, 생활가전기기의 유니버설디자인 가이드라인을 개발하여 발표한 것이 전부이다.

독일 SIEMENS사의 discControl 기술이 적용된 전기 오븐 Top. ⓒ서인환

현재 가전제품 접근성을 다루는 국제표준화 기구의 분과는 2006년에 신설된 IEC/TC 59/WG 11이 유일하며, ISO에는 가전제품 접근성을 다루는 분과는 현재 없고, IEC/TC 59/WG 11과 ISO/TC 159/WG 2가 상호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다.

이는 IEC/TC 59/WG 11의 표준 지침이 ISO/TC 159/WG 2에서 다루고 있는 TR 22411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ISO와 IEC가 Guide 71과 TR 22411의 개정을 진행하고 있으므로, IEC에서 추진하는 가전제품 접근성 지침의 내용도 향후 대폭 수정되어야 할 전망이다.

거의 모든 유형의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과 하지지체장애인에게 냉장고의 불편함이 가장 심했고, 가장 불편한 점으로는 깊이 있는 물건에 손을 뻗어 꺼내는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응답하였다.

특히 시각장애인이 세탁기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많이 지적하였는데, 이는 기능에 대한 음성 안내나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의 경우는 요리 완료에 대한 시각적 피드백이 부족하고, 음성인식 조작 기능이 필요하고, 입력부에 대한 촉각/청각 피드백이 지원되면 좋겠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지체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 발달장애인은 모두 음식물 넣고 꺼내기가 어렵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비스듬하게 하여 편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파나소닉 드럼 세탁기 NA-V80. ⓒ서인환

하지만 이런 ISO Guide 71과 기술문서 TR 22411의 존재와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 개발자는 전체 응답자의 단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보다 적극적인 교육 등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한, 가전제품 접근성 제고를 위해서는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는 가전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일 교수는 접근성 실태조사는 관련 표준화 및 정책 수립에 활용 가능하고, 인증 제도의 시행에 활용할 수 있으며, 정기적인 실태 발표로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개발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개발자를 위한 접근성 교육과 접근성 관련 전문기관의 설치 및 당사자가 포함된 평가 시스템도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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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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