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에스캅 회의 장면.(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고위급 정부간 회의 준비회의) ⓒ서인환

유엔 에스캅(ESCAP, 경제사회이사회)은 지난 2010년 6월과 2011년 12월 각각 아·태지역의 정부 대표와 장애 관련 전문가, 장애인 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가진 바 있다.

이 회의는 2012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릴 고위급 정부간 회의와 장관급 회의에서 선포할 새로운 아·태 장애인 10년의 이행계획서인 ‘인천전략’의 초안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2011년 12월 회의에서는 시민사회단체(CSO)의 에스캅 인천전략 심의·확정을 위한 교섭단체로서 15개 단체를 정하였고, 2012년 3월 14일부터 16일까지는 인천회의를 준비하는 회의를 태국 방콕 아·태 에스캅 회의실에서 개최하였다.

한국 정부 대표로 차현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과장이 참석하였고, 장애인개발원 최승철 박사도 정부 대표로 참석하였다. 장애인단체 대표로는 이일영 재활협회 정책위원장, 김효진 아·태 장애인 연합회 준비위원장이 DPI-AP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이 회의의 주요 안건은 새로운 아·태 장애인 10년 동안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인천전략의 심의·확정과 이를 위한 국제기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였다.

25개 국 정부 대표 88명과 15개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 55명이 참석한 이번 준비회의는 고위급 회의를 위한 마지막 준비 회의였다. 이 회의를 위하여 에스캅 난다 사회개발국장이 3월 2일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난다 국장은 우리나라 정부와 장애인단체 관계자를 만나기도 하였는데, 이는 2012년 말이면 마무리되는 제2차 아·태 장애인 10년의 최종 평가와 새로운 10년의 주도를 한국이 하기 때문이었다.

제1차 10년은 중국이 주도하여 추진 협의를 위한 장애인 단체로 RNN이 만들어졌으나 이는 1차와 함께 해산되었고, 제2차 10년은 일본이 주도하여 진행하였는데, 이에 대한 협의 단체로 APDF(아·태 장애인 포럼)이 만들어졌고, 일본의 재정 지원으로 APCD(아·태 장애인 개발 센터)가 많은 사업을 맡아 하였다.

일본은 제2차 10년의 행동계획의 추진을 연장하여 BMF(비와코 새천년 계획) 플러스 5를 선언하여 5년의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 일본 주도의 이 사업과 섞이면서 지원금만 주고 아무런 권한도 실적도 없게 되지 않나 우려를 하여 왔다.

실제 이번 회의에서도 일본의 발언권은 강력하였고, 모든 안건의 검토를 위한 정부 발언에 일본이 항상 1순위였다.

인천전략의 검토에서 정부 대표들은 최대한 정부의 재정 부담을 피하려 하였고, 장애인 단체들은 최대한 국제장애인 권리협약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약속을 받아내려 하였다.

이에 대해 에스캅은 인천전략은 고위급 정부간 회의에서 통과되어야 하므로 통과 가능한 안을 우선하여 처리해야 된다는 입장이어서 장애인단체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난다 국장은 인천전략의 10가지 목표는 다음과 같이 정했다.

1. 빈곤감소 및 고용증진

2. 정치 참여 증진 및 의사결정권 강화

3. 물리적 환경, 대중교통, 정보통신 분야에서의 접근성 증진

4. 사회보호강화

5. 장애아동 교육증진 및 조기개입 확대

6. 양성평등 및 여성 역량강화

7. 재난관리에서의 장애관점 통합

8. 장애통계의 신뢰성 및 비교가능성 향상

9. 장애인권리협약 비준 확대 및 국가 법률과의 조화

10. 하위 지역별, 지역별, 지역상호간 협력 강화

그리고 이에 따른 세부 목표와 지표로 인천전략의 목표를 구성하였는데, 목표 설정 단계부터가 난다 국장은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했다.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 역시 에스캅이 이미 정해 놓고 짜맞추기식 연구로 추진되었다.

실제 한국 정부는 빈곤의 세부 목표에서 ‘하루 평균 1.25달러 이하의 소득(월 5만원 정도)과 장애인 수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은 한국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도 그 이상이 되므로 목표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난다 국장은 저개발 국가의 입장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한국 정부는 그러하지 않은 국가에서도 할 일이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장애인 단체의 입장을 거들었다.

그리고 목표 8의 장애 관련 자료 수집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므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목표로 강조하려 하였으나 난다 국장은 이를 토의할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새로운 아·태 장애인 10년의 슬로건처럼 국제장애인 권리협약의 ‘완전한 이행’을 위한 계획을 원하였고, 이 것이 아·태 지역에 한국 정부가 기여할 몫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난다 국장의 계획은 저개발 국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일본과 난다 국장측은이 활동할 장애인 단체마저 거의 내정한 것처럼 계획을 추진하자 한국정부는 한국정부와 한국 장애인단체의 역할이 없다는 이유로 기금은 에스캅에 두지 않고 한국장애인재단을 통하여 한국 내에 두겠다고 발표하였다.

난감해진 난다 국장은 결국 한국 정부가 준비한 회의 결의문을 채택하는 절차도 밟지 않은 채 회의를 마쳤다.

관례상으로도 회의가 열리면 성명서 채택이나 결의문 채택이 있는데,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준비한 결의안을 심의만 하고 채택 절차도 밟지 않고 회의를 종료시킨 것이다.

난다 국장은 기금을 에스캅 내부에 두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맞섰고, 한국정부는 ‘하면 선례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맞섰다.

굳이 에스캅에 기금을 주지 않는다면 인천전략의 서문이나 세부 행동 계획에 기금 운영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가 없게 되고, ‘한국정부의 기금 운영을 환영한다’는 식의 논평만이 가능하다고 난다 국장은 생각한 듯했다.

따라서 난다국장은 한국 정부가 그런 선택을 한다면 한국 정부의 계획을 에스캅 사업으로 채택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을지 몰라 그 미련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므로 인천전략의 확정도 포기해버렸다.

결국 의의 목적인 인천전략의 최종본도 마련하지 못하게 되었다.

에스캅은 앞으로 6월 말까지 초안의 수정안을 만들어 통신을 통하여 의견 조율을 한 후 인천에서 정부 대표끼리만 확정하겠다고 하여 사실상 장애인 단체의 직접 협의 가능성도 없어졌다.

한편, 일본 정부는 목표 중 재난의 검토에서 2차 세계대전인 태평양 전쟁의 잘못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전쟁 복구에 아·태 지역의 협조에 감사한다’고 발언했다.

또 일본의 장애인정책개혁위원회(한국의 국가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성격) 위원 26명 중 14명이 장애인 당사자임을 강조하는 발언을 장시간 설명하였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는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여 ‘차별금지’ 등의 표현들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한국 정부 대표는 다시 회의를 가져 인천전략 확정안 도출을 합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난다 국장은 서면 결의에 이어 인천에서 다루자고 밀어붙였다.

한국 정부는 에스캅이라는 국제 무대에서 일본과 난다 국장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외로운 주장자였다.

그리고 한국 장애인단체 대표인 재활협회로부터도 ‘기금을 에스캅에 내놓는 약속을 하지 않아 국제적 망신을 주었다, 장관 결재는 받아 온 것이냐’는 비난을 받았다.

난다 국장은 지난 3월 2일 한국 방문 시 장애인단체와의 협의 과정에서도 새로운 10년의 운영을 위한 위원회에 장애인 당사자가 반드시 과반수가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장애인단체이기만 하면 당사자이지 장애인은 기준이 아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정부가 앞으로의 이 길고도 험난한 협상에서 과연 한국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건인 것 같다.

DPI-AP 홍보부스 베너 앞에서의 기념 쵤영. ⓒ서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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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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