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기업도 사회에 공헌하여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우리말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치사하게 악착같이 벌더라도 명예롭게 사용하라는 말일 게다.

그러면 기업들은 치사하게 돈을 버는 것일까?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그 이유를 막론하고 치사하다. 이윤을 붙이는 이상 치사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에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고, 인류에게 풍요를 제공하며,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남는 자원을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켜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한다고 하지만, 그래서 이윤이 정당하다고 하지만 이윤을 대가로 정하는 것은 치사한 일이다. 땅 파서 장사하지 않는다란 말은 고객이 살기 전에 우리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윤 정도의 정당성은 공급자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고, 이윤을 붙이는 이상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에 봉사한다는 의미는 없어진다. 기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한 것이고, 이미 대가를 받은 이상 기여는 주장할 수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에 재산을 나누어 주고, 군에 솔선수범하여 참여하던 이 정신은 귀족의 소수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로마가 폐망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다시 말해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상실로 인하여 로마가 망했다는 것이다.

기업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 있어 보인다.

첫째, 가진 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귀족은 아니다. 그런데 귀족으로 착각하고 거드름을 피운다. 다음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영업과정에서의 원칙인지, 영업 후 분배과정에서의 원칙인지가 불분명하다. 도덕성은 두 과정 모두 필요한 것인데, 마치 후자의 선심이나 미덕으로 비추어진다.

사회 지도층이 사회에 기부한다는 말은 자주 듣게 되는데,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사회사업을 하는 재단을 설립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경우가 많다.

역대 대통령들이나 기업인들이 기부를 한다며 그 액수를 자랑스럽게 발표하면서 사실은 자기 측근들이 경영할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그 재단이 사회사업을 하고 재산이 사회재단이니 기부한 것이 맞겠으나, 그 재산의 처리나 경영권을 소유하는 이상 사회에 기부하였다고 보기는 사실 어렵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여한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기업 가치의 평가기준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6%는 '기업의 가치가 이윤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여에 의해 평가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기업의 외형과 이윤의 크기'라는 세간의 통념과 거리가 있는 답변이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자신이 이끄는 회사가 영업 등 경영활동을 통해 실제로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기업 활동이 사회에 분명 기여하는 바가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사회과목 시간에 배운 것처럼 국가와 기업, 가정이 모두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이고, 서로 소득과 지출로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에 기여한다.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처럼 물론 가정도 사회에 기여한다. 일을 잘 할 수 있는 에너지도 충전하고, 인력도 제공하며, 인재도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활동 자체에 이윤추구를 포장하는 사회기여를 주장하기에는 기업의 경영 마인드가 아직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윤추구, 부도덕한 기업인들의 사회적 지탄, 고객은 왕이라는 속임수로 서민을 시장의 노예로 보는 시각, 객관적이지 못한 기여금의 처리 방식 등은 이윤추구에 일정액의 기부를 의무로 보고 효과나 공정성 없이 그저 측근을 통해 내어 놓는 형식만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지만, 인도의 현대자동차 노동자 중 장애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것, 미얀마의 대우건설이 정부의 국민 억압에 협조하면서 뇌물은 내어도 기부는 못한다는 거부감 등은 한국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있다.

국제 회의에서 외국 장애인들을 만나면 한국의 다국적 기업에 대하여 앞에서의 예와 같은 아주 거부감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음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국내에서도 1억 원 이상 기부를 하는 귀족을 특별관리하여 모임을 하는 공동모금회나 어차피 쓸 예산을 이왕이면 측근을 통해 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지출 양식은 진정한 기부나 공정성 있는 기부를 저해하고 있다.

기업의 특성을 살려 자체의 고유한 기부 방식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사회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며, 기업 스스로가 동반성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에 그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음을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알아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기부는 거의 없는 데다가, 특정 단체에만 집중된 ‘큰 놈끼리 논다’는 말이 있다. 월드비전, 사랑의 가게 등 굵직한 기부 중개소가 있지만 이들 역시 배분권력자로서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큰 손으로서 작용하지만,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사용 비율을 들며 많은 일을 한다지만, 진정 장애인을 이해하고 기획하며 공정성을 찾아 고민하는 곳은 없다.

기업 스스로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국가가 책임지지 못한 가려운 부분을 기업이 찾아 사회적 책임을 맡아 준다면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이며, 기업은 진정한 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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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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