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세상은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말이다. 세상 살기가 힘들어지면 질수록 가장 어려운 자들은 역시 가장 취약계층에 위치한 사람들일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거나 목숨을 끊어 영원히 세상과 결별하는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버릴 수는 없으니 바꾸어 보자는 자들이다.

뉴스를 아무리 들어봐도 세상이 좋다거나 살맛난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최근들면서 더욱 그렇다.

강원도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한 달 새 150명의 신생아가 버려졌다거나, 사건 사고로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거나, 소값 파동으로 농민들이 도탄에 빠져 있다거나 등등 모두 세상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이야기뿐이다.

아이를 버리는 소식과 소값 안정을 위해 갓 태어난 송아지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기사가 나란히 소개되는 것을 보고, 갓 태어나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약자들의 삶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세상을 향해 포부를 펼쳐라, 너의 꿈이 무엇이냐 꿈을 가져라 등등 마치 꿈이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농민이나 천민으로 태어나 신분 사회로 인한 차별과 수탈 속에서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도적이 되거나, 난을 일으킬 때에 흔히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을 한다.

고려 말기 무신정권을 초래하게 된 것이 문신의 무신에 대한 차별이었다. 그렇다고 무신정권이 들어선 후 사회적 차별은 없어졌는가? 항·소·부곡의 노역과 농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무신들의 수탈은 더욱 심해졌다.

혼란이 새로운 질서를 찾아주지 못한채 혼돈과 혼란만 가중되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 탄생한 정권이 정작 취약계층을 이해한 것도 아니었다. 취약계층을 돌보던 사찰조차도 가뭄으로 인해 굶주린 백성들에게 고리대금으로 쌀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면 농토를 몰수해 왕보다 더 많은 토지를 가지다보니 급기야 백성이 세상을 바꾸지 않고서는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백성이 곧 하늘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을 바꾸어 보자고, 희망을 가지자고 말하며 백성의 힘을 빌어 차지한 권세들은 다시 더욱 심한 방법으로 백성을 죽음으로 몰았었다.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하지만, 자리는 측근들끼리 나누는 것은 시민의 대표를 자처하든, 민중의 대표를 자처하든 단어만 다를 뿐 마찬가지이다.

아이를 더 많이 낳으면 혜택을 준다고 하면 국가에 감사하면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백성들은 한 번의 혜택만 맛보고서 평생 땀흘려 대를 이어 바쳐야 하는 고래대금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국가가 먼저라고 목숨을 바친다. 몽고의 침략에 아무런 훈련조차도 받지 않은 백성들이 공을 세우면 차별의 사슬에서 벗어나 신분이 나아지리라 희망도 없이 몸을 던져 의병이 된다.

세상을 바꾸는 자는 가장 아래에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었다고 하는 자들은 따로 있다.

전쟁에서 병사들이 죽으로 전쟁을 치르지만 영웅은 따로 있고, 공로를 가져가는 자는 지휘관이다. 그들은 국민들은 관중이라 말하고 자신들은 대표 선수라 말하지만 결국 국민들이 축구를 하고 잘못하면 국민 탓, 잘하면 자신들의 공이다.

역사를 보면 세상을 바꾸는 자는 항상 사회 가장 아래층에 숨어 있는 이름 없는 백성이었다. 고려 농민들의 민란이나 동학혁명 등 많은 아래층의 몸부림이 때죽음으로 끝이 났다고 하지만, 그들이 죽었다고 그 정신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다시 백성들은 목숨을 걸고 일어나 저항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희망을 가진다.

최근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은 마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만든 변화가 백성들이 원해서 그 요구를 수용해 변화한 것으로 말하고, 그것을 수용한 자신들이 마치 백성의 대표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당파만 교체될 뿐 백성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일시적 고리대금의 규칙만 게임 규칙처럼 잠시 바뀔 뿐이다.

선거철이 되면 출마자가 ‘나도 장애인이다.’, ‘나도 장애인 가족이다.’, ‘나도 가난한 과거가 있었다’ 등등 말들을 한다. 하지만 현재 가난하지 않으면 과거가 가난하였다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장애인으로 살지 않으면 장애인이라는 말은 기만에 불과하다.

세상을 바꾸도록 주도하는 자들은 결국 또 다른 수탈자가 되어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 뿐, 피지배 계급으로 살아가는 백성의 삶은 아무런 변화 없이 잠시 변화된 모습에 만족감만 느껴야 할 뿐이다.

거대한 파도에 씻기는 모래처럼 새로운 바닥은 없는데, 변화로 인하여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달의 인력쯤 되는 고상함을 가진다.

이제 세상을 바꾸는 자들은 세상을 바꾸고,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니 우리는 본업으로 돌아가자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 손에 우리의 기본적 권리와 사회적 권력을 가져야 한다.

선거로 심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정권을 가지고 실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위기에 분연히 일어났다 죽었다 하더라도, 다시 먼 시대 어디쯤에 다시 일어나니 백성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엄청난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진정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

장애인에게 권력을 주지 않는 사회와 싸워 권력을 가져야 한다.

세상을 바꾸어 남에게 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지 않더라도 우리 손에 권리와 권력을 가지고 수탈과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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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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