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중증장애인에게 있어 두려운 날이다. 그래서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매일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에게는 아무런 새로울 것도 없는데 괜히 명절이라 하니 마음만 답답하다.

시설에 살고 있는 중증장애인의 명절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명절이 다가오면 시설에서는 혹시 올 지도 모르는 후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제히 청소를 한다. 청소를 할 때 경증장애인들은 모두 청소를 해야 하고, 중증장애인들은 청소하는 시간 동안 어느 창고 같은 곳에 버려져 있어야 한다.

다음은 새 옷을 갈아입을 차례다. 평소 입지 않는 새 옷을 입는 것은 기분이 좋으나 방문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어야 하기에 기분이 씁쓸하다. 더욱이 가끔 입다 보니 체형이 변해 몸에 잘 맞지도 않아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면 방문자들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교육도 받아야 한다.

교육은 간단하다. 일일이 대응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므로 머리가 아프거나 복잡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시와 통제에 놓여 주의를 받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일단 손님이 방문하면 중증장애로 인해 불편하고 장시간 고정된 자세로 있기가 불편해도 참고 강당에 나가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는다지만 사실상 동물원의 동물이 된 기분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질문과 동일한 대화에 녹음기처럼 반복해 말해야 한다. 침대에 병원의 중환자실처럼 나의 이력을 적어 두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묻지 말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위로를 하고, 우리의 형편도 모르면서 그저 용기를 내라, 힘을 내라, 열심히 살아라, 꿈을 가져라 등등 가르치고 훈계한다. 시설 이용자가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가 좋은 일을 했다고 스스로 만족하며 위로를 받는다.

내가 가지지도 못할, 모든 물건은 시설의 비품으로 다시 재정리될 물건 하나쯤 거주자에게 던지고 노래와 게임을 하다가 혼자 쉬고 싶어하면 직원들은 눈치를 주고 후원을 받는데 비협조적이라고 비난을 한다. 그래서 억지 웃음으로 몇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방문자들이 가고 나면 갑자기 적막이 찾아온다. 불 꺼진 공연장의 쓸쓸함처럼 다시 혼자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로 살아야 함을 어둠은 가르쳐 준다. 그 쓸쓸함과 싸우기 위해 방문자가 가르쳐 준 게임을 되새김하며 시간을 보내면 직원은 후원자에게 전화해 당신들의 사랑이 장애인의 뼛속 깊이 사무치게 영향을 주고 기쁨을 주었노라 자랑한다.

탈시설로 자립해 혼자 지역 사회에서 명절을 맞는 경우는 어떤가?

일상생활을 위한 활동보조인들은 모두 시골에 가거나 시댁에 가고, 아무리 호출을 해도 나를 도와줄 활동보조인은 없다. 배가 고파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 방광이 터질 지경이라도 참아야 한다. 혼자이니 아무런 체면도 개의치 말고 명절을 넘기고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체위와 행동을 하더라도 먹고 배출해야 한다.

정부에서 시간당 1천원을 더 인상하고 그 인상 금액을 이용자가 내도록 했는데, 그렇게 하고서라도 서비스를 제공받았으면 좋으련만. 동사무소에서 수급자라고 배달해 준 20킬로 짜리 정부미 쌀 한가마니는 활동보조인의 부재로 문 입구에서 그냥 명절을 새고 있다.

명절은 민속적으로 즐기는 날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민속적으로 즐길 것이 없다. 저 쌀 한 자루가 민속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잔치를 벌여 놓고 즐기기는 자기들끼리 즐기고 집을 보고 있는 팥쥐에게 떡 한 조각 건네주며 달래는 것인가?

친척들과 내왕하는 장애인들도 명절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무관심하던 집안 사람들이 명절이 되면 모든 친척들에게 순서대로 한 마디 하는 것이 관례라서 장애인의 순서가 되면 동정을 하거나 가족의 부담에 대하여 감사하도록 훈육을 한다. 어떤 형태이든 결과는 상처로 남는다.

항상 장애인의 문제는 사회로부터 단절돼 덮어두거나 그늘에 두고, 그늘에 있는 장애인이라 말해야 하기에 이슈화되지 못한다. 장애 인구가 250만이나 되고, 그 절반 이상이 실업 상태여도 사회는 무관심하지만, IMF 위기가 와서 청년 실업 100만 명이 되자, 사회는 비상상태를 선포할 지경이었고, 명절이 되어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이슈화가 되어도 장애인의 어려움은 아무도 관심을 끌지 못한다.

장애인에게 있어 명절은 역시 주류화는 명분이며, 우선 순위에서는 결코 먼저일 수 없으며, 우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보너스를 받고 고향에서 명절을 즐기지만, 대상으로 전락한 우리들은 참고 살아야 하는 하층계층임을 절실히 알게 하여 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내성을 키우는 교육기간이 된다.

이러한 사회가 주는 차별에 대한 내성과 재생산의 학습효과를 어떻게 이길까하고 극단적 상상을 하다 보면 그럭저럭 명절은 지나가겠지만 우리의 상처는 주기적으로 다시 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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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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