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디시 전철 내부. ⓒ샘

2004년 6월 20일.

나는 무엇을 그리도 그리워하는가? 이미 천국에 가신 아버지? 소아마비로 송두리째 날려버린 청년 시절? 아니면 두고두고 아픈 비틀린 삶?

이제 축복된 삶을 살고 있는데…….

피땀 흘려 공부한 결과로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고, 정말로 경험하기 힘든 상원의원 인턴 생활을 하고 있고, 그렇게 해보고 싶던 기숙사 생활도 해보고 있고, 장애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이동권을 철저하게 누리고 있는데……. 그래도 항상 무언가에 목말라 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글랜몬트를 향해 전철이 달리고 있다. 아침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주일마다 이 전철을 타고 있다. 딱딱한 느낌을 주는 전철이라는 표현보다는 열차라 하고 싶다.

지나간 어느 시간들, 고향을 떠날 때마다 얼굴에 가득 아쉬움을 담고 계시던 부모님의 모습, 그 모습을 뒤로하고 마냥 달리던 열차와 지금 타고 있는 열차가 무척이나 흡사하다. 그리고 나는 치기에 가까운 감상 속으로 마냥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감상들이 힘들면서도 나는 꼭 이 열차를 타고 주일마다 교회를 가는 것을 고집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수없는 나무 만큼이나 많은 상념들이 가슴을 밟고 지나가면 나는 무기력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창 밖만을 응시한다.

열차를 탈 때 나는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다. 그냥 열차에 올라 휠체어에 앉았다 내리고 마는 것이다.

문득 열차 안이 내게 주어진 자리가 없듯 세상에도 내게 주어진 자리가 없는 듯한 생각에 마음 한 켠으로 찬바람이 지나간다. 남들 다 자리에 앉는데 나만 통로에 휠체어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어정쩡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유난히 집착하는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모양이다. 공부에 집착하고 일에 집착하고 사물에 집착하고…….

그런 것 다 버리고 시원하게 흐르지 못하는 내 성격이 몹시 부끄럽다. 집착이 아닌 애정을 갖고 싶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

종착역에 이르러 쫒기듯 열차를 나와 교회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나무며 그리 호화스러워 보이지 않는 건물들이 휙휙 지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도감이 인다. 아름다운 동네, 그리고 따스한 날씨.

그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살면서 놓아주어야 하는 것들을 놓아주는데 인색하지 말자. 열차로 달려 오면서 보낸 수많은 나무들처럼……. 어쩌면 거기서부터 진정한 삶에 대한 사랑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전철 창을 통해 내 다본 주변. ⓒ샘

전철 창을 통해 보는 워싱턴 디시.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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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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