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에게도 40-50대는 경제행위가 한창 진행 중이어야 할 나이이므로 중장년을 위한 직업지원서비스가 절실하다.ⓒ정경숙

그녀는 한 손에는 과자 봉지를 들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면서 웃고 있었다. 어딘가 모자란 부분이 분명 있어 보이는데, 지적장애라고 보기보다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드라마에 등장하는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인 줄 알았다. 유난히 눈에 띄던 그녀가 지적장애 1급이고, 학교 교육, 사회생활 경험도 없이 50살이 된 장애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늘 집안과 주변에서만 숨바꼭질하면서 놀고 있었다.

꼭꼭 숨어 있던 그녀

그녀는 한동안 내가 일하고 있는 기쁨나무 작업장 문을 선뜻 열고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만 서성거렸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끌림으로 작업장 안에 들어온 후 이 일 저 일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오십 평생 손으로 일을 하지 않고 살았기에 손가락근육이 발달하지 않았고, 신발을 '로꾸꺼' 할 정도로 방향감각이 없어서 어떤 직무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지적장애인들이 하는 작업 과정 중 간단하고 쉬운 작업을 해보도록 유도했다. 그녀는 숫자, 글, 말 모든 것에 분명한 모자람이 있어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살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만지작만지작 거렸던 손으로 처음에는 볼펜 뒷축에 볼을 끼우는 일을 시작했다. 떨리는 오른손으로 볼펜 뒷축을 잡고 왼손으로 볼을 끼우면서 쩔쩔맸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 할 수 있다는 표정의 변화가 생겼다. 그러다가 필통이나 저금통을 비닐봉투에 담았고, 칫솔도 색깔별로 넣어서 포장했다. 그 뒤 립스틱 용기 조립으로 서서히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다.

일을 통해서 자신감을 회복한 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보다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눈치가 빨라서 빗자루 들면 쓰레받기를 가져올 줄 알고, 비가 오면 우산을 챙길 줄 알게 되었다. 손님이 오면 커피나 차를 타서 대접할 줄 아는 마음, 식사시간에는 밥 먹었느냐, 아픈 사람에게는 아프지 말라며 위로를 건넬 줄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초대해 주지 않았다

그녀가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집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도 소속될 직업 공간이 없었고, 아무도 그녀를 정식으로 초대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복지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대부분 30대까지로 나이 제한을 두고 있다. 40대, 50대를 끼워주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이 이 나이 때가 되면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장애인 자녀를 위한 권익활동을 할 수 없거나 돌아가신 후이기 때문에 보호 없이 방임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속감을 가질 여지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지적장애인들이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러운 성장과 발달 가능성보다는 퇴화와 불안의 가능성이 높다는 의식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에게도 특정한 인생시기인 40대, 50대를 그저 일방적?수동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로만 위치 짓기 때문인 것이다. 이로 인해 자기과업의 완성을 위하여 끊임없이 도전하는 능동적이고 개별성을 가진 개인이라는 관점은 무시당해 온 것이다. 경제행위가 한창 진행 중이어야 할 나이에 무위하게 지내야 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기에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그 짐을 대신해서 지어 주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65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년의 삶으로 진입할 수도 없는 어중간한 중장년에 해당되는 25년 이상의 삶을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몰라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낡은 생각 뒤집기

50세의 나이에 길에서 주저앉아 있을 때 그녀 나름의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생 동안 겪게 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경제 문제들과 그 해결 과정이 그녀에게도 그대로 닥쳐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상황적 요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서비스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최우선으로 직업적인 서비스를 지원해 준다면 스스로를 지탱하고 견뎌나가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애가 있으면, 나이가 들면 “다 그래”라는 낡은 생각을 뒤집으면 50년 동안 비워 있던 자리에서 그녀의 적합한 직무 찾기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배희는 기쁨나무장애인작업장에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로서 지적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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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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