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용기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다. ⓒ정오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온라인상의 상상 속 인물들을 만나러 갔다.

장애인이 되기 전에 한 번도 혼자서 서울이란 곳을 가본 적이 없는 내가 참으로 기가 막히게도 혼자서는 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겁 없이 서울로 나선 것이다.

내가 혹시 사고가 날 때 간도 다쳐 부었나? 하하 아니면 수혈 받을 때 어떤 엄청난 사람의 피를 수혈 받은 것은 아닐까? 더구나 병원이라면 퇴원 후 한 번도 간적이 없을 만큼 병원을 무서워했는데 도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닌 것만 같다.

드디어 병원 입구에 도착해보니 왜 이리 병원은 큰지 안 그래도 병원에 병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백 미터 달리기는 한 거 같은데 건물까지 크니 내가 갑자기 엄마 손을 놓친 아기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온다는 분들은 아직 시간이 있어 가까운 곳에 아는 분들과 점심을 드시고 온다고 하고 난 초행길이라 아침두 대충하고 일찍 나오는 바람에 병원에 들어서 겁나는 그 와중에도 뱃속에서는 밥 달라고 난리가 났다.

“얘~니가 지금 밥 달라 소리가 나오니 정신 차려 여기 니가 제일 싫어하는 병원이거덩”그래도 막무가내다. 꼬르륵~꼬르륵~밥줘한다.

이런 혼자서 어디 가서 뭘 먹는 성격이 아니라 어쩌나 기다리기도 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지하로 내려갔다.

‘우와’~음식 냄새가 아주 날 유혹하는데 그냥 고~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차마 앉아서 많이두 못 먹는 음식 시켜놓고 먹다 말고 나오기도 그렇고 매점에서 두유 한 병 사고 꽃집도 옆에 있길래 병원 냄새에 가슴 답답할까봐 향기 좋은 후리지아를 색깔대로 골고루 사서 한 다발 안고 로비로 올라왔다.

따끈한 두유를 마시니 좀 배고픔도 가라않고 긴장해서 떨리는 증상도 좀 여유로워지고 환자 좋으라고 산 꽃향기가 내 기분도 좋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띠리링~벨소리가 울리고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먼저 올라가라고 금방 차 대고 올라온다고 하시길래 병실을 찾아 올라가니 나이가 나보다 어린 친구라서 그런지 환자복을 입고 있어도 환자 같질않고 이쁘기만하다.

물론 처음 보는 친구였지만 서먹함보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병실 입구에서 내 닉네임을 부르면서 누군가 휠체어를 타고 두 팔을 들고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편지향기님 반가워요~잘왔어요. 잘했어요.”

바로 강원도에 사시는 분이다. 내 이름은 모르고 닉네임만 알기에…. 내게 용기를 내보라고 하신 그 분은 며칠 전 형이 사고가 나서 크게 다쳐 병원 중환자실에 계셔 마음과 집안이 정신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약속을 했었기에 이 약속을 지키려고 친구차로 병원까지 강원도에서 두 번째 외출을 하신 것이다.

“어머 안녕하세요~고맙습니다. 덕분에 용기내서 왔어요.”

“그래요 잘왔어요. 이렇게 얼굴 보니 정말 좋으네요.”

그리고 그 분은 닭발 같은 내 손을 꼭 잡아주셨고 이어 다른 분들도 반가운 얼굴로 웃으며 들어오셨다. 글로만 알던 내 이미지와 직접 본 그 분들에 느낌은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난 마냥 좋았다.

글에도 사람마다 향기와 온기가 느껴지지만 온전히 그 마음을 다 느끼는 데는 조금은 아쉬운 점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직접적인 만남들을 통해서 모두 해소가 되었고 언어장애인들도 있지만 눈빛에서 어느 정도는 마음들이 전달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진정한 장애는 말이나 몸이 보이는 것이 아닌 마음이 닫힌 장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좋은 시간이었다.

나에 첫 홀로 외출은 대 성공을 거두었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갈 때보다 몇 배는 더 가벼워져 3월 초 꽃샘추위로 살랑대는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니 그냥 날아갔으면 딱 좋은 기분이었다.

집에서 걱정 할 엄마에게도 자랑스럽게 전화로 이야길했다.ㅎㅎ

“잘했다 우리 딸 잘 할 줄 알았다.”

“에이 거짓말 내가 넘어질까봐 가슴 조리며 새까맣게 애간장 다 타고도 빵꾸났을걸 아마”

“하하 아냐 너니까 옥선이니까 해 낼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 정말 이야~우리 엄마 딸을 너무 믿는거 같네 푸하하."

그렇게 잠시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엄마와 다른 분들이 달아준 믿음과 용기라는 날개를 펼치고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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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타인의 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고 다른 사람들보다 이름표 하나 더 가진 욕심 많은 사람. 장애인이 된 후 고통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불평이나 원망보다 감사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얼굴부터 온 몸에 58%의 중증 화상에 흉터들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용감하게 내놓고 다니는 강도가 만나면 도망 갈 무서운 여자. 오프라인 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워 온라인상의 장애인 카페를 통해서 글을 올리면서부터 다른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사소한 나의 글 하나에도 웃는 것이 좋아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된 행복한 여자입니다. 제가 내세울 학력은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아온 6년이 가장 소중한 배움에 시간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믿음과 감사와 사랑이 제게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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