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 ⓒ노컷뉴스

2003년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노무현은 대통령에 취임했다. 시골출신의 가난한 장애인이었던 내가 세계를 처음 논리적으로 배워갈 무렵은, 그렇게 노무현의 시대였다. 그 시대 동안 나는 장애인권담론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에 대해 작은 활동을 해왔으며,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보았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고된 삶 속에 갇혀있지만 이제 적어도 광장으로 나와 목소리를 낼 정도의 힘은 얻게 되었다.

노무현의 시대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의 체결은 그의 지지자들을 특히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장애인들 역시 수많은 사안을 두고 노무현 정부와 대립했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서명식에서는 진보적 장애인운동계의 대표적인 리더 박경석과 박김영희 등이 노무현 앞에서 플랜카드를 펼쳐들어야 했다. 노무현의 최측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집 앞은 LPG 제도축소와 활동보조인제도를 둘러싼 정부의 미온적인 지원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천막이 설치되었다.

물론 노무현의 시대에 장애인운동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그에 따라 장애인들의 인권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된 많은 법안들이 통과되기도 했다. 노무현은 젊은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그것은 장애인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최소한의 양심과 합리성으로 장애인운동의 성과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대를 이끌어온 것은 분명 노무현 자신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 기층에서 끊임없이 자기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세계와 싸웠던 장애인들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난과 장애에 시달리면서 사실상 아무런 자원도 갖지 못했던 소위 ‘바닥인생들'에게,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드라마틱했던 노무현의 삶은 강력한 의미를 지는 상징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존재가 위치한 자리는 바로 세상의 '지하'에 살면서 한 번도 주연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이 꿈꾸었던, 세상에 대한 그 절절한 열망이었고 꿈이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완벽하고 영웅적인 인물이 전혀 아니었고 그저 합리적인 사고와 동정심이 많았던 한 정치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여러 측면에서 복잡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그런만큼 우리는 노무현에게 더 실망하기도 하고, 기대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의 죽음으로 끝난, 이 노무현을 상징으로 하는 시대의 패배가 바로 2003년에 시작된 나의 본격적인 20대, 바로 그 세대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시대의 20대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며, 아무런 정치적 영향력을 갖지 못한 세대로 취급된다. 나는 대학시절 장애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하고, 함께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우리세대에게는 당장 닥친 취업준비를 위한 토익, 토플, 학점 이외의 것들을 볼 여유도, 용기도 없었다. 나를 비롯한 누구도 장애인운동과 같은 절절한 그 목소리들의 중심에 뛰어들 결의가 없었다. 80년대 민주화투쟁을 이끌었던 선배들이 만든 사회과학 동아리들은 모두 죽었고, 어떤 대학생들도 더 이상 세계의 의미를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장애인으로서 최소한의 필요가 충족된 이후로 별다른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나 역시 돈을 벌고 싶었고,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할 두려운 미래 앞에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이 책에서,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정치적 행동도 하지 못하는 20대를 가리켜 '88만원 세대'라고 명명했다.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그렇게 무력한 우리들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결국 기여하고 말았다. 20대들, 특히 아무것도 갖지 못한 20대들은 자신들에게 그 어떤 경제적 이익도 주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한 후보자를 위해 기꺼이 투표를 했다. 그리고 역시 가장 불이익을 크게 입을 장애인들도 대놓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불안한 시대의 한 가운데서 두려움에 떨던 우리들에게는 ‘경제성장’을 시켜줄 것이라 믿었던 후보자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노무현은 죽었다. 노무현은 불완전하고 아쉬운 정치인이었지만, 그나마 그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모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한 마디로 낙인찍혀 겨우 1년여 만에 모조리 삭제당하고 말았다. 2003년 나처럼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출발했던 노무현은, 나의 실패, 우리 세대의 실패와 함께 바위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노무현의 시대는 분명 아쉬움의 시대였지만, 이제는 아쉽다고 말할 수 있는 광장조차 잃어버린 시대가 되고 말았다. 장애인들에게 열렬한 투쟁이 없이는 생존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20대들에게는 88만원의 평균임금과 파트타임 노동직만을 강요하면서, “너희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외치는 꼰대들의 사회에서 20대이자 장애인인 나는 노무현의 죽음 앞에 나의 패배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죽음에 진심어린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그의 존재가 상징했던 우리들의 도전과 희망에도 진정한 애도를 표한다. 부끄러운 순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2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 태어나서부터 10여 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 특수학교 중학부, 일반고교를 거쳐 2003년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2009년부터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주와 관련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생물학 서적, 연극, 드라마, 소설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섹시한 장애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지만 가난하고 까칠한 성격에 별 볼일 없는 외모로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 신이나 사람, 어떤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자 노력중이다. 직설적이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법을 종종 구사해 주변에서 원성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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