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예고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 방송사업자에 의한 방송광고 자체 사전심의 의무화, ▲ 업무수행에 필요한 소요경비 지원 근거 마련, ▲ 방송광고 법규 위반자 제재규정 명확화, ▲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와 방송발전기금관리위원회 폐지 등이다. 개정되는 법률 내용들이 장애인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어 장애인계에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동안 보편성시청권위원회 설치와 운영의 기초가 되었던 ‘보편적 시청권’은 장애인과 관련한 프로그램의 시청권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보편적 시청권이 장애인과 어떤 연관을 있느냐는 몇 달 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의 주제인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중계문제와 연관시켜보면 알 수 있다.

기자회견은 지난 9월 29일 열렸던 것으로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가 주최했다. 이 기자회견은 MBC, KBS, SBS 지상파 3사가 장애인을 차별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하여 열린 것이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단체의 배용한 회장을 비롯하여 이날 참석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비장애인 올림픽 때는 낮 시간도 부족하여 심야 때까지 지겹도록 중계를 했던 방송사들이 장애인올림픽에 대해서는 생중계는커녕 단신 보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기자회견 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는 9월 6일부터 17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장애인 올림픽 경기를 지상파 방송사들이 중계방송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장애인들의 방송권을 침해받았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지적했듯이 지난 8월 8일부터 24일까지 실시된 베이징올림픽 기간 동안 방송사들이 정규방송을 접으면서까지 같은 경기를 동시에 생중계 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치러진 장애인 올림픽은 KBS의 경우 개막식 때 유일하게 녹화 중계를 하였고, 주요경기의 하이라이트를 편집해 낮 시간(14시 10분-15시 55분)에 방송한 것이 전부였다. 장애인 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 3개를 쏟아낸 9월 9일 경기에 대하여 지상파 방송3사는 녹화중계조차 없었다. KBS를 제외한 MBC, SBS의 경우에는 뉴스 시간대를 통해서만 주요 경기의 일부만 보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 뉴스보다는 스포츠 뉴스로 돌렸고, 순서도 후순위로 밀려 보도된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올림픽 중계 차별진정 기자회견. ⓒ에이블뉴스

이와 관련하여 지난 국정감사에서 주호영 의원(한나라당, 문화관광체육위원회)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영국 BBC의 경우에는 장애인 올림픽 개막식을 생중계로 준비했고, 하루 6시간 이상의 생방송을 할 계획을 세웠다 한다. 그리고 미국 NBC는 지상파에서 생중계는 하지 않았지만, NBC의 스포츠 채널인 ‘유니버설스포츠’를 통해서 생방송을 준비했다고 한다.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외국 방송과 다르게 장애인 올림픽에 대하여 중계방송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방송사 측은 장애인 스포츠 행사의 경우 낮은 시청률과 이로 인한 광고수익의 감소 때문에 생중계를 하기 어렵다고 한다. 방송사의 이러한 논리는 언뜻 듣기에 그럴 듯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다. KBS 1채널의 경우는 공영방송이라 광고방송을 하지 않는다. 시청률 경쟁에 대한 부담도 다른 방송보다 덜하다. 그리고 현재 MBC도 공영방송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으므로 시청률과 광고수익만을 가지고 장애인올림픽 중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책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현행 ‘방송법’ 제2조에서는 일반 국민이 방송을 시청할 권리인 ‘보편적 시청권’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보편적 시청권이라고 하면 장애인들의 경우 언뜻 방송접근권이나 참여권 등을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방송법’에서 말하는 보편적 시청권은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방송법’에서는 보편적 시청권은 국민들의 관심이 큰 체육경기나 행사 등을 방송이 의무적으로 중계방송을 하여 시청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이 시청할 권리인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한 중계방송 스포츠 등에 대하여 ‘국민관심행사’라는 고시를 통하여 정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관심행사’에서 밝히고 있는 중계방송을 할 스포츠행사 등은 국민들에게 관심이 큰 동ㆍ하계 올림픽과 국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월드컵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올림픽 등과 유사한 행사의 경우도 국민적 관심도나 시청자의 권익, 방송시장의 공정거래질서 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정 별도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사의 중계를 위해서는 국민 전체가구 수의 100분의 90이상 가구가 시청할 수 있는 방송수단(TV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단서를 달고 있다. 또한 방송시청 수단이 국민 전체가구 수의 100분의 60에서 75이하인 경우에는 이러한 스포츠 경기가 아닌 별도로 정하는 행사에 대하여 중계방송을 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국민관심행사’ 고시에 밝히는 바와 같이 ‘올림픽 등과 유사한 행사의 경우도 국민적 관심도나 시청자의 권익’의 문구를 확대 해석한다면 장애인올림픽도 중계방송에 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청자의 권익을 고려해야 하는 중계방송의 종류를 현재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아 장애인올림픽의 경우 방송사에서 중계를 회피하고 있다.

장애인올림픽 성화. ⓒ남원순천인터넷뉴스

현행 ‘방송법’을 보면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내용이 뜻하는 의미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애인올림픽을 중계방송하라고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공영방송의 경우 ‘공익’을 실천할 의무가 있으므로 장애인 올림픽에 대하여 생중계를 포함한 중계방송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법’에 의한다면 상업방송의 경우도 공영방송 못지않게 공영성을 준수할 의무가 있으므로 개막과 폐막, 주요경기에 대해서는 녹화방송이라고 방영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방송사들이 시청률과 광고수익을 핑계로 장애인올림픽을 중계방송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며,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방송이 지금도 장애인을 일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 특집방송을 만들어 배려를 해줘야 하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는 ‘방송법개정안’의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의 폐지는 정부가 위원회를 정비하는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라 장애인들에게 큰 의미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시청권보장위원회가 그동안 장애인의 보편적 시청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지, 보편적 시청권이 앞으로 장애인과 관련한 방송프로그램 시청권 확대에 기여할 여지는 있는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사항이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가 낸 진정에 대하여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장애인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 중인 ‘장애인올림픽 중계’와 관련한 차별에 대하여 표면적으로 드러난 방송정책을 근거로 기각하거나 각하해 버리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 문제가 차별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하고 있는 장애인의 인권지표를 활용한 방송제작 가이드에 실리는 글 가운데 일부(김철환 원고)를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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