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경혜씨와 함께 쓰는 백일의 꿈’ 표지.ⓒ땡스앤북스

서귀포에 자리하고 있는 ‘평화의마을’은 이미 유명한 곳이다. ‘제주맘’이라고 믿고 먹을 수 있는 소시지를 만드는 1세대 사회적기업으로, 식빵을 만들어 호텔 등에 납품하기도 한다.

바로 이 평화의마을 제빵실에 42세 발달장애인 임경혜 씨가 일하고 있다. 서귀포시에 있는 집을 떠나와 동료 세 명과 함께 ‘그룹홈’이라 불리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비혼 여성이다.

이런 경혜씨의 별명은 울보. 일하다 속상한 일이 떠오르거나 일이 힘에 부칠 때면 복도로 나와 혼자 울고 앉아 있다. 거의 날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몇 번씩 그러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런 경혜씨를 보며 평화의마을 이귀경 원장은 생각이 많아졌다. 직원들에게 기술을 익히게 하고 기능을 향상시켜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것만이 정답일까 고민이 된 것. 발달장애인에게도 분명 적성이란 게 있으니까 말이다.

“경혜씨, 오늘은 왜 울었어요? 좋았거나 속상한 일, 그리고 기분 나빴던 일을 일기에 써보면 어때요?”

그날 밤, 경혜씨는 스프링 공책을 펼치고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경혜씨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석 달쯤 지났을 때 이귀경 원장은 우연히 경혜씨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일기장에는 경혜씨의 일상과 생각이 그림과 함께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일기장을 보며 이귀경 원장은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자기표현에 서툰 경혜씨지만 단순한 그림과 글 속에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어 마치 자신을 토닥토닥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혜씨의 일기를 책으로 출간해 저작권료를 지급하면 경혜씨에게 새로운 일을 만들어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이귀경 원장은 바로 출판사에 연락을 했다.

이에 출판사도 의기투합, 경혜씨 일기 한 장, 독자의 일기 한 장, 이렇게 번갈아가며 쓰는 꿈의 기록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경혜씨에게 멋진 선물이 될 것은 물론, 요즘처럼 불안하고 고단한 시기에 경혜씨의 일기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해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경혜씨의 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며 조금 더 착해지는 느낌이 든다. 일기 속의 경혜씨는 ‘땡깡’ 부리고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린다. 날씨를 적듯 그날의 눈물을 기록해 둔 것을 보면 큭! 웃음이 나기도 한다. 우리 모두의 일상이 그런 것처럼, 날마다 똑같은 것 같지만 모두가 다른 하루, 경혜씨의 일기를 읽다 보면 흐뭇한 미소로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백일의 꿈’ 속에는 경혜씨의 일기 외에도 평화의마을 이귀경 원장이 쓴 ‘대신 쓰는 경혜씨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글은 15년 동안 경혜씨와 함께 일하고 생활해 온 이귀경 원장의 경험과 느낌, 가족 인터뷰를 통해 완성되었다.

<임경혜 지음, 땡스앤북스 펴냄, 232쪽, 가격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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