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기념일' 표지.ⓒ다다서재

농인 사진가 부부가 있다. 남자 사진가는 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보청기를 끼고 음성언어를 훈련하며 성장했다.

여자 사진가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수화언어로 소통하며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자랐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아이는 들을 수 있는, 청인이다.

신간 ‘서로 다른 기념일’은 언어와 감각이 다른 한 가족의 특별한 일상을 담고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살아온 아내,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아이와 지내며 겪는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언어, 감각, 몸, 소통, 장애, 다양성,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다른 몸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쓴 에세이인 동시에 다른 언어를 가진 존재와 소통하는 것에 대해 농인 당사자의 시선으로 기록한 사회과학서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소리 없는 삶에 익숙하던 여자. 수화언어로 소통하며 비로소 안정된 언어를 찾고 사진가로서도 자리를 잡아가던 남자. 농인의 삶에 익숙해진 줄 알았지만, 갓난아이를 기르는 일은 예상보다 험난하다.

부부는 젖먹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해 밤을 지새우고, 30분마다 진동이 울리도록 설정한 휴대전화를 속옷 속에 넣고서야 간신히 잠든다. 아이 역시 소리가 아닌 눈빛과 몸짓으로 부모를 불러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배가 고파지면 맹수처럼 신경을 곤두세운 채 부모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분투한다.

저자는 바로 뒤에 따라오던 아내가 사고를 당한 걸 뒤늦게 알았을 때,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져 홀로 울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 처음으로 ‘듣지 못한다’는 것의 차가운 진실을 사무치게 실감하고 만다. 그러나 ‘서로 다름’이란 그저 불편하고 쓸쓸한 상황일 뿐, 그들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가족은 서로의 숨결을 알아차리기 위해 매일 밤 나란히 몸을 포갠 채 잠든다. 듣지 못하지만 서로를 더 보고 더 느끼기로 한다. 저자는 아이에게 서로가 다르다는 걸 처음 알린 날을 “서로 다른 기념일”로 정하고 “우리가 달라서 기쁘다”고 고백한다.

‘서로 다른 기념일’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진심을 주고받는 가족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도, 그와 동시에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인간들의 공존에 대해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소리 없이도 말할 수 있다. 보이거나 들리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다. 몸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기념일’은 ‘나와 다른 존재’에 배타적이기 쉬운 우리 사회에 소통과 공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출판사 다다서재, 272면, 값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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