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황금가지

최근 한 농아시설에서 17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살인사건에 얽힌 전말을 밝히려 하는 수화 통역사의 이야기를 그린 사회파 미스터리 ‘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가 출간됐다.

촘촘하고 탄탄한 플롯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의 세계를 세밀하게 포착한 이 소설은 400여 편의 응모작이 쏟아진 제18회 마쓰모토 세이초 상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단 4편에 불과한 최종 후보작에 선정됐다.

또 출간 후 ‘코다’를 비롯해 대중에게 낯선 농문화(聾文化)에 대한 시야를 트이게 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독자들의 입소문을 탔다. 코다(CODA)란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청인 아이를 일컫는다.

코다인 수화 통역사 주인공의 시각에서 담담하게 풀려 나가는 이야기는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세세하게 보여 주며 깊은 시사점과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데프 보이스’는 수화 통역사란 직업을 택함으로써 아라이의 삶의 방식에 찾아온 변화와 코다인 그가 겪어야 했던 고뇌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아라이는 성장하면서 가족을 비롯한 농인 사회에서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점차 멀어진다. 한편으로 비장애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의 몰이해 역시 그에게 아픈 경험을 안긴다.

특히 그의 뇌리에 남은 사건은 경찰서 사무직으로 근무할 당시 농아시설 ‘해마의 집’ 이사장 살해 용의자인 농인의 취조 과정을 억지로 통역해야 했던 일이었다. 수화 통역사가 되면서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농인 사회와 다시 마주한 그가 일에 익숙해져 갈 무렵, 예상치 못한 소식이 날아든다. ‘해마의 집’의 현 이사장, 즉 17년 전 죽은 전대 이사장의 아들이 살해당했다는 것이었다.

범인은 과거와 동일한 인물일까? 묵비권을 인지하지 못한 채 법정에 선 농인을 돕기 위해 비영리 단체와 협업하는 가운데, 아라이는 ‘해마의 집’을 둘러싸고 과거와 현재에 벌어진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데프 보이스’는 살인 사건과 수수께끼, 반전이 담겨 있는 흥미로운 미스터리이면서, 동시에 두 문화 속 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이 느끼는 정체성의 위기와 화해를 그린 성장소설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

주인공인 아라이는 수화와 음성언어를 둘 다 유창하게 하고 농인과 청인의 문화를 동시에 이해하는, 말하자면 2개 국어를 사용하는 ‘바이링구얼’이다. 그는 성장과정은 물론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작중 ‘언어적 소수자’로 묘사되는 농인들이 던지는 ‘너는 우리 편인가, 아님 적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혀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한없이 가까운 주변인으로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 나가고 목소리를 전달한다.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가 화두인 이 시기에, ‘데프 보이스’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큰 울림을 준다.

<지은이 마루야마 마사키, 옮긴이 최은지, 분야 일본소설 추리, 출판사 황금가지, 페이지 344쪽, 가격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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