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권 고려대 교수가 쓴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글항아리 펴냄) 표지.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휠체어도 없고, 점자나 체계적인 수화도 없고, 의족ㆍ의수도 없던 시절에 장애인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정창권 고려대 교수가 쓴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글항아리 펴냄)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2천여 년의 역사 속 장애인 관련 사료를 읽어낸 책이다.

역사와 문학, 회화, 음악, 법률, 풍속 등 다양한 분야의 장애인 관련 기록들을 최대한 수집해 당시 장애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살펴봤다.

과거 장애인들은 잔질인(殘疾人), 독질인(篤疾人), 폐질인(廢疾人) 등으로 불렸다. 민간에서의 호칭은 '병신'이었다.

장애 보조 기구도 없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도 미흡한 과거의 장애인들은 오늘날보다 매우 힘들게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책의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저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지어 특별히 장애인을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근현대에 이르러서"라며 "과거의 장애인은 비록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몸은 좀 불편했을지라도, 장애에 대한 편견은 훨씬 덜하여 사회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갔다"고 말한다.

실제로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이나 유몽인의 '어우야담'과 같은 이야기책 속에 장애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이들이 비장애인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고 여행을 하며 자유롭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도 제법 체계적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홀아비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더불어 장애인들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해 곡식이나 생필품을 지급했다.

"지금 농사철을 만났으니 농사에 힘써야 할 건장한 남녀들에게는 모두 환상을 주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과고독과 잔질, 폐질 및 빌어먹는 자에게는 진제(진휼곡)를 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세종실록' 중)

혼자 사는 나이든 장애인에게는 오늘날의 활동보조인 격인 부양자를 붙여줬고, 장애인과 부양자에게는 부역이나 잡역 등을 면제해주었다.

또 장애인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을 때도 사형은 유배형으로, 유배형은 태형으로 감형했다.

조선 전기에는 시각장애인 단체인 '명통시(明通寺)'가 설립되기도 했다.

국가 지원을 받는 공적 기관이었던 명통시에서는 시각 장애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독경을 연습하거나 나라에서 주관하는 기우제, 일식과 월식, 질병 치료 같은 행사에 참여하곤 했다.

저자는 "아직 '세계의 장애인사'가 쓰이지 않아서 단언하긴 어렵지만, 세계 최초의 장애인 단체는 바로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옛날의 다양한 장애 유형과 원인, 유형별 장애인의 역사, 직업사, 장애인 왕족과 관료들, 유명한 장애 인물들 등 다채로운 장애사가 담겼다.

568쪽. 2만9천800원.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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