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중증 장애아동 준현이는 영국에서 여러 가지 보조기기를 무상으로 지원받으며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배상억

-준현이가 특수학교에 다닌다고 들었어요.

영국 버밍험시에서 가장 큰 특수학교인 빅토리아 스쿨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에 상주하는 간호사들이 아이들을 약 15명씩 담당하고 있어 아이들이 학교 생활하는 동안 건강상태를 세심하게 체크해 주는데요. 의사도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또는 원할 때마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리치료사가 치료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보조기구 장비들을 관리해주고 필요한 것들을 주문해주고 바꿔주는 일까지 한답니다.

언어치료사가 두 팀으로 나누어 의사소통 교육과 섭식지도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준현이의 점심 식사량이 적은 것과 체중이 늘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섭식치료 상담을 한 적도 있습니다. 준현이 한 사람을 위해 간호사, 영양사, 의사, 교사, 부모가 한 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댄 자리였죠.

특별히 감사한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늘 정확한 시간에 준현이를 데리러 오는 친절한 스쿨버스 기사님과 가이드 선생님이 계시다는 겁니다. 이 분들은 준현이의 행복한 하루를 열어 주시는 정말 고마우신 분들이신데요. 이렇게 1년 반 동안 지내다보니 어느 새 오는 9월이면 우리 준현이도 중학교에 가게 되었답니다.

-영국과 우리나라의 특수 교육은 차이가 있을 텐데요.

선진국의 추세가 그렇다보니 영국에서도 통합교육 정책(Inclusion policy)을 도입한 후 특수학교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영국에서는 특수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지방정부에서 발급하는 교육 허가서가 있어야 되는데요. 자녀를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학부모들 중에는 이 허가서를 받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이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통합교육 정책의 영향으로 특수교사를 배출하는 과정이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준현이 학교 선생님과 상담을 하다보면 장애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영국의 통합교육 정책(Inclusion Policy)은 일반학교에 장애 아이를 보내도록 권장하는 것으로, 필요하다면 그 아이를 위해 필요한 시설 및 장비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를 뜻한다.

-준현이가 쓰는 보조기기는 가짓수도 많지만 무상 지원되었다고요?

준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버밍험시 사회복지부의 장애아동 전담 팀 직원이 저희 집을 방문했습니다. 집에서 필요한 보조기구에 대해 말해 보라고 하길래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이것 저것 얘기해 드렸죠.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왔습니다. 보조기기 제조회사였는데 준현이 치수를 물어보며 필요한 제품의 샘플을 보여 주겠다는 거였어요. 약속한 당일에는 사회복지부 직원도 함께 와서 물건 상담에 도움을 주면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보조기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 준현이는 특수 제작한 침대를 비롯하여 목욕의자, 화장실 변기, 실내용 특수의자, 호이스트(hoist) 등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놀라웠던 건 처음에 받은 호이스트가 다소 무겁다고 하자 바로 새롭고 가벼운 것으로 바꿔주어 사용하기 쉽게 해주었다는 겁니다. 며칠 전에는 특수침대 제조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내용은 준현이가 12살이 되면서 침대용 매트가 좀 더 큰 것이 필요할 것이란 거였어요. 그러니 새로운 매트를 보내 주겠다고 하더군요. 이 모든 것이 정부 지원으로 이뤄진 것이었죠. 우리나라와 비교해 영국의 장애 연금제도의 큰 차이점은 보편적 지원을 원칙으로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애인 및 그 가족의 재산 상태와 관계없이 지원한다는 것이죠.

-영국생활을 통해 준현이도, 부모님도 변화된 것이 많겠는데요.

우선은 준현이를 학교에 보내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우리 아이에게 알맞은 학교를 찾을 수 없어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 두려웠거든요. 결국 세 번이나 유예를 했었지요. 영국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준현이의 나이에 해당하는 학급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학급에서 가장 작고 약해보이지만 하루 6시간의 학교생활을 거뜬히 잘 하고 있는 걸 볼 때마다 준현이가 참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여기 와서 저희 부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부모로서 치료와 교육에 대한 부담이 많이 적어진 것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영국에서는 유럽 전역에서 공용되는 '블루 배지'라는 장애인 주차카드를 사용한다. 우리와 달리 장애인 탑승자만 승차하면 어느 차에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배상억

-듣자니 영국의 장애인 주차 제도는 우리나라보다 좀 더 장애인에게 편리하다고 하던데요.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자동차 견인에 대한 뉴스가 나와 자세히 보았습니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불법 주차한 차들을 단속하고 있었는데요. 자신의 차가 견인된 것을 보고 한 젊은이가 장애인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단속원은 거침없이 딱지를 끊어버렸죠. 젊은이는 그것은 어머니의 것이라며 항의를 하더군요. 그런데 본인이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면서 장애인 카드를 빌려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사는 가족이나 보호자라고 해도 동승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경고를 듣게 되었죠. 여기서는 불법주차 스티커를 발부 받으면 한화 15만원 상당의 벌금을 내야하며, 견인이 되면 30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야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주차카드는 ‘블루 배지’(Blue Badge)라고 하는데요. 뒷면에는 사진과 이름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차량번호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장애인 주차카드를 차 한 대에만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장애인이 어떤 차를 타든지 간에 이 카드만 있으면 자유롭게 장애인 주차구역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게다가 장애인 주차카드를 유럽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까 참으로 장애인의 편익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장애연금 제도가 발달돼 있다고 들었어요.

몇 달 전 학교 부모회 주최로 리프트 장착 차량 박람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데요. ‘차량구입 및 정부지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박람회 운영 팀에 의하면, 우선적으로 장애 생활 수당 (disability living allowance) 수혜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영국에서 28주 이상 거주하면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고 합니다.

장애수당(DLA)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인해 개인 신변처리 또는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을 위한 생활 보조금입니다. 개인의 재산상태, 직업유무에 관계없이 장애 정도에 따라 최고 등급(주당 약 12만원), 중간급(주당 약 8만원), 최하 등급(주당 약 3만2천원)으로 나눠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애인을 돌보는 사람을 위한 보호자 수당도 있는데요. 이것은 16세 이상으로 일주일 35시간 이상 장애인을 돌볼 경우 받는 수당입니다. 단, 장애수당 수혜자에 한한다는 제한이 붙지요. 주당 수입이 약 17만원 이하인 사람에 한해 재산 유무에 관계없이 주당 약 9만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 가족의 경우 최상 등급 장애아동이니까, 보호자 수당까지 다 받게 되면 주당 약 20만원 정도를 받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최고 등급 장애인에 한해서, 특수차량 지원 시스템을 이용하여 장애 수당 대신에 리프트 장착 신규 차량을 매 3년 단위로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해요. 우리 집에서도 수당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몇 십 장 분량이 되는 신청서를 제출했었는데요. 언제쯤 연락이 올까 거의 매일 우편함을 확인했었지요. 그런데 한 달쯤 지난 후에 회답을 받았는데, 결과는 우리 가족은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95년에 개정된 법에 의해 영국 영주권이 없는 사람은 각종 복지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것인데요. 그동안 주급으로 주는 수당을 받을까, 아니면 리프트가 장착된 미니밴을 살까 가족들이 한창 꿈에 부풀었었는데 실망이 컸었습니다. 어쨌든 영국의 장애연금 제도가 부러울 뿐입니다.

-영국에서 준현이와 비슷한 장애유형을 가진 친구들은 성장하면 어떻게 살게 되나요?

우리나라의 실정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편이지만 이 곳도 세컨더리 스쿨(중학교, 고등학교과정)을 졸업하면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교육은 더 이상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곳은 자선 시설 및 기관이 잘 발달되어 있어 대부분 이 곳에서 필요한 교육, 치료, 취미활동 등을 영위하면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장애 정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장애인의 취업률도 상당히 높은 편이며 일정 비율의 장애인 고용을 법률화해서 특별히 장애로 인한 차별은 없다고 합니다.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9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