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콘서트를 앞둔 ‘잔향’. 천주영 씨와 임일주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에이블뉴스

24살 비장애인 천주영 씨와 휠체어를 탄 47살 임일주 씨가 ‘잔향(殘響)’으로 하나 됐다.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는 소리로 모두를 위로하고 싶다는 이들은 나이, 성별,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를 넘어 가장 친한 친구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가리워진 길’ 등 명곡을 커버한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하고, 비오는 날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킹을 즐기는 음악활동 외에도 문화시설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부족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전하는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두 사람을 만났다.

“음악을 시작하려는 저에게 일주오빠는 연예인 같았어요. 엄청난 고수 느낌? 오빠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아, 정말 이 분과 노래 부르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주영)”

2016년 백석예술대학교 보컬 전공으로 만난 두 사람은 늦깍이 대학생 일주 씨의 학교 생활을 도우며 가까워졌다.

“입학하고 첫 수업이었어요. 강의실이 4층에 있었고 지하철을 타는 내내 그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휠체어를 탄 내가 어떻게 수업에 들어가나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어요.(일주)”

‘안녕하세요 학우님! 16학번 천주영이라고 합니다. 강의실로 올라오시는데 불편할 것 같아서 아이들과 함께 사랑동(강의동)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착하시면 연락주세요.’

주영 씨의 배려 깊은 첫 문자에 일주 씨의 걱정도 싹 가셨다. “사랑동 앞으로 갔더니 주영이가 손을 흔들어 주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어요.” 이후 휠체어 탄 일주 씨를 고려해 4층이 아닌, 1층 강의실로 변경됐다.

휠체어를 탄 임일주 씨와 대학동기 천주영 씨는 장애, 나이, 성별을 뛰어넘는 가장 친한 친구다.ⓒ에이블뉴스

이제 음악을 시작하려는 새내기 주영 씨에게 이미 장애예술인으로 여러 무대에 서고 있던 일주 씨는 연예인과도 같은 존재였단다. 교수님들 사이에서 ‘노래를 진짜 잘한다, 노래 들어보면 깜짝 놀랄 것’이라는 소문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일주 씨의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 주영 씨는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고.

“그때 오빠가 했던 곳이 이적의 ‘다행이다’였어요. 듣는 순간, ‘진짜 삶을 노래하고 계시는구나’ 라는 기분이 들으면서 눈물이 났어요. 제가 그때 합주도, 학교 가는 것도 즐겁지 않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잃어가고 있을 때였는데요. 노래를 듣는 순간, 이런 분이랑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이 학교에 들어오게 된 것 모두 감사했어요. 제가 음악을 시작하고자 했던 초심을 오빠가 잡아준 셈이죠.(주영)”

그 뒤로 학교식당에서 몇 번 마주치고, 수업을 같이 들으며 친해질 수 있었다. 얼마후 또 다른 동기와 함께 3인조 밴드인 ‘걸이’라는 팀으로 활동하며 처음 하모니를 맞춘 그들은, 졸업 후 각자의 진로와 시간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다가, 올해 2월 여운 있는 소리란 의미의 ‘잔향’이란 팀으로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오는 11월 1일에는 첫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유튜브 채널 ‘Reverberation잔향’을 통해 커버곡 영상, 공연장 접근권, 버스킹 공연 실황 등 총 12편의 에피소드를 만나볼 수 있다.ⓒ유튜브 캡쳐

현재 유튜브 채널 ‘Reverberation잔향’을 통해 커버곡 영상, 공연장 접근권, 버스킹 공연 실황 등 총 12편의 에피소드를 만나볼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허물 수 있는 것이 저는 문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주영이와 저도 노래라는 예술을 통해 가까워졌고요. 아직 우리나라 문화시설의 장애인 접근성은 뒤떨어지는 곳이 많아요. 영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일주)”

실제로 ‘잔향’이 활동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하모니를 맞추는 것이 아닌, 물리적 접근에 대한 문제였다. 연습을 위해 합주실을 구하려고 50군데 넘는 곳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야 겨우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곳을 잡을 수 있었다고.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서울 합주실을 검색해서 50군데가 넘는 곳에 모두 전화를 했어요. 대부분 지하에 있고, 시설도 열악하니까 잡을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합정동에 겨우 한 곳을 발견해서 연습할 수 있었어요.(일주)”

11월 1일 첫 콘서트에 앞서, 공연장 구하기도 힘들었다. 휠체어 접근성이 잘 갖춰진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홀에 연극공연으로 대관이 어려워서, 여러 곳을 물색해 홍대 플렉스라운지로 정했다.

열악하긴 하지만, 장애인화장실도 있고, 스탠딩 좌석이라 휠체어 접근이 편리해서 낙점됐다고. 문제는 무대에 경사로가 없어, 이동식 경사로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차가 약 70cm 정도 되는데, 이 경우 이동식 경사로를 활용하려면 3m 이상이 돼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정도 되는 경사로가 있을지…. 장애인화장실, 부피가 큰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넓은 공간 확보, 이동식 좌석이 정도가 필수거든요. 편의시설이 갖춰진 공연장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일주)”

11월 1일 오후 5시 홍대 플렉스라운지에서 펼쳐지는 잔향의 첫 콘서트 포스터.ⓒ에이블뉴스

11월 1일 오후 5시 홍대 플렉스라운지에서 펼쳐지는 잔향의 첫 콘서트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위로를 전할 예정이다. 커버곡과 함께, 각자의 자작곡 무대도 펼칠 예정이라고.

“함께 부를 자작곡 제목은 가칭 ‘노래가 쓰여지는 순간’이예요. 살면서 어려움, 아픔, 슬픔을 겪지만, 그 힘든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순간을 살아가면서 노래가 되고 멜로디가 되고 예술이 되어서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주제예요. 모두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주영)”

그와 더불어 게스트로 바퀴달린 성악가 이남현, 에필로그의 보컬 박현준, 가수 정예정 등이 참여, 1시간 40분가량을 물들일 예정이다.

“저희는 음악을 통해 우리가 빛나는 것이 아닌, 다른 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을 계속하고 싶어요. 주영이는 제가 학교 다닐 때 가장 큰 추억을 준 친구거든요. 올해는 같이 노래한 것에 큰 의미를 뒀다면, 내년에는 좀 더 저희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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