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주최로 열린 '탈시설운동 15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역할과 과제' 정책토론회에서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금호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센터)가 협소한 당사자주의에 갇혀 스스로의 역할을 국한하고 있어 당초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개척자로서의 역할 실천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이하 한자협)는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9개 시·도 IL센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탈시설운동 15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역할과 과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대구사람IL센터 노금호 소장은 지난 2016년 불거진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사태’ 이후 지금까지 대구사람IL센터가 장애인 당사자들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도운 과정을 설명하며 IL센터에 놓인 과제를 제시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이하 희망원) 인권유린 사태’는 대구시립 사회복지시설인 희망원의 운영진이 거주인에 대한 상습적 체벌, 폭언, 금전 편취, 국가보조금 횡령 등 일련의 반인권적 만행을 저지른 사건을 이른다.

2016년 희망원 내부 종사자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해당 인권침해와 비리 사실을 진정하고 언론의 조명과 인권위의 직권조사가 이뤄지며 세상에 알려졌다.

사태가 알려지자 대구의 IL센터들은 지역 장애인단체들과 손을 잡고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원회(이하 대구희망원대책위)’를 구성해 희망원 운영 시스템 정상화와 산하 거주시설 폐쇄, 거주인들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대구시립희망원 장애인 거주인의 탈시설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대구희망원대책위는 먼저 지역 장애인권단체인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이하 420연대)와 공동대응체를 결성하고 대구시청 앞에서 ‘탈시설 전담부서 설치’와 ‘거주인 탈시설 추진 및 수용시설 폐쇄’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대구시는 2017년 5월 2일 대구희망원대책위와 합의를 도출하고 2018년 희망원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인 시민마을을 폐쇄했으며, 70명 이상 거주인들의 탈시설 이행을 위한 ‘탈시설 장애인 자립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대구IL센터와 다릿돌IL센터를 운영기관으로 선정했다.

거주인들의 자립을 위해 나선 이들 2개 IL센터는 우선 ‘시설보다 나은 생활환경 구축’을 위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확보를 위한 국민연금공단 방문조사 지원, 활동지원서비스 이의신청, 자립지원주택 입주 전 자립생활가정 단기체험과 활동지원사와의 사전 간담회 등 IL센터의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이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정신과 약물복용 및 관리를 지원하고 광역지자체와 연계해 건강주치의 사업을 시행했으며, 지역 보건소와 함께 보건소 방문건강관리사업 등을 실시했다.

또한 지역 경찰청, 지자체, 인권위, 이동지원센터 등과 협력해 장애인 특별교통수단과 지역사회 내 실종 문제에 대해서도 역할을 다했다.

박숙경의 ‘희망원 중증중복발달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 시범사업 성과분석’ 연구에 따르면 시범사업 결과 이들 탈시설 당사자들의 사회통합과 삶의 질, 일상생활에서의 선택성과 자율성 등이 유의미하게 높아졌으며, 도전행동은 낮아지고 적응행동이 향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금호 소장은 “희망원 사태에 대응해 대구IL센터와 다릿돌IL센터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하나는 적극적인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사회운동을 조직하고 주관하는 파수꾼 역할, 또 하나는 장애인거주시설이 폐쇄됨에 따라 동료 장애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권리구제 및 탈시설 지원 기관으로서의 역할이었다”고 술회했다.

노 소장은 “희망원 사태가 불거졌음에도 지역 사회복지법인, 복지관 등 전통적인 복지기관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침묵했다. 이들이 얼마나 편협한 실내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이와 같은 사례로 IL센터는 장애인 탈시설 권리보장을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역할해야 함을 알 수 있다”고 강변했다.

“2018년 이후 커뮤니티케어와 장애인 탈시설 등의 논의가 혼합돼 진행됨에 따라 ‘시설을 통한 탈시설’이라는 매우 우려스러운 논의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한 노 소장은 “이는 IL센터가 중심에서 밀려나고 ‘또 다른 시설화’로 귀결될 수 있다. IL센터는 이전처럼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개척자적인 역할을 맡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주최로 '탈시설운동 15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역할과 과제'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에이블뉴스

노 소장은 “지금의 IL센터는 어느새 협소한 당사자주의에 갇혀 스스로의 역할을 국한하고 있다”며 “당사자주의가 먼저가 아니다. 하루빨리 당사자들을 시설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 먼저”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IL센터가 시설에 대항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법적 근거와 지위가 보장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지금까지 시설의 인권유린과 비리에 대한 투쟁의 중심이었던 IL센터는 이제 탈시설 이후 이어질 흐름에 있어서도 거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IL센터의 과제에 대해 노 소장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의 명확한 이행을 위한 민간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투쟁’과 ‘탈시설에 복무할 수 있는 IL센터의 재구성’을 꼽았다.

“지금의 IL센터는 몇 대 사업, 몇 대 프로그램 식의 사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때문에 사회복지에서 IL센터의 역할은 ‘준복지관’ 수준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은 노 소장은 “이는 IL센터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호명하지 않고 보조금으로 순치시키려 하는 정부의 전략 때문이다. 그에 호응해 보조금을 먼저 획득하기 위해 달려들고 획득한 이후에는 그것에 매몰되는 IL센터계 문화가 불러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노 소장은 “사업을 위한 운동이 아닌, 운동을 위한 사업을 해야 한다. 운동을 위한 사업이란 그 시대의 조건에 따라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IL센터가 한다는 것”이라며 발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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