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에이블뉴스

장애와 여성이 묶인 소수자의 ‘장애여성’.

남성 중심적인 장애 운동을 하며 오랜시간 차가운 시선들을 느껴야만 했던 그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남성 중심의 장애운동계에서 물들여갈 뿐, 장애여성만의 문화와 리더를 창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장애여성들만의 문화창출, 앞으로 그녀들이 해나가야 할 과제다.

5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 여성활동가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주제로 20여년간 장애운동을 해오면서 느꼈던 장애여성의 차별적 시선과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를 가졌다.

20여년전 우연히 한 장애인 모임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장애인 운동을 시작한 박김 사무국장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장애인 운동이 있는 곳은 대부분 비장애여성 활동가가 있었고, 장애여성은 항상 받는 사람이었다”고 토로했다.

‘왜 장애여성이 없을까?’라는 의문으로 참석했던 한 행사장에서 그녀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된다. 무대에 앉아있는 새까만 양복을 입고 있던 장애 남성들 중 눈에 띄게 밝은 옷을 입고 있던 딱 한명의 여성을 발견한 것.

‘대체 저 여성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던 차, 그녀의 존재가 밝혀졌다.시각장애인의 남성 대표를 마이크가 있는 단상으로 인도하는 도우미 역할이었던 것. 무대에 앉아있던 장애인 운동을 대표하는 사람은 모두 새까만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인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돌아오는 길이 참 묘했어요. 여성으로서 장애인계 대표로 앉아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여성은 그저 시각장애인 남성을 인도하고, 청각장애인의 통역을 도와주는 역할일 뿐이었어요. 여전히 지금도 기존의 메이저 단체들의 행사에 가보면 여성 대표님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아요. 거의 다 남성들이 대표역할을 하고 있고, 여성 대표가 없다는 것에 대해 문제를 못 느끼는 장애단체들이 많죠.”

“왜 여성대표들이 없는 거야!”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박김 국장은 당시 2000년 장애여성공감 대표로 활동하며 본격적 장애여성운동을 해나가게 된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왜 장애여성 운동을 해야되냐’, ‘모임이냐?’라는 비아냥 소리까지 들어야만 했다.

심지어 하나의 장애인운동을 분열화시킨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특히 2000년도에 들어서며 장애운동계에서 이동권연대가 꾸려지며, 공동대표가 된 그녀는 장애여성으로서의 차별적인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장애여성공감의 대표로서 이동권연대 공동대표가 됐어요. 비난이 많았죠. 남성 중심의 운동이잖아요. 특히나 이동권연대 투쟁은요. 첫 번째 회의를 갔더니 저 혼자 여자였어요. 사무실을 가기위해 거의 1시간동안 이동했지만, 다른 분들은 대부분 자가용 운전이었고, 남성이여서 대중교통 시간대를 맞추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항상 뒷풀이로 술을 마시곤 했죠. 저는 어서 빨리 집에 가야되기 때문에 뒷풀이에 참석하지 못했고, 담배 태우는 쉬는시간엔 덩그라니 앉아있어야만 했죠.”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 여성활동가의 위치와 역할’ 특강을 듣고 있는 장애여성공감 회원들.ⓒ에이블뉴스

문제는 남성들이 뒷풀이를 통해 안건을 소통해서 돌아왔고, 긴밀한 인간적인 관계로 맺어졌다. 회의만을 통해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장애여성인 그녀는 ‘까칠하다’는 인식만 생겨났을 뿐이었다. 그저 장애여성공감의 대표이기 때문에 공감이 되지 않아도 들어주는척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회의에서 소통하려고 하는 저에게 까칠하다는 시선을 받아야만했어요. 이동권에 문제가 있으니 회의시간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더니, 장애여성의 무서움과 안전의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장애여성공감은 까칠하고 무서운 단체니까 바꿔준거에 지나지 않았죠. 공감을 전혀 하지 않고 그저 비판, 지적의 두려움으로 제 말을 들어주는 거였어요.”

그녀를 바라보던 차가운 시선은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이동권 투쟁 당시 버스타기행사를 진행하는 그녀에게 경찰이 “여기 대표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가 대표다”라고 대답했지만, 경찰은 그녀를 무시하고 거듭해서 “대표가 누구냐”고 되물었을 뿐. 장애여성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정통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녀는 장애인운동을 하며, 장애여성으로서의 ‘몸의 차이’를 절박하게 느꼈다. 지난 2006년 활동보조서비스 투쟁을 하며, 한강대교를 6시간동안 기었던 당시를 잊지 못한다.

“저는 마이크 앞에서 선두하면서 가는데 화장실을 너무 가고 싶었어요. 당연히 갈수가 없었죠, 장애남성들은 순식간에 뒤 돌아서 해결하고 오는데 말이예요. 그럴 때 참 장애남성이 부러워요. 지금도 장애여성 후배가 투쟁 시 화장실 얘기를 하면 어떡하지?라고 항상 고민하는 순간이 와요. 투쟁현장에서 몸의 다름과 차이 참 절실히 느끼게 되는거 같아요.”

장애인 운동에 있어 정보력에서도 장애여성은 밀릴 수 밖에 없다.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운동에 있어 리더가 되려면 정보력이 필요하지만 장애여성은 힘들다. 거의 정치적 흐름, 경험치에 따라 네트워크로 이뤄진다”며 “장애여성 입장에서는 정보력이 없고, 말의 힘을 가지는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박김 사무국장은 장애여성운동을 통해 가장 아쉬운 점으로 장애여성들의 멘토가 없다는 것을 꼽았다. 때문에 막 시작한 신입활동가들에게 힘을 주는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고 미안할 따름이다.

“리더로써 훈련되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 문제예요. 말로만 네트워크 네크워크 하지, 네트워크도 없구요. 장애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운동판에 있지만 가장 아쉬운 부분은 장애여성 문화 창출을 하지 못한 거예요. 장애여성다운 활동가를 만들었는가. 그렇지 못하거든요. 계속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장애 여성활동가의 위치와 역할’ 특강을 듣고 있는 장애여성공감 회원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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