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김용해 씨가 창밖에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고 있다.ⓒ에이블뉴스

‘따르릉’. 지난 6월 5일,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김용해 씨(지체, 만 65세)는 한 통의 전화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노인장기요양 3등급 나왔습니다. 요양보호사가 한 달 26번 자택을 방문해 하루 3시간씩 도움 드릴 예정입니다.”

그의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난 이렇게 건강한데, 이제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구나’. 독거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용해 씨의 만 65세의 생일은 그렇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관련된 정부기관 모두 찾아가 호소했고, 지상파 방송국에도 제보했지만, 그의 삶은 하나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김용해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김용해 씨는 관련된 정부기관 모두 찾아가 호소했고, 지상파 방송국에도 제보했지만, 그의 삶은 한 발자국도 변화가 없었다. 용해 씨가 작성한 호소글.ⓒ에이블뉴스

그는 1987년 9월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중증 지체장애인으로, 가족도 없이 홀로 임대아파트에서 살아왔습니다. 2007년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가 생기면서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발돋움했죠.

정부, 지자체 추가급여를 포함해 한 달 621시간, 하루 약 20시간의 활동지원 시간은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 신변 처리, 목욕 등, 휠체어에 앉기 등 도움으로 서울시립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 운영위원, 밀알선교회 단원, 상도성결교회 집사까지 외부활동을 활발히 하게 됐습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외출했고, 지역 장애인과 교류하며 독거의 외로움을 떨쳐온 것이죠.

그런데 지난 5월. 1954년 6월 13일 김용해 씨의 생일을 한 달 여 앞두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에서 나란히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만 65세가 되시니, 노인장기요양 심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년 장애인 활동지원 사업안내’ 속 만 65세 이상은 장기요양 등급 외 판정을 받아야 활동지원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보건복지부

현재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수급자격은 만 6세 이상 만 65세 미만까지로, 활동지원을 수급받던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는 해에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수급심사를 받도록 하게 돼 있습니다. 심사 후 장기요양 등급이 나오면 장애인의 필요도와 무관하게 활동지원은 중단되고, 장기요양만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게 될 경우에만 활동지원 신규 신청자로 다시 종합조사를 받고, 수급자격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최근 5년간 65세 도달 수급자 및 장기요양급여 전환자 현황.ⓒ보건복지부

2014년부터 최근 5년간 만 65세 도달 수급자가 장기요양급여로 전환된 인원은 연간 400여명 정도로, 지난해의 경우 1025명 중 363명이 노인장기요양으로 전환됐습니다. 노인장기요양은 가장 높은 1등급을 받아도 하루 최대 4시간의 서비스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또한 ‘등급 외 판정’이 나오길 고대했죠. 활동지원은 그에게 인간답게 살게 해준 한 줄기의 빛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명의 조사원이 방문조사를 나왔습니다. 그의 상태를 보며, ‘장기요양 인정조사표’에 따라 신체기능, 인지기능, 행동변화, 간호처치 등 52개 항목에 대해 체크해 나갑니다. “신체기능은 활동지원 조사표와 별반 다르지 않고, 인지기능 노인성 치매 관련만 좀 달랐어요.”

장기요양 인정조사표.ⓒ국민건강보험공단

의사소견서까지 제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6월 5일께, 장기요양 3등급으로 결정 났습니다. 3등급의 경우 요양보호사가 한 달 26번 자택을 방문해 하루 3시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하루 20시간에서 3시간으로 대폭 시간이 삭감된 결과죠.

장기요양 인정점수 구간별 장기요양 인정등급.ⓒ국민건강보험공단

현재 노인장기요양 등급판정 기준에 따르면, 3등급의 경우 ‘심신의 기능상태 장애로 일상생활에서 부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등급 외’가 나와야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그는 답답한 마음에 건보공단에 항의했습니다.

“시간이 가장 문제죠. 하루 20시간에서 3시간 정도로 떨어지면, 내가 어떻게 삽니까. 돌봐줄 가족도 없는데요. 요양보호사님이 오셔서 일으켜 주시고, 와서 식사랑 청소 조금 도와주시면 끝나요. 외부활동은 고사하고 하루 1끼만 먹으면서 집 안에 갇혀서 생명을 연장하는 처참한 현실입니다.”

이의제기 후 2번째 방문조사에서도 3등급, 3번째 방문조사에도 3등급, 4번째에도 마찬가지. 지난 20일 5번째 방문조사를 받은 그는 판정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인정조사에서 모두 다 잘해야 ‘등급 외’ 판정이 나와요. 인지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하체를 못 쓰니까 거기서 등급이 나옵니다. 무슨 법이 이렇습니까? 공단에서도 문제는 알지만, 원칙대로 밖에 못 한다고 합니다. 잘못됐어요. 아주.”

김용해 씨가 거주하는 임대아파트 모습.ⓒ에이블뉴스

‘이 법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제공하는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1조 내용입니다.

그는 노인장기요양의 목적부터 자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만 65세 이전인 지난해나, 올해나 변화된 것이 없으며, 자신이 가진 지체장애는 고령으로 인한 질병도, 노인성 질병도 아닌데도 말이죠. 심지어 30여년전 비장애인 시절에 비교해 나빠진 것은 ‘변비’ 하나일 뿐이라고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돌봐줄 가족이 없어서 요양시설로 가게 된다면 저는 우울증에 걸려요. 활동지원을 통해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었는데, 왜 저를 시설에 가두려고 합니까.”

장애인 활동지원 연령 제한 폐지를 촉구하는 장애인 단체 모습.ⓒ에이블뉴스DB

사실 장애인 활동지원의 연령제한 문제는 이미 장애계에서 문제 제기된 바 있으며, 에이블뉴스 또한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2016년 10월 ‘만 65세가 되면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 중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고, 관련해서 3개의 법안도 국회에 제출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서비스 대상, 목적 등이 다르고 재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불수용’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선택권을 부여할 경우 활동지원으로 편중될 가능성이 커 추가 재정 문제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권위가 최근 다시 국회의장에게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표명을 했지만, 이번 20대 국회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서울 충정로 국민연금공단 사옥 1층 로비를 점거, 만 65세 연령제한 폐지를 위한 릴레이 단식농성에 참여한 김용해 씨.ⓒ에이블뉴스

“하루 4시간 요양서비스냐, 시설 입소냐. 만65세 연령제한 및 장기요양 전환은 현대판 ‘고려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14일부터 서울 충정로 국민연금공단 사옥 1층 로비를 점거, 만 65세 연령제한 폐지를 위한 릴레이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답답했던 그는 지난 17일과 18일 농성장을 찾아 농성에 동참했으며, 앞으로도 제도 개선이 이뤄질 때까지 관심 갖고 지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전에는 시위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는데, 내 입장이 돼보니까 절실히 와닿더라고요. 농성을 통해 많은 장애인 분들과 소통하며 공감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수시로 농성장을 방문해보려고요.”

김용해 씨는 하루빨리 활동지원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에이블뉴스

복지부는 지난달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며, ‘모든 장애인의 장애 정도와 욕구 및 환경을 고려해 맞춤형 활동지원을 단계적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만 65세가 됐다는 이유로 서비스 시간을 무 자르듯 처참히 잘라버린 채 그들을 방치하는 것이 정부가 말한 ‘수요자 중심의 지원체계’일까요?

국회예산정책처의 ‘만 65세 연령제한 폐지에 따른 예산 추계’ 내용을 보면, 추가재정 소요는 5년간 326억3700만원, 연평균 65억2700만원 정도입니다. 예산이 부담된다면, 단계적이나마 가장 취약한 독거 수급자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창밖으로 내리는 세찬 소나기를 바라보며 큰 한숨을 내쉰 그는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듯이 누가 죽어야 그때서야 뒷북치듯 제도를 개선하더군요. 1년전이라도 미리 전화해서 예고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그것도 법에 걸린다고 합니다. 준비할 새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는거죠. 나는 그렇다고 쳐도, 다른 사람, 앞으로 만 65세가 될 사람들을 위해 빨리 법을 개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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