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의 영화읽기’에서 세 번째로 인사드립니다. 저는 조그만 임대아파트 안에 있는 춘의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우연히 2007년 영화 칼럼니스트 과정에 참여하였으며 지금은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 뿐만 아니라 '유토피아의 영화읽기'라는 팀으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을 읽는 분들께서 다소 혼란스러운 점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동안 다소 부족하나마 저의 생각들을 글로 써보려고 합니다. 읽는 분들께서 열심히 답 글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으며 이러한 소통을 통해서 사회복지사로서 좀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더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에는 뒤에 산이 있었다. 그곳에 자주 놀러갔었는데 어느 곳은 친구들이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거기에는 무서운 애들이 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돌멩이를 던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곳엔 근처에도 가지 않으면서 ‘굉장히 무서운 애들이 산에서 함께 사는구나’라고 믿으며 자라왔다. 나중에서야 나는 그곳이 장애아동 시설임을 알게 되었다. 그 무서운 애들이란 결국 장애아동들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조용한 세상 포스터. ⓒLJ필름

장애인은 영화 속에서 어떤 인물일까? 내가 어릴 적 생각했던 것처럼 무서운 애들일까? 그들을 잘 알지 못한다면 내가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다소 엉뚱한 누군가로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스릴러 영화 장르는 이렇게 보통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 고정관념을 활용, 이들의 특성과 현실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해서 자주 등장시킨다. 이러한 영화들로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도니 다코', '유주얼 서스펙트', '스코어', '천사의 침묵', '케이 팩스' 등을 들 수 있다. 아직은 우리가 많은 장애의 유형과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영화 속에 등장시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세상은 위탁가정에 맡겨진 아이들이 계속해서 실종되는 사건의 수사과정을 통해 범인을 찾으면서 관객의 뒤통수를 노리는 스릴러 장르 영화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떠한 장애인도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기인열전에 출연한 적이 있는 주인공은 잠시 동안 위탁부모로서 보호하고 있는 아동을 누군가 죽이려는 것을 알고 그 아동을 구하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건이 있을 때마다 주인공과 자주 마주친 형사는 그가 범인이라고 믿게 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범인의 정체는 미궁 속에 빠져있고 몇 번의 반전 끝에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아이를 사이에 둔 일대 격전이 벌어지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영화 내내 신비한 인물로 그려지는 주인공. ⓒLJ필름

스릴러 영화장르의 공식대로 마지막 몇 초를 남기고 주인공과 관련한 중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 비밀을 알고 나면 그동안 보여주었던 몇 몇 장면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니 꼭 그러리라 생각했던 장면들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면서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영화는 내내 어떤 암시를 줘왔었다. 그 암시 중의 어떤 것은 관객에게 힌트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것은 관객들의 판단을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용한 세상이라는 영화제목, 주인공의 직업, 영화의 시작을 장식했던 기인열전 장면, 먼 데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알아듣는 장면, 초능력과 관련된 책을 집는 형사의 모습.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뒤늦게야 내가 놓친 표적들을 아쉬워했다. 감독은 '따라 올 테면 따라와 봐'라며 자신 있게 힌트들을 흩뿌려놓았는데 나는 그 중 몇 개를 놓침으로써 감독과의 두뇌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다. 그 기분 좋은 패배가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기인열전에 출연했었다. ⓒLJ필름

이렇게 이 영화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장애에 대한 우리들의 무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반전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만약에 영화 속 장애유형과 특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더라면,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이 영화에서 장애는 그런 식으로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장애가 스릴러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지 않고,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부터 로맨틱 코미디, 액션 등의 흔한 장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어떤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특별하거나 신비로운 존재로서가 아니라 친근한 이웃의 모습으로서 말이다.

사진을 찍을 때면 그의 얼굴에서 어둠은 잠시 사라진다. ⓒLJ필름

사회복지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내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잠깐 등장하는 것이긴 하지만 주인공은 위탁부모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위탁부모는 위탁아동의 보호자보다는 가해자로 자주 그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설정이 현실의 일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의없는 것들', '베를?리포트', '텔 미 썸딩' 등의 영화에서는 위탁가정이나 입양가정의 아버지들이 아동학대의 주범으로 등장했다. 솔직히 이런 설정은 그만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 또한 그런 설정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입양부모와 같은 선한 위탁가정의 모습이 등장해서 좋았다.

현재 국내 입양이 잘 안 되는 현실에서 주인공의 입양부모처럼 아들의 비밀을 숨기면서 주인공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반드시 칭찬해주어야 할 부분이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서 주인공처럼 국내입양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나중에는 의로운 행동까지 하게 된다는 희망을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 입양현실에서 본다면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내 냉정하기만 하던 주인공의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수 있었던 결말. ⓒLJ필름

[리플합시다]장애인들은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에게 이것을 바란다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