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실태조사결과 중 발달장애인의 일상생활 도움 및 의사소통 정도 결과를 나타낸 도표. ⓒ보건복지부

발달장애인법 제6조 1항에선 발달장애인의 실태 파악과 복지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3년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계획이 2020년까지만 해도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국가 차원에서 발달장애인 실태조사를 발달장애인 또는 보호자 1,300명에 대한 방문면접 조사를 작년 11월~12월에 실시했단다. 그리고 실시해 도출된 결과가 지난 9월 초 나왔단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필자도 실태조사 질문지, 결과를 읽어봤다.

질문지를 읽어보면서, 의료, 교육, 고용 등 전 생활영역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실태를 반영하려 노력은 한 것 같다. 건강과 의료 영역에서 운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답변의 내용 보기들을 제시한 점이나, 취업형태를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변내용 보기에서 전문직, 일반사업체, 공공기관 등까지 열어둔 점이 그렇다.

그런데, 아쉬움도 여기저기 발견됐다. 일단 교육 부분에서 18세 이상의 경우 오로지 평생교육과 관련된 질문만 넣었다. 평생교육 말고도 대학교, 대학원 등의 고등교육에서 필요한 지원, 불편사항 등을 질문,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고등교육 접근성 증진 및 괜찮은 일자리를 위한 실마리도 찾을 거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또한, 평생교육 내용으로 원하는 것에 관한 질문의 답변내용 보기가 건강·심리교육, 일상생활 훈련 교육, 직업훈련 교육 등이라 주로 저인지에 돌봄 요구가 심각한 장애인 중심이고, 고인지 지적·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 관련 내용이 미흡하다. 취미·여가도 저인지에 돌봄 요구 심각한 장애인 중심이다. 그래서 평생교육과 취미·여가 교육은 자기결정권, 선택권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마저 든다.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질문지 중 평생교육 관련 질문내용의 일부. ⓒ보건복지부

건강·의료 분야에선 스트레스 등의 정신건강 관련해 ‘정신과 약 복용 여부 및 그 이유’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 보기가 간질, 수면장애 등 의료적 문제 내용은 충실히 있다. ‘죽고 싶은 적이 있는가?’ 등의 단답형 질문도 있지만, 장애인 당사자의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사회 환경과 요소(예. 실업, 장애인차별 등) 등의 원인을 묻는 질문이 없어, 스트레스 경감을 위한 사회적 대책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눈치가 심한 한국의 고맥락 문화와 장애 혐오 문화로 인해 고인지 자폐성 장애여성의 경우엔 자신의 자폐 특성을 가리는 소위 마스킹(Masking)을 하나, 속에서 스트레스는 상당히 심하다. 이와 관련한 질문도 있어야 했지만,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일상생활 활동 지원을 위한 보조기기 질문에 대한 답변내용 보기도 산소발생기 등의 의료보조기기, 그림․음성 출력기기, 대화용 보드 제작기 등의 의사소통 보조수단 등 주로 저인지에 돌봄 요구가 심각한 지적·자폐성 장애인 중심이다. 고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한 정당한 편의 질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복지서비스와 관련해선, 장애아동 수당, 장애인연금, 장애인 의료비 지원, 장애아가족 양육지원, 발달장애인 휴식지원 등이 있는데, 이것도 주로 저인지에 돌봄 요구가 심각한 지적·자폐성 장애인 중심이다.

결혼과 양육 세션엔 여성장애인에 대한 질문으로 국한됐는데, 남성에게도 양육 책임은 있다. 또한, 지적·자폐성 장애가 있는 남성도 의사소통의 어려움, 장애인에 대한 편견 등으로 결혼에 있어 쉽지 않은 과정과 차별을 겪는다. 하지만 여성장애인으로 국한한 걸 통해 결혼, 양육을 오로지 장애여성의 문제로만 보는 식이니, 성인지 관점 부재하고, 가부장적인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소위 도전행동(없어져야 하는 말)은 전에도 얘기했지만, 장애특성에서 나온 거라 고칠 수 없으며,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소통키 위한 몸부림이자 의사표시다. 자폐성 장애의 경우는 뇌 작동방식이 다른 건데, 그걸 다양성으로 보지 않고, 장애의 의료적 관점으로 그 행동을 고치려고 시도함으로 자폐인 인권침해를 부추기고 있음은 수없이 얘기했다. 그래서 도전행동에 대한 질문 자체가 필자에겐 상당히 모욕적이다.

한편 가족 내 돌봄 세션에서 도전행동으로 인한 가족의 어려움, 돌봄자의 건강상태와 어려움, 스트레스 등에 대한 질문 등 돌봄 요구가 심각한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돌봄자에게 질문하는 건 있었다. 하지만, 소위 도전행동 하거나 돌봄을 받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기분, 정신건강, 스트레스 등과 관련, 당사자에게 질문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권리 주체가 아닌 돌봄 객체로 보는 시각과 관련 있다.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통한 제언에선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해 두텁고 촘촘한 지원을 위한 돌봄서비스의 대폭 강화였다. 돌봄서비스 대부분은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욕구를 반영한 게 아닌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것이다.

결국, 발달장애인 실태조사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돌봄 객체로 보는 관점에서 설계되었기에, 제언도 돌봄서비스 대폭 강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보는 관점의 실태조사 설계라면, 설령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 있다손 치더라도, 돌봄서비스 대폭 강화란 결론은 나오기 어려웠을 거다.

1년 전 서울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는 제공자 중심이었다. 이번에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엔 그런 경향이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랐지만, 역시나 제공자 중심에 치우친 건 바뀌지 않았다. 장애의 의료적 패러다임을 바꾸기는커녕 팽배한 사회니, 당연한 귀결일 테지.

발달장애인 권익보장을 위한 의원모임 다함께가 지난 9월 2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내 발달장애인 지원정책’ 토론회를 개최한 모습(좌측), 중부대학교 김기룡 교수가 ‘국내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에 관해 발제하는 모습(우측). ⓒ이원무

얼마 전 발달장애인 정책 토론회에서도 최중증 발달장애인 등 돌봄 요구가 심각한 장애인 중심으로 논의가 다뤄졌다. 이들에 관해서도 논의해야 하지만 돌봄서비스가 필요하지 않고, 맥락에 따른 정보와 심리적 지원 등이 필요한 고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있다. 당사자를 필두로 이들에 대한 논의까지 함께 해야 한다.

혹자는 돌봄 요구가 심각한 장애인 중심이 다수니 이들 중심의 정책으로 가야 하지 않냐고 할 것이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수를 위해 소수인 고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현실에 관해선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다수 이익을 볼모로 소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그러기에 돌봄 요구가 심각한 저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모든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함은 물론, 모든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권리 주체라는 관점으로 실태조사를 다시 재설계하는 게 정말 필요하다. 1년 전에도 했던 말인데 이 말이 고장 난 라디오 소리처럼 다시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수든 소수든 모두의 삶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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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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