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SWR이라는 독일 남서부 지역공영방송에서 아주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7 Tage… Abtreibungsklinik‘(낙태 클리닉에서의 7일).

더욱 인상적인 건, 클리닉 담당의사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클리닉에서의 일상을 세세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술 장면도 여과 없이 공개한다. 이곳에는 하루 최대 14건, 일 년에 약 3000건의 낙태 수술이 진행된다.

미성년자 임신, 원하지 않는 임신, 그리고 산전진단에서 발견한 태아의 장애를 이유로 임신 중절을 원하는 경우 등 이곳 클리닉을 찾는 여성들의 사례는 참으로 다양하다. 산전진단과 장애 그리고 낙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부분에 대해 나는 생각이 조금 깊어진다.

‘낙태 클리닉에서의 7일’ 다큐멘터리의 메인 화면. ⓒ독일 남서부 지역공영방송 SWR 홈페이지

산전진단은 출생 전 태아의 이상여부를 진단하는 검사이다. 초음파 검사부터 시작하여 산모의 혈액과 양수를 채취하여 태아의 건강상태와 장애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상당수의 태아는 산전진단이라는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다. 그런데 만약 태아가 불완전하다면? 아프다면? 장애가 있다면?

산전진단과 장애, 이 ‘불편한 진실‘은 독일 사회에서도 여전히 터부시되는 테마이지만, 수년 전부터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자신의 경험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독일 영화가 있다. 제목은 ‘24주‘(24 Wochen). 한국에도 상영된 적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스트리드는 둘째를 잉태하고 있다. 임신 24주차에 실시된 산전진단에서 태아의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그녀와 남편은 충격에 빠지지만 며칠간의 고심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이제 두 사람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차갑다. 아니, 겉으로는 미소 지으며 응원하지만 속으로는 장애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부부의 미래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첫째 아이의 베이비시터는 “장애아이는 역겨워“라고 외치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베이비시터를 친언니 같이 따르는 첫째 또한 역겹다는 말을 따라한다.

부부는 얼마 후 치러진 또 다른 산전진단에서 태아가 심각한 심장결함이 있어 출생 직후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식까지 접한다. 그러나 태아의 상태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의사들도 정확히 예견할 수 없는 상황. 의사들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술 진행 과정이다. 아기의 흉곽을 톱으로 자르고 난 뒤 심정지를 시키고 심장을 차갑게 만든 다음……. 부부는 괴로움에 소리친다.

남편은 여전히 아이를 원한다. 그러나 아스트리드는 깊은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영화 ‘24주’ 포스터. ⓒ네이버영화

두 사람은 임신과 장애에 관한 심리상담도 받아보고,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방문하여 아기들의 치료 상황을 관찰하고, 임신후기낙태에 관한 부부상담도 받아본다.

과연 아이의 삶은 가치가 있을까? 아이는 행복할까? 평생 고통만 받는 삶은 아닐까?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아스트리드는 고통 받는다. 그때, 그녀의 엄마가 “요즘 세상에는 그런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 버린다.

치열한 고민과 갈등 끝에 그녀는 선택의 주체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의 손에 최종 선택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임신 7개월 차에 임신중절을 선택한다.

직업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그녀는 둘째가 자연유산 되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무대 위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웃고 떠들 수 없을 거라며, 자신의 선택을 공개석상에 당당히 공개한다.

“저는 장애아이를 낙태 했어요”.(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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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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