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난치의 상상력'. ⓒ동녘

2년 반 전 폐색전증으로 병원 신세를 진 후,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 건강해졌다. 얼마 후 아는 교회 형으로부터 건강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계속 듣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잘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내가 아는 것이 맞는지, 연구원에게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건강 지식은 조금씩 쌓여갔다.

그러던 와중에 세월이 지나 올해 8월 말, ‘난치의 상상력’이라는 책이 나왔다. ‘크론병’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시각을 책으로 써낸 것이다.

건강 강의 시간 때 ‘크론병’을 들은 적이 있다. 크론병이란 자가면역의 일종이고, 자가면역이란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가 암세포가 아닌 정상세포에 사이토카인을 묻혀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가면역의 원인은 스트레스와 장내 미생물의 부족 등으로 알려져 있다. T세포가 장을 공격할 때 이를 크론병이라 한다.

크론병은 면역을 올리면 T세포가 더욱 장세포를 공격할테니 오히려 증상만 악화된다. 따라서 면역억제제로 증상을 완화하거나, 면역체계를 정상화하는 방법을 취하든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한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건강 강의 시간 때 배운 크론병과 장애라는 단어들이 ‘난치의 상상력’이란 책에 나와서 관심이 생겼고, 필자는 그 책을 사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질병과 장애에 대한 나의 무지를 보게 되었고, 그 책을 쓴 필자의 시각을 배움과 아울러 이 사회를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가 느낀 것이 많은데, 그걸 다 말하기에는 지면상 무리가 되어 3가지만 말해보겠다. 그래도 얘기가 조금 길어질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리겠다.

장애는 감동거리, 동정의 대상이 아님을 강하게 역설하는 호주 출신 스텔라 영의 TED강연 장면 중 일부. ⓒYoutube 캡처

■ 장애를 동정하는 사회

올해 1월, 뚜렛증후군에 대해 과장광고를 한 유투버가 사기를 쳤다고 시인한 후 이 증후군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을 포함,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 유투버는 많은 구독자를 모으며 높은 수익을 벌어들였던 상태였다. 저자는 이에 대한 맥락을 짚어내려 한다.

뚜렛증후군을 밝히고 콘텐츠를 제작한 당사자와 오랫동안 자신, 가족의 장애를 드러내며 편견에 맞선 사람들의 채널에서의 구독자 수를 조사해봤더니, 사기광고를 친 유투버의 경우보다 훨씬 적은 수였다고 한다. ‘진짜 장애인’들의 채널엔 구독자도 별로 없는데, 과장 광고한 ‘아임뚜렛’이 한 달 만에 성공을 거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장애를 진실하게 드러내며, 텔레비전에 나온 당사자들의 구독자 수조차 ‘아임뚜렛’의 10분의 1 정도였단다. 장애 등을 드러내는 것과 관련해선 자신의 몸과 움직임이 ‘진짜’인지 입증할 책임은 질병, 장애를 겪거나, ‘다른 몸’을 가진 사람에게 부과된단다. 실제로 저자도 아파서 수업에 결석할 시 의사의 최종 진단 및 병원 도장이 찍힌 크론병 진단서를 제출해야 자신의 고통이 진짜로 된다고 고백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장애인 당사자를 제외한 ‘아임뚜렛’ 구독자들은 자신들이 동정하고, 감동받는 특정 형태의 힘겨운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어가는 모습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는 거다. 실제로 ‘아임뚜렛’ 제작자는 뚜렛 증후군이 없는 사람들은 감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단다.

여기서 저자는 장애와 질병에 대한 상상력 결핍, 그리고 장애인을 동정하는 사회가 ‘아임뚜렛’사기를 만든 배경임을 신랄하게 밝힌다. 그러면서 장애를 무능하다고 과장해야만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여 진실함을 증명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문제시 삼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동에 제약이 있는 등 완전히 몸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장애를 겪는 사람이어야, 활동지원 서비스를 많이 받을 수 있으니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다고 입증해야 하는 참으로 곤란한 상황을 장애인은 맞닥뜨릴 수밖에.

이를 보면서, 필자는 정신적 장애인의 의사능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로, 상법 제732조엔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의 보험 가입을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다. 장애인은 의사능력이 없다는 내용에서 개정된 조항인 것이다.

2012년 5월 9일 대한정신건강재단,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장애인보험차별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 모습. ⓒ에이블뉴스 DB

그런데 이 경우, 활동지원의 경우와는 달리 의사능력이 있음을 정신적 장애인이 입증해야 하고, 이를 보험업자가 인정해야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능력이라는 말이 추상적이기에 보험차별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게다가 의사능력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면, 이 사회엔 장애인의 의사능력이 없다는 편견이 심함을 오히려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배경이 있기에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조력의사결정제도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또한 장애인은 무능력한 동정의 대상이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장애는 다양성이요, 장애인은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이 확산‧확립된다면 의사능력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활동지원 시 무능력을 입증하거나, 의사능력이 있음을 증명할 필요 없이 장애인의 욕구에 따라 권익을 보장하도록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사라지는 게 하루라도 빨리 되었으면 좋겠고, 정말로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다.

■ 누구에게나 휠체어가 필요한 순간은 있다.

저자는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동 시 체력을 소진해 원하는 장소에 도착 후 지친다면 사회적 활동은 분명히 제약됨을 지적하며, 자가면역질환을 겪는 자신도 학교에 도착했으나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전동휠체어가 자신에게는 필수적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보다 증상이 심한 만성질환을 겪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일 것이라며, 휠체어가 많은 이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선사할 것임을 저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이걸 두고 사람들은 장애인 아닌데 장애인 행세를 왜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휠체어가 필요한 몸 상태는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며, 피로와 통증으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만성질환자에게 휠체어는 질병과 함께 삶을 영위키 위해 요청할 수 있는 정당한 편의라고 말한다. 아울러 이동권은 쾌적함, 편안함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까지 한다.

휠체어. ⓒPixabay

이걸 읽으면서 2년 9개월 전에 폐색전증을 겪었던 시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 시기에 숨은 평소보다 가빴고, 그냥 있다간 저세상으로 갈듯한 위기감이 내 마음에 있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살기 위해 택시를 잡아타고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나머지, 응급실에 있던 수동휠체어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앉았더니 간호사가 나를 끌고 응급실 병상으로 안내했다. 나는 병상에 누웠고 진찰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 입원해 8박 9일 동안 폐색전증 치료를 받았다.

당시 휠체어에 탄 나를 잘 모른다면,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꾀병을 부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도 고통스럽고 숨이 가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경험이 생각나서인지 휠체어는 장애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휠체어가 필요한 몸 상태를 겪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정당한 편의라는 저자 주장이 상당히 공감이 갔다.

이 대목을 통해 질병‧장애 이전에 사람의 처지와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가 진정 인권적인 사회라는 생각마저 새삼스레 들게 된다. 질병‧장애보다 사람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길 필자도 바라 마지않는다.

'장애인 고용정책 사망'이라며 애통해하며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연대가 차린 고 김재순 분향소의 모습. ⓒ에이블뉴스 DB

■ 질병은 정치적이다

저자는 작년 8월 서울대학교에서 한 청소 노동자의 사망을 언급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이에 연대한 학생, 단체는 많았지만 제대로 개선된 사례는 많지 않았단다. 최저시급에 맞게 임금을 올리고, 부당해고자를 복직시켜 달라는 등의 요구사항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단다.

이에 대해 경찰은 사인을 ‘병사’라 밝혔단다.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심장질환이 문제였다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크론병을 겪음에도, 가족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등의 사례를 들며, 과로와 질병을 권장하는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또한, 2020년 3월, 쿠팡맨이 사망했을 때도, 회사에서는 신입이라 노동조건이 사망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사인으로 밝혀진 심장질환의 원인이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도 포함되었다는 거다. 그러면서 질병이 산재일 수 있고, 질병을 삶이 아닌 죽음의 조건으로 만드는 자는 누구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강력히 말한다.

그러면서 질병은 정치적이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은 국가가 33년 전 박종철 열사의 사인을 병사로 위장하는 등,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의 은폐에도 이용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질병은 정치적이라는 저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부분에서는 4년 전 촛불시위 때 숨을 거두었던 고 백남기 농민이 떠올랐다. 시위하면서 차벽을 뚫으려고 집회 참가자들과 같이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려 했을 때 경찰이 쏜 물대포는 그를 향했고, 그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후 뇌출혈로 응급실로 실려가 서울대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1년 가까이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4년 전에 사망했다. 이를 두고, 병원의 최초 사망진단서에는 병사로 사망 원인이 기재되었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 그의 사인은 외인사로 변경되었다.

만약 최초 사망진단서에 외인사라고 했다면 국가는 권력 유지를 위해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4년 전 당시 국가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을 감추려고 병원을 압박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래서 질병은 정치적임을 기억하라는 저자의 말이 이해가 간다. 질병을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질병을 갖게 되었고 그 질병이 어떤 식으로 악화됐는지에 대해 의료적 조치, 사회서비스, 사회 성격‧모습 등을 보는 등 질병과 관련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면까지 깊숙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 5월 말, 고등학생 대상으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구직업능력개발원이 개발원에서 장애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 모습. ⓒ대구직업능력개발원

이외에도 체험이라는 것이 일시적이라, 장애체험을 통해 당사자의 고통을 모두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코로나 방역이 비장애 중심이기에 질병과 죽음은 장애인 등에게 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얘기한 것도 공감이 많이 간 부분이었다.

또한 ‘어느 정도 장애인이세요?’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장애를 의료적 기준에서만 판단하는 활동지원제도의 모순점을 폭로하며, 장애인의 욕구와 일상의 삶을 존중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진심 어린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처럼, 저자는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키자는 건강 중심주의보다는 저자가 겪은 질병‧아픔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공유하며 함께 세상을 살아가자는 의도를 보였다. 같이 아픔을 공유하는 연대에 필자는 같이하고픈 마음이 든다.

그리고 필자가 바로 전에 나눈 장애를 동정하는 사회 등의 3가지 사항에서 보듯, 질병‧장애에 관련된 정치‧사회‧문화적 이면을 생각해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질병‧장애를 둘러싼 현재 사회의 모습을 더 깊이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게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필자의 결론이다.

그렇게 할 때, 장애인, 만성질환자, 성 소수자 등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엔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어울려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될 테니까.

책의 내용을 다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질병‧장애에 대해 사색하게 만드는 ‘난치의 상상력’ 같은 책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애인, 만성질환자, 성 소수자 등이 사회를 좋아지게 하면서 살아가는 지혜와 힘을 계속 얻어, 이들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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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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