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에 나타난 스쿠터. ⓒ정민권

퇴근길에 쌩쌩 달리던 앞차들이 급정차하면서 도로가 갑자기 빵빵거리며 소란해졌습니다.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저 역시 앞차를 따라 급하게 정차해야 했습니다. 비겁한 변명이긴 하지만 화들짝 놀란 마음에 다른 운전자들과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으로 클랙션을 눌러댔습니다.

왕복 10차선 도로라서 아주 큰 사고나 대형 공사가 아니면 애지 간하면 정차나 속도를 급하게 낮출 리 없는, 뻥을 좀 보태면 말 그대로 이륙 직전의 비행기처럼 속도를 한껏 올리면서 내지르는 도로입니다. 저도 습관처럼 마구 속도를 올리다가 놀란 거였고요. 진짜 가슴이 벌렁거렸죠.

잠시 후 정차됐던 차들이 천천히 옆 차선에 걸쳐 튕기듯 듯 급가속으로 빠져나가며 누군가를 향해 경적을 울려댑니다. 저 역시 살짝 옆 차선으로 비키는 순간 눈이 휘 동그레 졌습니다. 스쿠터 한 대가 있습니다. 예쁘게 차양까지 덮은 스쿠터는 100km를 넘나드는 도로에서 5km의 속도로 위태롭지만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스쿠터 뒤를 따르는 중. ⓒ정민권

천천히 지나치다 신호에 걸렸습니다. 정차해 있는 동안 계속 신경이 쓰여 백미러만 보게 됩니다. 잠시 후 차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더니 다시 도로를 혼란에 빠트립니다. 이번에는 경적만이 아니고 창문 넘어 욕지거리도 함께 들려옵니다.

도로를 최선을 다해 질주하는 스쿠터를 보며 잠시 멘붕에 빠졌습니다. 저렇게 위험한 곡예를 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저도 전동 휠체어를 타는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됩니다. 잦은 턱에 여기저기 파이고 물건을 적재하고 인도 한복판에 가로수를 심어 놓는 인도 문제로 갈 수가 없어 차도로 내려왔으리라는 걸 뻔히 아는 입장이다 보니 인도 사정에 짜증도 나고 어르신의 안전도 걱정되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결국 의전 차량처럼 비상등을 켜고 어르신 뒤를 따랐습니다. 근데 어르신을 따랐을 뿐인데 욕도 함께 따라오더군요. 아주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가시는 곳까지 함께 해드렸으면 좋으련만 얼마 가지 못하고 방향이 달라져 스쿠터는 시야에서 멀어졌지만 어르신의 안녕을 바라봅니다.

좁은 인도 한가운데 심어진 가로수. ⓒ정민권

한데 어르신은 스쿠터가 도로를 질주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아셨을까요? 그리고 우린 어르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왜 차도 한복판으로 스쿠터를 몰고 나와야 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요? 게다가 더디 간다고 빵빵거리고 욕을 퍼부으면서도 어르신의 안전을 염려하긴 했을까요?

사실 스쿠터나 전동휠체어는 도로에서 운전하면 안 됩니다. 차가 아니니까요. 불법입니다. 한데 스쿠터나 전동휠체어는 자꾸 차도로 내려갑니다. 왤까요? 인도는 갖가지 턱과 패인 길이나 물건을 잔뜩 쌓아놓은 적재물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가 다니는 복지관 인근 인도는 그냥 다녀도 좁은데 중간에 가로수를 심어 놔서 스쿠터나 전동휠체어로 다닐 수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인도라 해서 보행에 장애가 없는 사람만 다닐 거라는 상상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마찬가지로 장애를 고려하지 사회가 그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하면 모두가 안전하게 장애를 만들지 않으면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장애는 불편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한 사회환경이나 인식의 문제이니까요. 우리가 몰라서 혹은 알면서 모른 체하는 순간 누군가는 장애를 직면하게 되는 엄청난 일이죠.

살면서 사고나 질병 혹은 질환으로 불편함을 겪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이 듦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불편함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장애입니다. 이런 불편함이 장애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환경적 문제가 큽니다.

스쿠터가 인도로 자연스럽고 우아한 주행이 가능하다면 굳이 차도로 내려갈 필요도 없고 그래서 생기는 위험은 애초에 없는 문제죠. 또 발달장애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지나 안내도가 있다면 좀 더 안심하고 지역사회를 다닐 수 있을 테고요.

장애가 타인의 문제로만 인식될 때 우린 점점 더 불편한 장애를 더 많이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공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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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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