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9호선 3단계 개통 안내문 ⓒ장지용

12월 1일에 서울 지하철 9호선이 연장개통 됩니다. 잠실야구장이 있는 종합운동장역을 넘어서 올림픽공원을 지나 중앙보훈병원역까지 연장 개통됩니다. 서울시에서는 이것이 9호선의 3단계 구간 개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이용자들에게 새 구간이 생겼음을 알려야 하는데, 서울시에서 붙인 벽보를 지하철역에서 보다가 발달장애인으로서는 조금 힘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첨두’라는 단어가 문제였습니다.

발달장애인 중에서 어려운 말을 그나마 알아듣고 자주 쓰는 저라고는 하지만, ‘첨두’라는 단어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옆에 붙은 ‘오전’, ‘오후’와 적혀있는 시간을 보고서야 소위 말하는 ‘러시아워’(Rush Hour), 즉 아침이나 저녁 출퇴근 시간이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알고 지내는 비장애인 누나에게 이 단어를 설명하니까,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을 정도입니다.

만약 제가 이 벽보를 쓰라고 하면 오전 첨두를 ‘출근 시간’으로, 오후 첨두를 ‘퇴근 시간’이라고 적었을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사회상규’로 봐도 아침은 출근 시간이고 저녁은 퇴근 시간이라는 것은 다 아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하루 중 언제인지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출근 시간은 7시부터 9시, 퇴근은 18시부터 20시이니까요.

이제 여기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들도 공공 벽보를 많이 보는데, 공공에서 붙인 벽보조차 발달장애인들이 알아듣기 쉬운 표현을 써야 전달이 잘 되는데도 왜 이렇게 어려운 단어로 벽보를 써 붙였는지 말입니다.

노동조합이나 교회처럼 자기들끼리 보는 벽보라면 별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쓰는 표현을 써도 충분하니까요. 그런데 공공 벽보는 모두가 보는 벽보이고, 발달장애인도 볼 수 있는 벽보입니다. 그런데 왜 어려운 말을 썼죠? 이것이 모두가 알아야 하는 사안인데도?

공공에서 알리는 것은 쉽게 써야 합니다.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 한국어가 서투른 외국인 같은 경우에도 알아야 하는 사실이라면 진짜로 쉽게 써야 합니다. 그것이 지역사회를 바꾸는 중요한 변화일 때에는 더 그렇습니다.

최근 서울시를 시작으로 관청에서 쓰는 단어 중 너무 어렵거나(‘끽연’을 ‘담배를 피우다’ 또는 ‘흡연’으로 고치는 것 같은), 영어나 일본어식 표현을 썼다거나(‘식대’를 ‘밥값’으로 고치는 것 같은), 차별이 숨어있는 말(예를 들어 ‘조선족’이라는 표현을 ‘중국 동포‘로 고쳐 부르는 것 같은), 너무 권위주의적인 말(예를 들어 ’갑-을‘을 필요한 내용에 따라 ’주문자-제공자‘ 같은 표현으로 고쳐 부르는 것 같은) 같은 것을 고치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행정용어 일부는 어려운 표현이 많아 저도 관청에서 오는 문서나 법령을 읽어보면 알아듣기 어려운 표현이 많습니다. 그나마 인천시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막내 이모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관청에서도 쉽게 쓴다고 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렵습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재판에 불려간 적이 없어서 몇몇 유명한 재판 판결문을 읽어보는 것으로 알 수 있지만, 재판 결과, 즉 판결문을 너무 어렵게 쓰는 것도 유명합니다.

솔직히 최근 있었던 가장 유명한 판결 결론이었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2017년 박근혜 탄핵 재판 결론) 라는 말의 ‘주문’이 뭐고 ‘피청구인’, ‘파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너무 어렵습니다.

만약 쉽게 쓴다면, “결론, 재판에 부쳐진 박근혜는 지금 바로 대통령을 그만둬야 한다” 정도로 고쳐 쓸 수 있겠지만요.

공공분야부터 먼저 알리는 글, 즉 벽보를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을 최근 본 서울지하철 9호선 3단계 개통 안내문에 쓰여 있는 ‘첨두’라는 단어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오늘 1명의 발달장애인이 ‘첨두’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이런 하소연을 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공공분야는 작지만 의미 있는 울림을 느껴야 합니다.

공공분야가 먼저 쉬운 표현을 쓴다면, 발달장애인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에서도 공공 안내문을 쓸 때 쉬운 표현을 쓸 수 있도록 법제화를 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공공분야는 법으로 못 박아 두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한국장애인개발원 근무 시절과 더불어민주당 당원 활동을 하면서 느꼈습니다.

오늘 1명의 발달장애인이 지하철 연장 개통 공고문에 적힌 ‘첨두’라는 단어를 보고 이해를 못했지만, 내일 붙여질 공고문에는 쉬운 표현으로 적힌 공고문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문서에 있어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쉬운 공고문과 문서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발달장애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슈 같아 보여도 결과적으로는 발달장애인도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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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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