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 2017년 포항지진…

떠올리기만 해도 두렵고 안타깝고 마음 아픈 재난 사건들이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새삼 생각하는 한 가지. 재난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덜컥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너무 바쁜 나머지,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하. 지. 만.

아직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가족의 재난 대비에 많은 고민을 하며 공을 들이게 마련이다.

비록, 신체적 제한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장애부모라 해도, 이런 마음과 대비가 다를 수 없기에, 나는 육아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재난 대비에 많은 신경을 써 오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매우 결정적인 계기가 있기는 했다.

아이와 일본여행을 위해 티켓을 예약하면서 장애를 가진 부모로서 모멸감을 느껴야했다. ⓒ은진슬

지금으로부터 2년 여 전, 나는 아이와 단 둘이 일본 자유여행을 하였는데, 이 때, JAL은 내가 여태껏 숱하게 비행기를 타면서도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권 감수성 제로에 무례하기 그지 없지만, 결코 앞으로 다시는 외면할 수도 없을 만큼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비상시, 아이와 기내 탈출이 가능하십니까?’

내가 아이와 나의 티켓을 예약하면서, Blind escort service를 요청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이 질문은, 장애를 가진 부모인 내게, ‘장애를 가진 당신이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는가?’라고 묻는, 다시 말해, 장애인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는 뿌리 깊은 편견을 드러낸, 모멸감 느껴지는 사건이었음에는 틀림 없다.

물론, JAL의 인권 감수성 제로에 무례하기 그지 없는 대응은 결코 있어서도 안 되며, 잘못된 일임이 분명하지만, 이 날을 계기로, 장애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한번쯤 무겁게 생각해 봐야 하는 이슈임에는 틀림 없다는 자각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모멸감은 모멸감이고, 대비는 대비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완벽하지 않으며, 각자의 상황에 따른 나름의 부족함과 결핍, 약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장애 부모들은, 아이를 신체적으로 보호하고 케어해야 하는 재난상황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내가 이 불유쾌한 경험으로 얻게 된 자산이라면 자산이다.

이 경험 덕분에, 이전까지는 화재보험이나 상해보험 등에 가입하거나, 아이에게 안전에 관련된 책을 읽어 주는 등,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대비를 주로 해 왔다면, 이 경험 이후로는, 아이와 주기적으로 재난안전체험관에 가는 것은 물론, 재난안전키트도 구매하고, 재난가방도 챙겨 두는 등, 좀 더 적극적인 대비를 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마음이 많이 아프고 화가 났지만, 이렇게 재난에 잘 대비할 수 있는 마인드를 일깨워 준 JAL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와 함께 보라매공원내에 있는 재난안전체험관에 다녀왔다. ⓒ은진슬

이응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처음 방문하는 재난안전체험관.

유아기 아이들은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위치한 서울 재난안전체험관을 이용해야 하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보라매공원 내에 있는 재난안전체험관을 이용할 수 있다. 광진구로 다닐 때는 집에서 너무 멀어 부담스러웠는데, 보라매공원으로 가게 되니 재난 체험하러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재난안전체험관에서는 초등학생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지진, 태풍과 폭우, 화재 등에 대한 매우 리얼하며 현실감 넘치는 재난 시뮬레이션 공간을 이용한 다양한 재난체험 활동을 해볼 수 있다.

먼저, 재난상황에 대한 4D 체험형 영화 관람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재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는, 실제 현역 소방관님의 설명을 들어 가며, 체험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처음 체험한 것은, 강도 7.0의 지진 상황을 재현한 부엌에서, 지진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의 대응법을 실제로 몸으로 실천해 보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진의 강도를 체감하고 대응방법을 행동으로 실천해보았다. ⓒ은진슬

사실, 포항에 5.0 이상의 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일본처럼 실제 지진을 겪을 일이 없었던 나는, 대체 저 정도의 지진은 얼마나 심한 건지 영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

그런데, 이렇게 실제로 그 강도를 체감하며 머리로만 알고 있던 방법을 직접 행동으로 옮겨 보니, 적어도, 아이와 함께 있다가 이런 지진이 왔을 때, 멘탈 붕괴에 빠져 허둥지둥 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역시, 대부분의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 정말이지 여간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지진으로 정전된 칠흑 같은 건물 붕괴 현장을 한쪽 손바닥을 짚어 가며 돌아 돌아 빠져 나오는 체험을 할 때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둠과 볼 수 없음을 두려워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역시, 어둠의 세계와 친근한 나와 남편은 확실히 별 동요 없이 아이를 안심시키며 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사히 건물 붕괴 현장을 빠져 나오고 나니, 5.0 여진이 야외에서 발생하는 시뮬레이션 공간이 있어, 완벽하게 지진 상황 대처를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강우와 폭우는 시뮬레이션으로 체험을 진행하였다. ⓒ은진슬

강풍과 폭우를 체험해 보는 재난체험의 경우, 강풍은 초속 30미터, 폭우는 시간당 400밀리미터 폭우를 재현한 것인데, 강풍체험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나, 강풍에 폭우가 동반되는 체험의 경우는 많이 위험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체험하고 아이들은 시뮬레이션 룸을 밖에서 보며 간접체험만 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남은 아이 보호자로 남아 있어야 해서, 우리 가족 중에는 남편이 대표로 폭풍우 체험을 하였는데, 제공되는 우비를 입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체험을 마치고 나온 남편의 머리와 몸이 제법 젖어 있었다.

느낌이 어떠냐고 물으니, 앞에서 저 폭우를 다 맞는 사람은 저항이 너무 커서 정말 위험하고 힘들 것 같다며, 자신이 제일 앞에 섰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아이 엄마들이 앞쪽에 있어 마음이 안 좋았 단다.(흠, 배려심 많은 멋진 젠틀맨!)

화재 체험은 화재경보와, 소화기 진화 체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은진슬

화재 상황에 대한 체험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가장 화재에 취약한 실내라고 할 수 있는 노래방 세팅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 및 탈출 체험을 하였다.

아이들과 밀폐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화재경보가 울리면, 소방관님께서 미리 설명해 주신 방법대로 다른 방에도 화재 상황을 알려주는 장치를 작동한 후, 입과 코를 젖은 천이나 옷 등으로 막고 비상구 표시와 유도 등을 따라 어두운 실내를 빠져 나오는 체험이었다.

다음 체험은, 가상 화재 상황에서 불꽃을 발견하고 소화기 사용법에 따라 소화기로 초기 화재 진화를 해 보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는 작동의 편의성을 위해 스프레이형 소화기들만 비치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건물에 비치된 핀셋을 뽑아 작동하는 소화기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눈도 잘 안 보이고 당황까지 하면, 아무리 쉬운 소화기 사용법이라도 머리로만 알고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수도 있는데,(뭐, 그렇다고 연습 삼아 소화기를 함부로 작동해 볼 수도 없으니) 직접 실제 소화기를 만져보며 정확한 작동법을 숙지하고 작동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매우 긴요한 경험이라고 생각되었다.

완강기 사용은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빠르게 대처하기는 어렵지만, 방법을 알고나니 안전한 탈출에 자신감이 생겼다. ⓒ은진슬

다음으로는, 완강기 사용법에 대한 내용을, 소방관님께서 직접 스텝 바이 스텝으로 보여주시며 가르쳐 주셨는데,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긴급한 상황에 이것을 스스로 조작하여 빠르게 대처하기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강기에 탑승할 때, 아무리 위급하고 아이가 작아도, 아이가 안전벨트 사이로 빠져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아이를 안고 타서는 안된다는 것과, 건물을 등지고 하강하면 화재로 건물에서 떨어지는 유리파편이나 건물 벽면의 날카로운 것들로 인해 다칠 수 있으므로, 건물을 바라보는 상태로 하강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훨씬 더 안전한 탈출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화재 상황의 마지막 체험은, 지하철 화재 상황에서 지하철을 탈출하여 어두운 선로를 지나 역을 빠져 나오는 체험이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건 일상인 만큼, 숙지해 두면 매우 유용한 정보들이 많았다.

지하철역 승강장 내에 마스크와 천과 생수 등, 구조와 탈출에 유용한 비상 물품들이 준비된 함이 비치되어 있어, 화재 시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도록 착용할 수도 있고, 천에 생수를 묻혀 입과 코를 막고 탈출하는 데에 활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구조의 지하철에서의 출입문 자동 개폐장치의 위치와 작동법, 기관사와의 통화버튼의 위치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걸 들으면서, 뭔가를 알고 비상시에 상황 대처를 하는 것과 모르는 건 하늘과 땅 차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 보았다.

그리고, 지하철 선로를 탈출하는 경우, 1호선에서 9호선까지는 선로에 고압전류가 흐르지 않지만, 경전철들의 경우, 선로에 고압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탈출 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지하 공간에 지하철 실물도 세팅해 두고, 역과 유사한 구조로 꾸며 놓은 현실감 있는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어 유사시 큰 도움이 될 듯 했다.

보라매 안전체험관 1층에는 소방역사 박물관이 있다. ⓒ은진슬

모든 체험을 다 마치는 데에는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체험을 하는 내내, 우리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의 재난안전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를 골몰히 생각하다 보니, 머리도 복잡하고 마음 한 켠이 심란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기분도 전환할 겸, 우리는 보라매 안전체험관 1층에 있는 소방역사 박물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 곳에는, 조선시대에 세종대왕께서 처음으로 창설하신 소방대인 ‘금화군’, 일제 강점기에 처음 창설된 근대식 소방서의 모습, 옛날의 소방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종대왕은 정말이지 천재 중의 천재였던 모양이라며, 남편과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글 창제에서부터 과학기술 육성은 물론,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한 육진정책에, 조선시대 최초의 소방대인 금화군까지, 세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다.

역시, 왕이 적성에 딱 맞는 천직이셨구나, 왕이 되려고 세상에 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네이버

한편, 우리 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큰 화재나 재난, 인명사고 등을 주요 영상들과 함께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었는데, 이 곳을 보면서는 마음이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내가 고등학생 때 있었던 삼풍백화점 사고 때문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바람에, 당시 우리 학교 선생님 한 분이 두 분의 자매와 함께 돌아가시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레슨이 있어 압구정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강남에 사시는 선생님과 함께 3호선을 타고 마지막이 될지 전혀 알 리 없었던 선생님의 퇴근길을 같이 했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선생님은 학교에 오시지 않았고, 곧 선생님이 바로 그 날 삼풍백화점에 가셨으며, 아직까지 행방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쯤 지났을 때, 오전 수업 중에 선생님과 자매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얼마 후 스쿨버스를 타고 조문을 갔었다.

토요일 오후의 햇살이 잘 들던 병원 장례식장,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든 열 일곱 살의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모든 것이 허무했던 나. 지금도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일들…

이응이에게 그 때 일을 아이 눈 높이에 맞추어 차분하게 설명해 주니, 아이는 더 없이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었다.

자신이 엄마 아빠랑 너무나도 자주 드나드는 백화점이 마치 레고블록처럼 와르르 무너진 모형을 보며, 여덟 살 아이는 좀처럼 납득하지 못했고, 어떻게 튼튼한 건물이 저렇게 무너질 수가 있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부끄럽지만, 사람들의 욕심이, 조급함이, 큰 돈을 벌고 싶은 기업의 과욕이, 튼튼하게 건물을 지지해 주어야 할 기둥의 철근을 슬쩍슬쩍 빼고, 석 달 걸릴 일 한 달 만에 끝냈기 때문이라고 말해 줄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가슴 아픈 마음 속 깊은 곳의 오래 된 상처를 꺼내는 것 같아 슬프기도 했지만, 이런 진솔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 역시, 아이에게 인상적인 재난교육이 되어줄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이 재난 체험 과정을 아이와 함께 하는 내내, 우리 심봉사임당 가족들을 포함한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가족들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포항 지진을 계기로, 장애인들에 대한 재난 대비 매뉴얼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무엇이 제대로 갖추어 졌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그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 바로 각각의 장애특성을 잘 반영한 재난대비 매뉴얼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 끊임없이 재난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고민해 오며 여러 가지 실천도 해 본 결과, 뭔가 거창하고 전문가들이 만드는 대안을 기다리기만 하기 보다는, 우리가 먼저 실천해 봤으면 하는 것들이 몇 가지 보이기는 한다.

장애인 가족들에게 특화된 재난안전체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은진슬

무엇보다, 장애가족들이 어떻게든 직접 재난상황 및 안전교육을 체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재난을 능동적으로 대비하는 정도의 훈련이 되지 못한다 해도, 그저 ‘구조 당하는’ 체험이라 해도 말이다.

뭐라도 체험을 해 봐야 대안도 나오는 법이다. 휠체어 탄 장애인, 전혀 안 보이는 전맹과 화재 탈출, 지진대피 같은 걸 해 봐야 뭔가 대비책도 감이 올 것 아닌가? 하지만,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흰지팡이나 안내견을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재난안전체험관에 몇 팀쯤 들이닥친다면?

모르긴 해도, 교육해 주시는 소방관님들 멘탈붕괴에 빠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조만간, 우리 심봉사임당 가족들과 함께 체험을 진행하고자, 재난안전체험 후에, 우리를 교육해 주셨던 소방관님께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겠는지 조언을 구했다.

소방관님은 시각장애가 있다는 내 말을 들으시고는 조금 당황하시더니, 이내 우리 가족이 재난체험 교육을 나름대로 잘 소화한 것을 기억하시고는, 일단, 재난에 대비하는 능동적 방법을 교육 받는 곳이니, 많은 장애인들만 한꺼번에 오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교육하기 어렵겠지만, 자원봉사자나 비장애가족이 함께 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해 주셨다.

그런데, 이 치열한 예약 시스템을 어떻게 장악하고, 30명 단독 클래스를 만들어, 우리 위주로 재난안전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조금 암담하다. 이런 면에서, 예전 칼럼에서도 썼듯이, 개인이 아닌, 복지관이나 적절한 장애인 유관기관이 장애인 가족들에게 특화된 재난안전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한 가지.

장애부모라면, 무조건 아이부터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신적, 신체적 스킬을 몸에 익혀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부터 지킬 수 있도록 훈련 시킬 필요가 있다.

혹, 독해가 잘 안 되는 분들 중에는, 애 도움 받아서 내 목숨 구하려고 훈련 시키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내가 오랜 시간 칼럼을 써 오며 느끼는 점이 하나 잇는데, 단문과 SNS, 카톡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호흡이 긴 글을 제대로 독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내 아이가, 재난상황에서 자신보다 대처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모의 상황에 정서적으로 연연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재난안전체험을 할 때마다 아이에게 기계적으로 주입한다. 우리 가족이 화재나 지진 등의 재난상황에 처하게 되면, 엄마 아빠가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연연하지 말고, 무조건 이응이가 먼저 탈출하는 거라고, 이응이가 무사히 탈출한 후,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거라고, 주문처럼 세뇌시키고 있다.

옛말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우리 장애인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재난 대비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재난체험을 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서, 사랑하는 가족과 좀 더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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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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