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하면 우리들 마음속엔 능력이 부족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아직도 남아있다. 발달장애인과 관련해 발달장애인을 봉사활동 객체로 기술해놓은 논문들이 우리나라 자원봉사활동 논문들의 대부분을 차지함은 이런 편견이 있다는 반증이란 생각이 든다.

설령 발달장애인에게 자원봉사활동이 있어도 발달장애인의 흥미와 적성, 능력을 고려한 것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연구소를 다닐 당시, 그러니까 거의 5년 전 이런 소식을 들었다. 평창 스페셜올림픽에서 지적장애인이 자원봉사활동을 하긴 했지만 활동 전 소양교육 외에 구체적인 봉사활동 직무교육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거나,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지 못한 지적장애인이 거의 다였다.

한편 연구소에서는 그 당시 인형극에 관심과 재능이 있던 발달장애인을 발굴함은 물론 ‘인형극 공연가’라는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발달장애청소년 및 성인에게 동화구연 교육과정을 2012년부터 운영해왔다. 동화구연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표현력과 자신감이 많이 향상된 상태였다.

2012년 동화구연 중급과정 당시 성인팀 수업 및 동화구연을 연습하는 모습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이런 상황에서 동화구연을 배운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재능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해 자원봉사자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현실을 개선코자 연구소에선 발달장애인 동화구연 자원봉사활동사업을 서울시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영등포구의 지원으로 실시했다.

먼저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어린이집 원장 등 동화관련 전문가를 모셔 전문가 기획회의를 했다. 그런 다음 동화구연 자원봉사에 관심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지원자를 모집하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자원봉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진짜로 동화구연 자원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추려 발달장애인 6인 및 지원자 4인으로 자원봉사활동 인원이 정해졌다.

이들은 2개 조로 나눠 10월부터 두 달간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를 가지고 기획회의를 했다.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 전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하고 싶은 동화에 대한 동화구연 리허설을 했었다.

리허설 후에는 통합어린이집인 해태어린이집과 장애인 그룹홈인 민들레의 집으로 동화구연 봉사활동을 했다. 필자는 민들레의 집 자원봉사활동 지원자로 나섰다.

2013년 8월 16일 이룸센터 다목적 프로그램실에서 실시한 동화구연 자원봉사활동사업 ‘Rip it up' 오리엔테이션 모습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필자도 당시 동화구연을 배우던 중이었다. 재미있었지만 동화구연 자원봉사활동 지원자로 나서며 초반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 우선 자원봉사활동 기간이 짧고 발달장애인 당사자 속도에 맞춰 마냥 기다리기에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당사자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가지고 지원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자원봉사활동 모델링이 없었던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자가 동화구연을 배우며 생긴 나만의 생각 때문에 당사자 지원이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어떤 동화가 있으면 당사자가 연습을 하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사자에게 이렇게 하라는 식으로 가리키려 들었기에 지원하는 게 힘들었다.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아도, 설사 당사자들이 못하는 게 있더라도 이들 특성에 맞춰 뒤에서 지원하고 즐기면 되는데, 너무도 큰 책임감에 즐기지 못하고 당사자의 능력과 속도를 존중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당시는 자기옹호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치기 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사자를 가르쳐 든 것에 대해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이런 어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줄어들었고 당사자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재능에 맞게 봉사활동 때 할 동시, 동화를 정하며 연습하고 소품도 직접 열심히 만들었다.

이후 발달장애인 자원봉사자들은 민들레의 집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그 집에 있는 거주인들에게 동화구연을 1주에 1번씩 총 5번 했다. 거주인들은 잘한다고 박수를 쳤다. 설령 준비가 미흡해 실수하고 어설프더라도 거주인들은 오히려 재미있다고 하며 발달장애인 자원봉사자들에게 힘을 주었다.

더군다나 봉사자와 거주인이 같은 연령대이다 보니 친구가 생겼다며 좋아하는 발달장애인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동화구연 자원봉사활동 관련한 기획회의, 리허설, 소품만들기, 실제 봉사활동 등의 모습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해태어린이집에서도 동화구연 자원봉사활동을 했는데 한 자원봉사자가 손을 내밀면 어린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고 한다. 이 어린이집에 있는 직원이나 아이들이 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자원봉사활동이 더욱 재미있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한 후 4년 전 12월 말에 발달장애인 자원봉사활동 보고회가 있었다. 보고회 자리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은 자신의 동화구연으로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다며 다음번에도 봉사활동이 있으면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봉사활동 후 발달장애인들의 자원봉사에 대한 자신감 향상이 필자에게 느껴졌다. 외부 지원자들도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필자를 비롯해 발달장애인 자원봉사자들과 정이 들며 이런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하며 계속 연락하자고 했다.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맞추어 연습하며 발달장애인의 속도에 맞추도록 지원하다 보면 발달장애인도 자신의 재능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자원봉사활동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동화구연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전문적이지 않아도 발달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자원봉사활동으로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관계망이 넓어져 적어도 사회에서 외롭지 않고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양분을 얻는 계기가 됨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동화구연 자원봉사활동 보고회 당시 발달장애인 자원봉사자들과 지원자 모습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발달장애인을 볼 때 장애가 아닌 사람의 능력을 보고, 발달장애인이 잘 하는 걸 전문적으로 하도록 지원하는 우리나라 사회여야 한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쌓인 재능을 봉사활동에서 잘 살리도록 봉사활동 교육 시에도 발달장애인의 적성과 속도를 존중하는 등 체계적인 자기옹호 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 발달장애인은 봉사활동을 받기만 하는 객체가 아닌 자신의 재능을 직접 다른 사람에게 주는 봉사활동 주체가 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됨은 물론이라고 본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이 주체인 자원봉사활동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발달장애인이 주체인 자원봉사활동! 이것이야말로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이끌며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고양시키는 진정한 발달장애인 자원봉사활동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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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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