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사 전북지사 제26대 송창진(66) 회장.

“봉사인으로서의 삶을 잘 끝맺으라는 뜻으로 알고 적십자사 회장직을 나름대로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역민들이 질병이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 소망이죠”

적십자사 전북지사 제 26대 송창진(66) 회장. 학자풍의 온화하고 이지적인 외모에 겸손함까지 두루 갖춘 그는 지역사회에서부터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펼쳐온 봉사활동으로 명망이 높다.

송회장이 봉사의 삶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서울대 약학과를 다니던 시절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님의 빚보증으로 가세가 기울어져 끼니 잇기도 힘들 무렵 모친의 시장 삯바느질과 자신이 가정교사를 전전하며 번 돈으로 학비를 마련해야 했던 눈물어린 추억이 그것이다.

“나에게도 언젠가 힘이 생기면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을 돕겠다”는 결심을 버리지 않고 항상 음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평생 봉사의 삶을 살아온 송회장.

1968년 처음 전북지구 청년회의소에 가입하여 70년 회장시절에는 대구, 전주간 자매결연을 맺고 ‘동서 격차 없애기’ 운동을 전개해 지역 감정 없애기 운동의 효시가 되게 했던 일로 시작해 ‘옥련 장학회’를 설립해 불우한 환경에 처한 학생들을 돕고 71년에는 당시 ‘자랑스런 전북인이 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민의식 개혁에 앞장섰던 일도 많은 시민들이 기억한다.

라이온스 총재시절 2001년도에는 북한을 방문해 안과병원 설립의 토대를 마련했고 미국 9.11테러사건시 성금모금 지원을 하는등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라이온스협회 국제이사로서의 위상을 드높인 기억도 빼놓을 수 없고 한다.

송회장은 또한 라이온스 국제재단으로부터 무주택장애인을 위한 주택건설자금으로 약 4억8천만원을 교부받아 한국사랑의 집짓기 운동연합회에 기부해 총 12가구의 장애인 주택건설을 지원한 일도 있었다.

이 무렵부터 국제 해비타트운동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송회장도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에게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의식주 중에서 장애인에게 집은 불편한 몸을 안락하게 쉬게 하는 가장 필요한 재충전의 공간이죠”

그가 해온 업적 중 보람있었던 일 중의 하나로 자평하는 송회장은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장치도 필요하지만 장애인들 스스로의 자구노력도 필요한 시기이며 각 봉사단체와 연계해 장애인들의 복지증진과 재활의욕고취를 위한 프로그램을 늘려 나가야 한다”고 장애인계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송회장은 또한 “장애인 및 소년, 소녀가장 및 홀로 사는 노인돕기 등 사회활동, 의료활동, 특수복지 프로그램과 사랑의 헌혈운동 등 구호활동을 보다 충실히 해 우리 사회를 좀더 따뜻한 공동체로 이끌어나가는데 역점을 둘 방침”이라고 올해 적십자사 전북지사의 활동계획을 밝힌다.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언론과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면서도 그가 항상 잊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봉사의 시작은 제가 약대를 졸업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죠, 40여년간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준 약국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약사가 천직이며 본업이라고 강조하는 송회장은 “적십자활동은 순수한 민간 봉사단체로서 박애정신에서 출발하여 고통받는 이웃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 동안 저의 직업과 인생관과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며 결국 약사는 인간보호의 주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끝을 맺는다.

온유한 표정에 강한 어조로 결론을 맺는 송회장의 얼굴에서 이웃사랑과 박애정신으로 무장한 아름다운 봉사자의 향기가 물씬 풍겨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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